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여.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현대 의학과 고려의학의 경계가 명확합니다. 남쪽에서는 고려의학을 한의학이라고 하는데요. 대학에서도 한의학과 일반의대로 전공 자체가 다르고 병원도 한의학 병원, 일반 병원으로 나뉩니다. 요즘 새로운 시도로 한-양방 합진을 하는 병원도 있지만 소수입니다.
IN - 서양의학은 약이 없거나 주사기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동의학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들에 나는 풀이 약초가 되고 맨손으로라고 주무르니까...
남한 사람들도 허리, 다리, 무릎이 아플 때는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부황을 뜨기는 하지만 한의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 몸을 보하는 보약 등 한약을 짓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 부분은 북쪽과 좀 차이가 있는데요. 그렇지만 남한 한의원도 주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 낮은 편한 곳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는 남한의 의료 체계, 마지막 시간입니다.
문성휘 : 왜 그 봉한 학설이라는 게 있잖아요? 경락이라고 하는 것이요? 그게 실지 없다고 김일성이 그 연구자들까지 다 처벌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최근에 남한 학자에 의해서 실제 있다고 밝혀지지 않았어요?
김태산 : 1960년 대 중반에 김봉한이라는 사람이 선전상하던 박금철의 지시로 연구했다 하지 않았어요? 우리 어릴 때인데 진짜 많이 떠들었어요. 경락 계통 연구한다고 막 세계 의학계에 막 떠들며 사람들을 불러들여 선전도 하고 그랬는데 그게 완성되지 않은 것을 너무 선전만 크게 하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박금철이 종파 우두머리로 몰리면서 거기에 지시를 받았다고 다 잡아 없앴거든요. 아마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했으면 인류를 위해서 뭔가 하기도 했을 텐데요. 그때 수령을 망신했다면서 사람을 짐승 잡아 없애듯 다 잡아 없앴어요. 여기 같았으면 그냥 연구하라고 나뒀을 텐데 정치에 휩쓸리면서 그렇게 됐죠.
문성휘 : 이 경락이 실제 있다는 걸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면 진짜 김일성 주석은 엄청 비판받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이 나는데 제가 6살 정도 때에는 한의학도 몽땅 거짓말이라고 한때 못 보게 했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제가 몸이 허약하고 병원에 가서 보여도 아픈 게 잘 낫지 않으니까...
김태산 : 맞아. 그때는 한의사라는 게 북쪽에 없었어요.
문성휘 : 네, 맞아요.
진행자 : 그때는 왜 못하게 했나요?
김태산 : 그때는 한의사 교육 자체가 없었어요. 옛날에 일본 시대 때부터 침놓던 사람들이 그냥 계속 침을 놓았는데 누가 자격증을 주지 않았으니까 불법인기야. 그때는 침을 놓으면 막 잡아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근데 그 후에 김일성이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들어온 게 유능한 한의사였던 모양이에요. 어느 때부터인가 대학들에 고려 의학과도 생기고 그게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어떤 면에선 남한보다도 이 고려의학에 대해 더 세게 떠들죠.
문성휘 : 저는 북에 있을 때도 병원을 진짜 많이 다녔거든요? 지금 여기 와서나 같아요. (웃음)
진행자 : 병원 전문가시네요.
김태산 : 아, 저런 사람이 더 오래 살지요. (웃음)
문성휘 : 웃기는 건요. 어렸을 땐 한의학 치료를 받을 때도 어머니가 몰래 저를 데려갔거든요. 용하다는 한의원이 있다고 입소문을 들으면 거기 가서 한 사람이 막 창문으로 망을 보고 안에선 몰래 봐주고 그랬거든요? 근데 제 기억으로는 81년인가 82년인가 그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모든 의사들이 다 침을 들고 흔들거리는 거예요. (웃음) 우리가 실험 대상이 된 것이죠. 이건 뭐 얼굴에도 침을 놓고 귀에도 침을 놓고 발가락에도 침을 놓고... 그때는 또 어디가 아프다면 다 침을 가지고 치료한다고 그러고 이거 진짜 황당했어요.
김태산 : 그때는 병원에 가게 되면 사람 모형을 다 놓고 외과, 내과에서도 대충 다 침을 갖고 그랬지.
진행자 : 주민들은 실험 대상이 돼서 좀 괴로웠을 것 같은데 (웃음) 그래서 그런지 남쪽에서도 북쪽의 동의학은 인정받습니다.
김태산 : 요즘은 북쪽에서 의대에 가는 아이들에게 이 고려 의학이 더 인기가 있답니다. 현대 의학은 검사 시설도 있어야 하고 약도 있어야겠는데 이건 침대와 부황 단지만 있으면 어디 가서든 대접 받거든요.
진행자 : 근데 사실, 북쪽에서는 현대의학보다는 동의학이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현대의학은 첨단 장비, 시설, 약이 필요한데요. 북쪽은 그럴 여력이 없잖습니까?
김태산 : 뒤로 가는 거지... 북에선 동의학 의사는 자기 생활을 꾸려나가는데서 아무데나 가서 선생님 대접 받으면 살 수 있는 거죠.
문성휘 : 서양의학은 약이 없거나 주사기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동의학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들에 나는 풀이 약초가 되고 맨손으로라도 주무르니까...
진행자 : 남쪽에서도 허리나 다리, 무릎 이런 데 아프면 한의원가서 침 맞고 그러거든요. 근데 진짜 북쪽 주민들을 생각하면 동의학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태산 : 다행이지요. 그게 우리 민족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어요.
문성휘 : 김일성 시대나 김정일 시대나 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전체 의료 체계가 왔다 갔다 했어요. 이자처럼 경락 같은 것,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 없애 버리고 동의학 같은 것도 어떤 때는 미신이라면서 하지 말라고 했다가 어떤 때 또 김일성 주석이 하라고 한마디 했다고 온 나라가 침대를 들고 흔들고... 제발, 앞으론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진행자 : 사실 한의학만으로는 또 한계가 있어요. 경제 사정이 좀 나아져서 현대 의학도 좀 발전을 해야지요.
문성휘 : 물론입니다.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했을 때 남한의 유명한 의사들을 취재한 기사를 읽었는데요. 김 위원장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남한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사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두 사회의 차이라는 거죠.
진행자 : 그건 일단 가정해보면 그렇다는 얘기고요. 어쨌든 병원이나 의료 체계는 생활의 질을 따질 때 진짜 중요한 부분이죠.
문성휘 : 거기선 진짜 사람이 한번 앓으면 끝이죠. 아플 때 약이라도 먹으면 위로가 되겠는데 병원에 가도 약도 없지 뚜렷한 치료도 못하지 그럼 진짜 답답하죠.
김태산 : 우리처럼 북쪽에 가족, 형제, 친지 둔 사람들 생각이야 다 똑같죠. 무상 치료를 못해줘도 돈 조금 내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라고 좀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여긴 큰 병에 걸려도 다 자기 하고픈 만큼 치료를 받아 보고 가잖아요? 북쪽에도 좀 그런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바람을 담아서 2012년 청취자 여러분들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남한의 의료 체계 얘기를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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