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6월 이야기-아픔과 고통이 생략된 북한의 전쟁 이야기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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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국경선' 38선의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모습 (미국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해온 '뉴욕타임스(NYT) 자료').
남북한 `국경선' 38선의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모습 (미국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해온 '뉴욕타임스(NYT) 자료').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신문에서 탈북자가 전하는 6.25 전쟁의 얘기를 읽었습니다.

저도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전쟁에 대한 얘기를 많이 보고 들었지만 모두 남쪽 사람들의 이야기였고요.

북쪽 주민의 사연은 사실 처음이었습니다.

평안남도 평성 출신 탈북자 김진철 씨의 얘기였는데요.

전쟁 통에 부모를 모두 잃고 할머니와 3살 아래 동생만 남았답니다.

배급 타러 갔다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꽉 막혀온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여덟 살이었던 김 씨는 이제 75세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김 씨지만 어머니, 아버지 얘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남쪽에선 이런 얘기들이 책으로 또 영화로 드라마로 나옵니다.

전쟁에서 사람들이 겪은 아픔을 전해주며 다시는 이런 비극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죠. 북쪽에서는 전쟁 공포증을 이유로 이런 개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얘기는 묻고 전쟁 영웅의 신화만 부각시켜 온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6월 이야기 계속 이어갑니다.

진행자 : 사실 북한에서 6.25에 대한 교육을 오래 받았으면 남쪽에 와서 남쪽이 말하는 6.25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태산 : 한 순간에 그걸 바꾼다는 게 쉽지 않죠. 북한에서는 또 나름대로 내세우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어요. 전쟁 일어나기 전에 일주일 전에 미국에서 누가 와서 어쨌다든가... 근데 또 북한에서 남침을 했다는 자료를 보면 김일성이 스탈린한테 가서 전쟁을 하겠다고 하고 승인을 받았다는 소련의 비밀문서, 이것도 비밀로 있다가 얼마 전에 공개된 것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당시엔 솔직히 확답을 못 했어요. 참 그때 갈등이 심하더라고요. 누구 말을 믿어야 되겠나? 특히 내가 2천년에 북한을 나와서 해외에서 근무했으니 북한에서 젊은이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6.25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고요. 그런 상태에서는 여기 와서 그런 얘기를 딱 접하니까 갈등이 많았는데 저는 하나원에서 나와서 살아가면서 차차 알게 됐습니다. 내 나이가 이제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그리고 문 선생 말마따나 전쟁이 터지기 전에 미군이 철수했고 미군이 들어온 날짜가 전쟁이 터지고 나서입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남한 병력을 보니까 탱크가 하나도 없어요. (웃음) 북한은 그때 105 탱크 여단에 탱크가 1백 대나 됐잖습니까?

문성휘 : 4백대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4백대더라고요. (웃음)

김태산 : 그리고 백선엽 장군 회고록 등 책도 보고 사건들도 찾아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진짜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현혹하고 세뇌시키는 게 고도로 발달됐다는 걸 느꼈고 아직도 나 같은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조선과 미국이 먼저 침략을 했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무장된 2천만의 북한 주민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또 그와 반대로 먹고 살기 편하니까 사상적으로 해이되고 무장 해제된 국민들이 이 땅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안타깝기도 하고요. 6.25를 지내면서 착잡한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문성휘 : 저 같은 경우에는 하나원에 와서 6.25에 대한 것을 들었을 때 북한에서 많이 논의를 해봤으니까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근데 미군이 49년도에 모두 철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게 정리가 됐습니다. 이래서 북한이 모순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에 오면 참 재미있는 게 개별적인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지 않습니까? 백선엽 장군 같은 사람들이 책을 내서 6.25 전쟁 이전부터 아주 자세히 서술했는데 이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닙니다. 이 책들을 읽어보면 당시 상황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근데 북한엔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있어도 전쟁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전혀 없습니다. 왜 그럴까? 두려운 겁니다. 실지 북한에선 인민군은 아주 순결하고 고결하게 싸웠다... 양민들을 학살한 건 미군이라고 하는데 북한의 류경수 탱크부대가 들어와서 서울대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함흥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이런 역사를 북한 사람들 전혀 모르는 겁니다. 참 그것이 죄악입니다. 북한에서도 6.25 전쟁에 참여한 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겠는데 그걸 다 묻어 버린 겁니다.

