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유행(1) 허리춤 열쇠 꾸러미 유행, 아십니까?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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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남성정장 브랜드 제일모직 갤럭시 '뉴 웨딩 수트' 출시 행사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남성정장 브랜드 제일모직 갤럭시 '뉴 웨딩 수트' 출시 행사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남쪽은 가을이 완연한데요. 계절이 바뀌는 시기... 남쪽 신문에서 올 가을, 겨울 유행이 뭔지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가 자주 보이네요. 올 여성복의 유행 색상은 버건디, 그러니까 짙은 자주색이고 아주 화려한 문양의 상의와 자기 본래 치수보다 2배 이상 큰 겉옷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제까지 그렇게 촌스러워 보였던 옷이 유행이라면 어느 순간 예쁘게 보이고 갖고 싶고 입고 싶었던 경험, 있으십니까?

북쪽 사회도 힘들다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있고 또 그 사이에 돌고 도는 유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북쪽에선 요즘 뭐가 유행인가요?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은 남쪽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수 만 가지 유행에 대한 얘깁니다.

진행자 : 북쪽에서도 유행이 있죠?

문성휘 : 그럼요. 북한에서도 굉장히 유행이 빠르고 또 예민해요. 사춘기에 있는 중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은 진짜 유행에 민감합니다. 또 북한에서도 세대별로 유행이 굉장히 다른데요. 결혼하기 전엔 옷차림에 굉장히 신경 쓰고 사회에 갓 나온 젊은 친구들은 한국 영화를 누가 더 많이 봤나, 외국에 대한 정보를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나, 결혼한 사람들은 집이나 가전제품, 예를 들면 밥 가마 같은 데서 유행을 많이 따지죠.

김태산 : 북한에도 유행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데 문 선생과 제가 남쪽에 들어온 시간이 차이가 나잖아요? 저는 2천년에 북한을 떴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외국의 유행이 북한에 들어오려면 10년이 넘어 걸렸어요. 고난의 행군 이후엔 그런 유행이 좀 더 빨리 들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남쪽에서 들어간 드라마나 영화가 참 이런 유행에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물론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유행이 바뀌는 남쪽의 빠른 속도를 따라갈 순 없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빨라졌어요.

진행자 : 참... 저나 여기 두 분이나 유행에 그렇게 민간한 사람들은 아닌데요. (웃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볼까요? 요즘은 뭐가 유행이에요?

김태산 : 저는 항상 낚시 때문에 강가에 나가 있으니까요. 거기 가서 보면 요즘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자전거 탈 때 입는 옷, 안경, 신발, 장갑, 가방 같은 게 다 유행이 있어요. 그리고 그 유행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몰라요. 요즘은 자전거도 아무거나 입고는 못 타겠어요...

진행자 : 김 선생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군요? (웃음)

문성휘 : 에이... 선생님! 그건 자전거를 전문 타는 동호회의 성원들이나 그렇지요. 내 자전거는 이제 사놓고 열 번이 탔는지 녹이 슬어 가는데요. (웃음)

김태산 : 그러니까 문 선생처럼 공식 기관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은 유행에 따르기 힘든 거예요. (웃음)

진행자 : 왜 처음엔 등산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냥 운동화에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산에 갔다가 너무 창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들 등산복을 잘 차려입고 있으니 그냥 평상복 차림이 이상하더라고요.

김태산 : 맞아요.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딱 농촌에서 온 사람 같죠? (웃음)

문성휘 : 아! 그리고 중요한 유행이 또 있네요. 삼성에서 새로운 스마트 폰, 휴대 전화가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게 나오면 또 유행이죠. 진짜 질이 좋고 잘 만들었던데 제가 전화기를 한 달에 한 번 바꿀 수는 없고요. (웃음) 근데 한국을 보면 유행이라고 하면 한 집단 안에서 세분화 되서 유행을 해요. 북한에서는 뭐가 유행이다 싶으면 그냥 확 번지거든요.

김태산 : 남녀노소에 나눠서 다 유행이 다르죠. 저는 그야말로 이제는 ‘노’에 속해서 별로 바라는 것도 없지만 우리 집에 딸이 둘이거든요. 우리 큰딸아이가 대학생인데 이 아이는 신발 하나 바꿔 신는데 3개월입니다. 아무리 혼을 내도 소용이 없어요.

