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나는 탈북자입니다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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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방중소기업청에서 탈북자들의 취업박람회 현수막.
경기지방중소기업청에서 탈북자들의 취업박람회 현수막.
RFA PHOTO/ 황은희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북한을 나와 남한에 정착한 북쪽 주민들을 보통 탈북자라고 부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탈북자라는 말, 잘 알고 계시죠?

2005년 남한 정부는 ‘탈북자’ 대신 ‘새터민’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정했습니다. 탈북자라는 이름이 주는 부정적 인식을 바꿔보겠다는 의도였는데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INS - ‘새터민’이라면 베트남, 중국 교포들, 외국인 노동자들도 다 새터민인데 왜 우리만 놓고 그러느냐...

탈북자들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말이다, 남한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라면서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2년대 중반, 남한의 탈북자 숫자가 크게 늘면서 ‘탈북자 범죄’,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신문에 자주 오르내렸고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의 위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탈북자의 위상, 그 이름이 주는 느낌도 변했습니다.

남한 정착 5년 문성휘 씨, 남한 정착 10년 김태산 씨가 말하는 남한 사회의 탈북자,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 전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라는 이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성휘 : 북한에서도 탈북자라고 해야 알지 새터민, 북한 이탈 주민이라면 무슨 얘긴지 몰라요. 2002년인가요? (진행자 : 2004년이죠.) 제3국을 통해 탈북자 400명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들어갔잖아요? 저는 그때 탈북자라는 말을 처음 알았어요. 그 전엔 도강자, 월남자라고 했었거든요. 당시 이 소식은 북쪽에서도 많이 돌았는데 아마 남한 라디오를 들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했겠죠? 그러면서 탈북자라는 말이 북한 사회에서도 공유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 새터민이라는 말은 저도 굉장히 어색합니다.

김태산 : 저는 남한에 오기 전까지 탈북자가 있는지 몰랐어요. 제3국에서 남한으로 곧장 들어오다나니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북한을 나와 여기까지 온다는 걸 몰랐어요. 하나원에 들어가면서 북쪽에서 온 사람을 탈북자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구태여 이름에 대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탈북자하면 우리의 정체성도 있고 북한 체제와 땅을 버리고 나온 사람이니까 탈북자가 맞는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 탈북자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고 해서 저는 많이 반대했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았다고 ‘새터민’이라면 베트남, 중국 교포들, 외국인 노동자들도 다 새터민인데 왜 우리만 놓고 그러느냐...

문성휘 : 정체성이 좀 불분명한 말이죠. 그리고 북한 이탈 주민은 사실 황당한 이름이에요. 느낌상 북한이 마치 정상적인 궤도로 가고 있는데 거기서 탈선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진행자 : 북한 이탈 주민은 탈북자의 법률상 용어입니다. ‘새터민’이라는 말은 본인들도 원하지 않았는데 붙였다, 반대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당시 90년대 말부터 2000년 중반까지 탈북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사건이 많았습니다. 개중에서는 마약 밀매 사건 같이 큰 범죄도 있었고요. 그래서 탈북자 이미지, 위상도 재고할 겸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 어떨까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새로 붙은 새터민이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아주 싫어하시죠. (웃음)

김태산 : 그때 통일부에서 이름을 고친다고 탈북자들의 의견을 듣는대서 갔었는데 몇 가지 후보를 알려주더라고요. 그런데 당시 새터민은 우리가 거의 다 반대했는데도 그걸로 정해진 거예요. 우리끼리는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 그런 말도 했고요. 당시 대표적 탈북자 모임인 탈북자 동지회는 새터민 동지회로 바꿔야 하느냐 항의도 많았습니다.

진행자 : 생각보다 반발이 컸군요.

문성휘 : 북한 주민들이 들을 때도 느낌이 차이나지 않습니까? 탈북자는 북한을 뛰쳐나갔다는 강한 느낌이 있지만 ‘새터민’이라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거니와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탈북자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요즘도 젊은 세대들은 새터민이라는 이름도 많이 써요.

김태산 : 또 통일인라고 부르자는 얘기도 있는데 아니, 우리가 아무리 통일인이라고 부르자고 정해도 남쪽 사람들이 우리보고 저기 통일인 간다... 이러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얘기 나올 때마다 제발 좀 쭐렁거리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탈북자 중에서도 좀 나이든 사람의 입장으로 싫은 소리 좀 합니다.

진행자 : 남한 사회에서 문 선생은 정착 5년, 김 선생은 10년 되셨는데요. 본인이 처음 오셨을 때보다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좀 변했습니까?

김태산 : 그럼요. 적지 않게 변했죠. 제가 처음 왔을 때만해도 탈북자가 만 명 정도였는데 10년 사이에 만 삼천 명이 더 왔습니다. 그렇게 많이 오다나니까 맨 처음에 북한에서 온 사람하면 희귀하게 생각했지만 요즘은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특히 탈북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이나 경기 지역은 더 그렇죠. 그 다음엔 탈북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위치에도 올라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의 고급 공무원 자리인 통일 교육원 원장에 탈북자가 임명됐고 주요 신문사들에도 탈북자 기자들이 한명씩 다 있고요. 또 탈북자 속에서 박사 학위 받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어요.