김태산 : 6.25를 지내면서 보니까 여긴 그래도 현충원 그러니까 6.25때 피를 흘리면 죽은 군인들이 묻힌 곳에 가서 대통령도 인사를 하고 각계 인사들도 인사를 하러 가지 않습니까? 제가 이 방송을 하면서 몇 년 전에 분계선 근처에 있는 적군 묘지에 갔댔습니다. 전쟁 끝나고 발견된 인민군의 시체를 거기 묻어 준 것인데 그래도 여기 사람들, 인민군 묘를 몽땅 다 북쪽으로 묻어줬더라고요. 여기 전사자들은 그래도 국가가 찾아가서 영혼을 달래주고 또 아직까지 전사자 유골을 찾잖습니까? 북쪽은 분명 여기에 낙동강 전투 등에서 죽은 수 백구의 인민군 시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안 찾죠. 공산주의 동지적 의리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문성휘 : 북한에 가면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이라고 있는데요. 혁명열사릉에는 보통 항일 운동 하던 사람들이 많이 묻혀있는데 그곳도 꼭 김일성 곁에서 항일 투쟁하던 사람만 묻었습니다. 그 다음 사회주의 애국열사릉, 여긴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한 일꾼들을 묻었고 6.25 전사자 묘는 사실 없습니다.

김태산 : 평양 해방산에 인민군 묘지라고 형식적으로 있기는 합니다. 근데 조선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근데 해방산에 묘지 하나 해놓고 거기에 국가수반이 가본 적이 있습니까?

문성휘 : 김일성이 일생 동안 단 한번이라도 6.25 전쟁에 참가한 사람의 묘를 찾아보았나? 이것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겁니다. 김일성이 왜 못 찾았나?

진행자 : 두 분 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있으십니까?

김태산 : 없죠. 저도 기억은 없죠. 그런데 제가 인민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1950년대 말이죠? 교장선생님이 ‘우리는 비록 작지만 여러분들도 소련에만 가게 되면 와... 미국과 싸워 이긴 전쟁 영웅들이 왔다고 칭찬해준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전쟁이라는 걸 몰랐던 때인데 교장 선생이 그 말 하던 게 지금도 쟁쟁해요. 첫 학교에 들어갔을 때 바로 전쟁 얘기를 얘들한테 해준 거죠.

문성휘 : 저는 전후 세대이지만 엄청 많이 들었어요. 부모 세대부터도 그렇고 한국은 전쟁에 별 신경을 안 쓰지만 북한은 늘 정세가 긴장하니까 자연히 노인들이 그 얘기를 해주는 겁니다. 언젠가 한번 반장하고 같이 어딜 갔어요. 그 분이 나이가 꽤 많은 분이었어요. 둘이서 바위 밑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문가야, 너 여기가 어딘지 아냐’ 물어요. 전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여기가 6.25 전쟁 때 피난 간 사람들을 인민군이 그렇게 많이 죽인 장소’라고 하는 거예요. 아주 깜짝 놀랐어요. 집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그때 군대 징집을 피해서 산에 몰래 들어가 숨어있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대요. 집에서 밥도 날라다 주고 거기서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그랬는데 어느 날 인민군이 산을 포위해서 한곳에 모아놓고 다 쏴죽였답니다. 끔찍한 얘기죠. 북한에선 전쟁에 대한 이런 얘기들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 겁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는 인민군이 자행한 학살과 함께 국군이 행한 잘못들도 숨기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김태산 : 북쪽 사람들도 사실 전쟁, 전쟁해도 이제 꿈만 한 거예요. (꿈 같은 거예요) 근데 북한 당국에서 계속 전쟁에 대한 자극을 줍니다. 적위 훈련 1년에 뭐다해서... 정신적으로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이 주죠.

진행자 : 근데 참 북쪽에서는 전쟁에서 일반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쪽은 전쟁하면 그런 얘기를 주로 하는데요.

김태산 : 피해에 대해서는 미제 침략자들이 비행기를 가져와서 온 시내를 폭격했다 그거 하나 말하지요.

진행자 : 전쟁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자식을 잃고 그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까?

김태산 : 말하자면 전쟁 공포증을 갖는다고 해서 그런 얘긴 안 하는 거예요.

문성휘 : 군인에게도 같아요. 한국은 군인들도 생활관에서는 인터넷이 허용되지 않습니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미그 29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북한이 몇 대를 갖고 있고 어떤 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다 알 수 있는데요. 북한은 공포심을 심어준다고 이런 정보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진행자 : 영웅에 대한 환상은 심어주고 사실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군요.

김태산 : 전쟁 공포증 가지면 전쟁 반대한다고 절대 알려주지 않는 거죠.

문성휘 : 한국의 미사일에 비행기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면 전쟁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김태산 :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체제 안정을 위해서 어떻게 역사를 기만하고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내가 여기 와서야 알았는데 이걸 어떻게 저쪽 사람들에게 전해주느냐가 문제인데요...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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