문성휘 : 유행 못 따라가요... 저는 삼성 카메라 새로 나왔을 때 집사람한테 일주일 동안 애걸복걸하면서 샀는데 한 열흘 동안은 산에도 가고 마을도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찍었어요. 근데 찍고 나서 보니까 컴퓨터에 찍어놓은 사진을 저장할 공간도 마땅치 않고요. 이제 장 안에 넣어놓았는데 가끔씩 눈에 띄면 아니, 내가 왜 이걸 샀니?? (웃음)

진행자 : 유행이여서요. (웃음)

문성휘 : 바로 그거죠!

김태산 : 저는 세계적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제일 빠른 도시가 프랑스 파리라고 들었어요. 한 귀족 부인이 장갑 한쪽을 찾다가 못 찾아 한 쪽만 끼고 나갔는데 그게 유행이 돼서 다른 부인들도 다 장갑을 한쪽만 끼고 다녔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근데 요즘 보면 한국의 젊은 아가씨들은 유행에 대해서는 프랑스 뺨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남쪽에서 만든 상품들이 아주 좋지 않습니까?

문성휘 : 이번에 보니까 삼성이 도시바, 소니 같은 유명한 전자 상표들을 모두 젖혔는데요. 매출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한 때 파나소닉, 도시바, 소니 같은 기업들이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했어요.

김태산 : 근데 전자제품 뿐 아니라 먹는 것에도 유행이 있잖아요? 저는 술을 즐기니까 그런데 눈길이 가는데 지난해까지는 탁주, 막걸리가 아주 유행이었잖아요? 남쪽 안에서만 유행이 아니라 수출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또 그 소리가 쑥 들어갔네요.

진행자 : 두 분 다 집에 유행의 선두두자들이 계시죠? 두 분 다 딸들이 가장 유행에 민감한 20대 초반인데요. 지켜보시면 좀 어떠세요?

문성휘 : 나는 암만 봐도 뭐가 유행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애들은 뭐든지 처음 나오는 걸 좋아해요.

김태산 : 우리는 보지도 못한 걸 쓰고 들고 입고 신고... 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한 달 내지는 두 달에 한 번씩은 뭐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걸 다 들어 주려면 나는 저 속에서 막 뭐가 올라오죠. (웃음) 우리 북쪽 사람들 같으면 겨울 신발 하나, 여름 신발 하나면 행복한 줄 아는데 딸들은 계절별로 바꿔 신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날짜별로 바꿔 신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유행이라는 게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같이 돈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들에게는 고달픈 문제입니다.

문성휘 : 예를 들여 갤럭시 s3 같은 새로운 기계가 출시된다. 미국 어느 전시회에서 선 보였다 이런 소식이 나오면 그게 나올 날만을 기다려요. 그리고 얘들은 새로 나와서 인기 있는 음악에 굉장히 신경을 써요. 나는 들어도 하나도 좋은지 모르겠더만....

진행자 : 정말 어떤 유행들은 우리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죠. 근데 재밌는 건 그런 유행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눈과 귀에 익으면 또 괜찮단 말이죠...

김태산 : 사실 유행이 나쁜 게 아니지요.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작용을 하고 유행을 따라가면서 생산도 자극되고 유통도 발달합니다. 몽땅 낡은 것만 추구하면 경제가 어떻게 되겠어요? 근데 유행을 너무 지나치게 따라가니까 절약하는 마음도 없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안타까운 거죠. 가만 보면 유행을 따라가려는 젊은 세대와 그 속도를 조절해줬으면 하는 우리 늙은이들의 싸움 같아요.

진행자 : 근데 두 분은 젊은 시절엔 어떠셨어요? 두 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문성휘 : 우리 때는 열쇠를 잔뜩 갖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어요. 바지 허리띠에 고리를 매서 열쇠를 잔뜩 매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어요. 북한은 도적들이 있으니까 집에 자물쇠를 꼭 달아서 잠그고 다녀요. 집에도 자물쇠를 잠그고 창고도 자물쇠를 잠그고 직장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그래서 열쇠가 많으면 뭔가 권력도 있고 부유해 보이는 거죠. 그게 유행이 돼서 쓰는 열쇠든 안 쓰는 열쇠든 몽땅 주워 모으는 게 전쟁이었다니까요. (웃음)

열쇠 꾸러미 유행, 청취자 분들 중에서도 분명 따라해 보신 분들이 계시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웃음도 나올만한 얘긴데요...

제가 중학교 때는 남쪽에서 기장이 길고 통이 아주 넓은 바지가 유행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질질 끌리는 통 바지를 입고 온 동네 바닥을 다 청소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행은 그냥 단순한 또래들의 유희거리로만 웃어넘길 순 없습니다. 유행 자체가 산업을 주도하고 또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도 하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 얘기 이어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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