진행자 : 뭐만 하면 ‘최초다’ 이런 수식어가 붙는 건 이제 옛날 얘기죠.

김태산 : 또 직업적 측면에서 의사고시를 봐서 병원을 연 사람도 있고 음식점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물론 범죄를 저질러 감방 간 사람도 있지만 인간 사회에 사람이 늘어나면서 범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쁜 면만 보지 말아야죠. 탈북자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왔고 몇 년 전부터는 참 자유로운 사회이니 탈북자들이 정치계에 진출도 하려고 하고 지어는 대통령 하겠다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웃음) 오는 4월에 있는 총선에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고 준비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젠 탈북자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다는 게 그렇게 새롭지 않을 만큼 변했습니다.

문성휘 : 탈북자 중에서 세대를 놓고 따져보면 제가 중간 세대입니다. 저보다 5년 먼저 오신 김 선생이 선배 세대이고요. 그런데 우리 탈북자 혁명 1 세대들이 참 잘 못 한 게 많아요. (웃음) 저희 혁명 2세들이 와보니까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인식이 굉장히 나쁘더라고요. 아파트, 아파트 간에 패를 갈라 야구 방망이를 어깨에 메고 막 싸우기도 하고 그 아파트 주민들은 너무 불안해서 ‘이 아파트에서 탈북자들 다 내보내라’ 이런 글을 막 써 붙이고 그랬대요. 북한에선 패싸움도 가끔 잘 하지만 남한에서는 이건 뭐 거의 영화에 나오는 수준의 사건이죠. 저희가 왔을 때가 바로 이런 일들로 비난을 다 받을 때였죠.

진행자 : 맞아요. 그때 사건이 많았습니다. 탈북자 입국 연차로 세대를 나누면 김 선생도 한 2세대 정도 되시죠. 2천 년대 중반에 들어오셨으니 문 선생은 한 3-4세대 정도 되실 겁니다.

문성휘 : 자유라는 것을 처음 느낀 탈북자들이 처음에는 진짜 너무 무지막지하게 행동했나 봐요. 그러면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나빠졌는데 저희 세대들부터는 굉장히 조심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저희들 나와 보니까 이미 선배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자주 물어보고 어떻게 행동해야하나 조언을 많이 받고... 지금은 탈북자 사회에도 연결이 잘 돼있어서 이렇다 할 문제가 생기지 않지요? 아마 이런 상태로 나가면 정치계에서도 그래, 자영업도 그래 사회 각 분야에 탈북자가 많이 질 것 같고요. 여러 사회 분야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런 느낌입니다.

진행자 : 요는 옛날보다는 좋아졌다는 말씀들이시죠? (웃음)

김태산, 문성휘 : 그럼요. 그렇죠.

김태산 : 탈북자들도 많이 변했어요. 지난 기한에 왔을 때만 해도 동네 아파트에서 쌈 하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딱 우리 말씨에요. 그런 소리가 많이 들리고 탈북자 10대 아이들이 동네를 오토바이 타고 앙앙하고 돌아다니고 말 좀 하자면 쌈하자고 덤벼들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경우가 싹없어졌어요.

문성휘 : 진짜 많이 변했죠.

김태산 : 저는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여전히 대낮에 노는 아주머니들이 배회하는 게 많이 보이지만 싸우고 민폐 끼치고 이런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진행자 :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오는 탈북자들은 적응하는 것이 수월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성휘 : 아, 너무 쉽다고 해서 다 오겠다고 하면 난리인데 (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사회적인 집단을 이루려면 한 3만 명 정도가 돼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탈북자 사회는 2만 3천 명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니까 더 늘어나야죠.

진행자 : 탈북자 숫자가 남쪽의 외국인 노동자 숫자보다 적으니까요. (웃음)

문성휘 :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 대표로 탈북자 한 명이 뽑혔다고 하잖아요? 국회의원도 되고 우리 탈북자들, 정말 빨리 발전하는 것 같아요. 부럽기도 하고 내 차례도 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김태산 : 아, 정치는 나서지 마세요... 나는 정말 정치하면 복잡하고 나서고 싶지 않아요.

진행자 : 어느 나라 정치판이든 좀 복잡한 면이 있죠. 그렇지만 남쪽에선 텔레비전 정치 보도 보다가 맘에 안 들면 내가 한다...내가 하면 저것보다 잘 한다! 이렇게 되면서 여건이 되면 정치판에 나서게 되는 거잖아요? (웃음)

문성휘 :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했지요....

제19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4월 11일,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각 정당에서 국회의원 후보 선정이 마무리 됐는데요.

새누리당, 한나라당의 새 이름인데요. 새누리당에서 탈북자 조명철 씨를 비례 대표 4번으로 공천했습니다. 집권 여당의 비례 대표 4번이면 당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탈북자 사회도 첫 탈북자 국회의원 탄생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대도 아주 큰데요.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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