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서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김태산 : 작은집에 양문형 냉장고에 따로 김치 냉장고도 들여놓고 세탁기도 최고급으로...
문성휘 : 김태산 선생, 혹시 나를 욕하는 건 아니겠죠? 김태산 : 하하하, 아니! 그렇게 꾸며놓고 사는 걸 욕하는 건 아니에요. 문성휘 : 어쩐지 좀 찔린다...
정착 초기, 탈북자들은 남한 정부로 부터 일정 정도의 정착금을 받습니다. 지금은 정착금이 나눠서 나오지만 몇 년 전만해도 손에 목돈이 쥐어졌는데요. 이걸 갖고 큰 회사 사장님이나 탈 것 같은 고급 승용차를 뽑기도 하고 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 등 최신 가전제품을 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빌려주거나 사업을 시작했다가 다 날리기도 했습니다. 남한 사회를 잘 몰라서 일어난 시행착오들인데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정착금 지급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북쪽에 비하면 돈 벌기는 쉽습니다. 문제는 그 돈, 쓸 데도 많다는 겁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돈 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자 : 사실 저도 북쪽에서 오신 분들의 집에 가보고 놀랄 때도 있어요.
김태산 : 남쪽 사람들보다 더 잘 살죠?
진행자 : 네... (웃음) 어떻게 해놓고 살던 그건 자기 자유죠. 그래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가끔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웃음) 이제는 왜 그러시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요.
문성휘 : 사실 일정 기간, 못 해봤던 것들을 하고 나면 좀 자제해야 하는데 그게 좀 힘들죠. 저는 교회에 다니는데 제가 제일 짜증나는 게 한국 분들이 저희 집에 와보겠다고 하는 겁니다. 조금 뜨끔합니다. (웃음) 우리는 50-60년 모아서 이렇게 사는데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너무 과하게 쓰고 산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요. (웃음)
김태산 : 나는 문 선생이랑 정반대네요. 남한 사람들한테는 창피한 게 없는데 탈북자들에게는 부끄러워요. 집에 오면 제대로 된 소파가 있길 하나 침대가 있길 하나 집도 전혀 꾸미지 않고 지어 놓은 그대로고요... 돈 좀 벌었다더니 이게 뭔가 생각할 것 같아서 좀 그렇죠.
문성휘 :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거참 문제네요. 전 남한 분들은 좀 그렇지만 탈북자들이 놀러오는 건 자랑스럽거든요. 저뿐 아니라 탈북자 사회에 이런 문제가 좀 있습니다.
진행자 : 한번 커진 씀씀이는 줄이기 힘들죠. 왜 남쪽에서도 진짜 부자들은 그냥 쓸쓸한(평범한, 수수한) 옷 입고 다니고 굉장히 검소하잖아요? 저는 김 선생 말씀 중 한 부분이 굉장히 공감이 가는데요. 옛말에도 있잖습니까? 버는 자랑하지 말고 쓰는 자랑해라...
문성휘 : 네, 진짜요. 책 중에도 1% 절약해서 부자 되는 법, 이런 책도 많잖습니까? 저도 자주 읽어보는데 역시 책은 책이에요. 실천이 힘듭니다.
김태산 :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지금 신고 다니는 구두도 물이 새요. 정주영 회장이 사망한 후에 정 회장이 신던 구두가 소개됐는데 구두 밑창을 6번을 갈았다더만요. 정주영 회장하면 한반도에서 제일가는 부자인데 그 사람이 구두 살 돈이 없어서 그런 구두를 신고 다닌 것은 아니었잖아요? 그렇게 돈을 모았기 때문에 부자가 됐고 남한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거죠. 그러니까 돈은 버는 게 아니라 절약하는 것, 모으는 것이라는 게 진리입니다.
문성휘 : 솔직히 그런 정도로 절약하면 여기 온 탈북자들 기초 생활 수급금만 타면서도 몇 년 동안 2-3천만 원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정신만 있으면요...
김태산 : 저는 아이들도 데려와서 이젠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먹고 살 순 있습니다. 근데 나는 내일이라도 북한이 열리면 가서 사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고향 사람들에게 한심한 놈이라는 얘기들을 겁니다. 가서 당당하게 우리가 간 길이 나쁜 길이었냐...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 나쁜 길,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트럭을 한 20-30대를 사갖고 가서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에게 주고 자동차 운송 사업소 사장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문성휘 : 저도요. 통일이 되면 김태산 선생보다 더 많은 차를 사갖고 가서 더 많은 친척들에게 주겠다! 문제없어요. 나는 돈을 많이 썼으니 신용도가 훨씬 높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까? 통일이 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웃음)
진행자 : 문 선생, 벨 났습니다. (웃음)
김태산 : 사실 자유로운 사회니까 좋은 거죠. 돈을 마음대로 모을 수도 있고 쓰는 것도 자유고요. 사실 많이 버니까 그만큼 쓰는 것이고 나쁜 것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진행자 : 저는 이번 얘기를 시작하면서 남한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 부자가 될 수 있나 그 얘기를 좀 해드리고 싶었는데 별방법이 없네요.
