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절대로 국가 수매로 넘겨선 안 되는 작물들
2023.09.29
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추석이 지났습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네요.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소장님, 북한에 계실 때는 차를 많이 드셨나요?
조현: 아니오. 북한에선 거의 못 마셔 봤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식사한 뒤 따뜻하게 차 한잔을 나누면서 얘기하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차라고 해도 대부분 숭늉에 그치죠. 다만 요즘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외화벌이 하던 분들이 차 문화를 알아와서 조금씩 즐기기 시작했고요. 한국 영화가 워낙 많이 퍼져 북한 분들도 ‘저런 게 있구나’ 이렇게 알게 됐습니다.
MC: 그렇군요. 차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땐 속을 좀 달래주는 효과도 있고요. 또 마음이 불안할 때 한잔, 천천히 마시면 심신이 차분해지기도 하죠. 소장님은 어떤 차를 좋아하십니까?
조현: 저는 녹차를 좋아합니다. 똑같은 차나무의 잎을 어떻게 가공하는지에 따라 차는 여러 종류로 구분됩니다. 녹차는 제조 단계에서 열에 의해 찻잎의 효소 활성을 떨어뜨리면서 녹색만 남긴 차고요. 홍차는 열 없이 찻잎을 시들게 한 후에 잎 성분의 산화를 진행시켜 완전히 발효되도록 만든 차입니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 단계로 발효 정도가 30~70%인 우롱차도 있고요. 또 찻잎을 장시간 쌓아 두고 미생물이 활동하도록 만들어 충분히 발효시킨 보이차도 있습니다. 북한엔 이런 차들이 거의 유통되지 않아요. 하지만 빨리, 많은 분들이 함께 즐길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MC: 방금 말씀하신 종류는 차나무의 잎을 가지고 만든, 북한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차들인데요. 이런 계열의 제품으로써, 북한이 자랑하는 ‘은정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발이 오래되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게 녹차 계열이지요?
조현: 네. 녹차의 일종 맞습니다. 은정차는 북한을 대표하는 차 상품이 맞습니다. 김일성의 은정이 깃들어 있는 차라는 뜻이지요. 2008년쯤 개발되었고요. 2018년 9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이 공식 선보인 음료이기도 합니다. 4.27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한은 이 차를 직접 판문점으로 가져와 공식 만찬에 내놓았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차나무는 원래 따뜻한 남방에서 잘 자라니까 북한은 사실상, 차나무 재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기후적으로 불가능한 차 재배를 25년 동안 실패한 끝에 영하에서도 자랄 수 있는 차나무 재배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1982년 중국 산둥성을 방문했던 김일성이, 같은 위도에 있는 북한 땅에서도 차를 재배할 수 있도록 지시했고요. 그 일이 25년 뒤에 성공한 거죠. 처음 재배를 시작한 곳이 북한 강원도 고성이고요. 이후 황해남도 강령으로 재배지를 확대했습니다. 북한 ‘조선은정차무역회사’에서 판매하는 은정차 통에는 황해남도 강령에서 생산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도록 크게 ‘강령녹차’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은 아예 맛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고위층이나 해외 국빈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만든 차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은정차’가 아니라, 권력의 ‘욕심차’가 되겠네요.
MC: 어려운 차나무 재배에 성공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정작 그 성과를 누려야 할 북한 주민들이 마실 수 없다니 너무 아쉽네요. 은정차를 마실 수는 없지만 우리 선조들 때부터 즐겨 마셨던, 다른 차도 있잖아요? 인삼차, 결명차, 생강차, 오미자차… 이렇게 다양한 열매와 뿌리, 잎을 말리거나 우려 마셨던 차들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나요?
조현: 모두 잘 알고 해당 작물이 북한에 남아있긴 하지만 일반인이 차로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일부 부유층만 마실 것 같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거리에 즐비한 찻집에 아무 때나 찾아가 어떤 차든 마실 수 있는데요. 북한에도 찻집이 있기는 하죠. 예를 들어 평양 창전거리의 은정찻집에는 녹차, 홍차, 철관음차, 강냉이수염차를 팝니다. 하지만 초야에 묻혀 사는 농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굶주린 배를 안고 평양에 차 마시러 갈 수는 없잖아요. 사실 더 급한 건 배고픔을 해결하고 소득을 올린 후에나 농민들도 차 마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거죠. 더구나 크게 아쉬운 것은 북한에선 민간인이 차를 제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부분 외화벌이 회사에서만 제조됩니다. 그래서 저는 농민들이 직접 차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것도 훌륭한 벌이가 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이 이용할 만한 다양한 작물이 있잖아요? 인삼, 메밀, 당귀, 생강… 등등을 재배한 후에 직접 차로 만들어 팔아서 소득을 올리고, 그렇게 농민들도 차를 마시는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들기 쉬운 차 즉 메밀차, 보리차, 강냉이수염차는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으니까요.
MC: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농민들이 직접 차를 만들어 팔 수 있다면 생계에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조현: 맞습니다. 먼저 북한에서 차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고성, 강령 지역의 청취자 분들께 드리는 말씀은… 차나무만 재배하지 마시고, 한국 농민들이 하는 방식대로 직접 만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차를 만드는 ‘제다법’ 중에서 특히 덖는 방법은 우리나라 전통 방법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방법입니다. 덖는 것은 물이나 기름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볶아서 타지 않을 정도로만 익히는 것입니다. 먼저 수확한 생잎을 잘 골라낸 후에 가공의 첫 단계로 250~350로 가열한 다음에 가마솥에서 2~4분 쪄서 색을 죽이는, 살청 작업을 합니다. 이때 생잎 속에 있는 효소의 활성이 파괴되어 발효가 억제되지만 차의 성분은 사라지지 않은 채 유지됩니다. 그렇게 살청된 찻잎을 잘 비벼주면 세포조직이 적당히 파괴되어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납니다. 이렇게 찻잎의 덖기와 비비는 작업을 3~5회 정도 실시합니다. 이 과정이 차를 만드는 기술의 핵심이고 덖고 비비는 기술에 의해 차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혹시 찻잎의 수분을 확인할 장비가 있다면, 수분이 거의 20%까지 줄었을 때 좋은 차가 되는 겁니다.
MC: 정성이 그렇게 들어가서 맛도, 향도 좋았나 봅니다.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은데요. 차나무를 재배할 수 없는 지역의 농민들은 보리, 인삼, 생강 등 가능한 작물을 차로 만들어 바로 시도해봐도 좋을까요?
조현: 그럼요. 저는 사실 차나무를 재배하는 것보다, 차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작물을 농민이 직접 가공한 후 팔아서 농장과 농민이 돈을 버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차나무를 재배할 수 없는 지역의 분들은 인삼이나 생강 등을 절인 후에 차로 팔아 보시면 어떨까요? 농민들이 개인 텃밭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절대로 국가 수매 시키지 말고 한번 더 가공해서 팔면 돈을 더 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6차 산업이라는 방식이 있는데요. 1차로 생산하고 2차로 가공해서 팝니다. 3차로 그 과정에서 마을을 관광지로 꾸려 돈을 법니다. 보통 각 지역의 특산품을 이런 식으로 팔더라고요. 이 모든 과정이 농가 소득을 2배로 만든다고 하여 6차 산업입니다. 북한 분들에게 아직 차를 즐기는 문화는 없지만 바깥 문화가 퍼지는 속도로 봐선, 차 문화를 알게 되면 급속도로 수요가 높아질 것이 확실하게 예상됩니다.
MC: 네. 소장님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