김태산 : 별게 없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벌어들인 돈을 허술하게 쓰지 않으면 돼요. 재수도 좋고 머리도 좋은 사람은 사업을 크게 해서 돈을 많이 벌지만 우리 탈북자들은 남쪽에 올 때 기술이 있나요, 재산이 있나요... 북쪽에서 배운 것은 여기 오면 쓸모없거든요. 아무리 돈을 조금 주는 곳이라도 꾸준히 매일 나가서 벌어서 개미처럼 쌓아야 합니다.
문성휘 : 맞습니다. 꾸준히 벌고 덜 쓰는 것....
김태산 : 일 년에 백만 원, 천 달러씩 모으면 10년이면 10만 달러 넘게 모으는 거예요. 근데 우리 탈북자들의 경우, 혼자 왔던, 부부가 왔던 한 달에 백만 원은 얼마든지 걷어 모을 수 있어요. 제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진행자 : 남한 사회도 수돗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아끼며 절약을 미덕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는데요. 사실 이제 그 시기는 지나고 지금은 소비, 그러니까 돈을 쓰는 게 미덕인 사회죠. 탈북자분들이 앞에서 우리가 얘기한 과소비의 문제가 있는 것도 남한 사회의 이런 분위기가 반영돼서 그런 게 아닐까 씁쓸하기도 합니다.
김태산 : 그런 면이 있어요. 정말 세계 어디를 가 봐도 남쪽만큼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백화점, 장마당이 번성한 데가 없어요.
진행자 : 그렇지만 또 대부분의 평범한 서민들은 정말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문성휘 : 그러니까 지금 말씀처럼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벌고 적게 쓰는 것, 특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직업에 귀천을 가리면 안 돼요. 아무리 적게 준다고 해도 그 직업에서 꾸준히 숙련하면 그보다 더 좋은 직업에 가고 그런 거죠.... 아휴, 나는 될 것 같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김태산 : 저와 함께 하나원 동기로 나온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가 10년 동안 한 공장에서 일해서 저축한 것을 갖고 인천에 자기 공장을 차렸습니다. 자기가 일했던 공장과 똑같은 공장을 차린 것인데 이 친구가 참 잘해요. 인쇄 롤러를 깎는 공장에 낡은 화물차를 하나 사가지고 들어가서 10년 동안을 정말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열심히 일했어요. 부인이 일한 노임은 생활비로 쓰고 이 친구가 번 것은 전부 저축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이 친구가 일했던 회사 사장도 친구가 공장을 하나 해보고 싶다고 할 때 도움을 줬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요. 최고의 길은 고저 한 공장이나 직장에서 한 10년 꾸준히 일을 배우는 겁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일을 배우고 거기서 모은 돈으로 나와서 식당이든 공장이든 차리는 거죠.
문성휘 : 알았어요. 저는 이제 10년 동안.... 꼬박꼬박 매달마다 로또를 사겠다. (웃음)
김태산 : 아니, 그러지 말고 매달마다 꼬박꼬박 백만 원씩 적금통장으로 자동으로 빠지게 해놓고... 한꺼번에 일확천금할 꿈, 공짜로 돈 벌 꿈... 이런 걸 버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꼭 망한다니까요!
문성휘 씨가 말대로 로또, 복권이 딱 맞아서 엄청난 돈을 한꺼번에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하는 사람, 남쪽에도 꽤 많습니다.
진짜 복권에 당첨돼 평생 가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을 탄 사람들, 몇 년 안에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많답니다.
재테크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산, 재물을 뜻하는 한자, '재'자와 기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테크'가 합쳐진 말인데요. 돈을 불리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재테크로 땅을 사는 사람도 있고 펀드나 주식 같은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이런 저런 것을 다 해본 사람들이 또 요즘엔 기본적인 은행 적금, 예금으로 돌아온다고 하는데요. 결국 시대와 환경은 변해도 돈을 벌고 모으는 기본은 변치 않는다는 얘기 같습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두 차례에 걸쳐 돈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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