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한국은 아직 본격적으로 김장철이 시작되지 않았는데요. 북한은 지금쯤이면 김장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일 것 같네요.
조현: 네. 함경북도나 양강도 같은 길주 이북 지역은 벌써 끝났고요. 길주 이남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11월이 시작되었지만 이상 기후 현상 때문에 서울은 아직도 낮에는 좀 더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북의 김장철이 점점 더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MC: 올해 북한에선 작년보다 대부분 작물들의 작황이 훨씬 좋아졌다고 발표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장철 현장이 궁금하네요. 한국처럼 잔치 분위기인가요?
작년보다 증가한 배추 생산량
고추, 마늘은 턱없이 부족한 북한
조현: 북한에서 김장은 대대적인 연례 행사고요. 이땐 탁주도 나눠 마시고 고기도 좀 먹고 하니까 자연스레 잔치 분위기도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말씀하신대로 작년에 비해 작황이 좋아서 한숨은 돌린 상황입니다. 올해 채소 농사가 잘 되었대요. 작년엔 배추 1kg당 가격이 북한 돈으로 1700원~1800원이었는데 현재 1300원 정도로 내려갔습니다. 다만 김장이란, 겨우 내 부족한 식량 부족분을 지금 있는 거 다 끌어다가 만들어야 하거든요. 배추는 그나마 괜찮은데 그 외의 것들, 양념으로 쓸 고추나 마늘 등등은 여전히 많이 부족해서 높은 값에 거래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고추 같은 경우는 작년과 비슷하게 1kg당 1만원이 넘어갑니다. 당연히 북한 내 생산으로 수요를 다 보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요. 중국산이 들어와야 수요를 충족합니다. 그러니 전혀 풍족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MC: 그렇군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김장 안 하는 집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늘 김치를 구입할 수 있으니까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양만큼만 사먹는 게 일반적 분위기가 됐는데요. 반면에 당연히 김장을 하는 집도 여전히 많습니다만, 집집마다 다르긴 해도 아마 4인 가족이면 20kg 좀 넘게 담그지 않을까 싶어요. 반대로 북한은 김장 양이 어마어마 하던데요.
조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김장전투 하면 1인당 김치와 염장용 채소를 다 합쳐 200kg은 필요합니다. 4인 가족이면 800kg ~ 1톤 정도 채소를 확보해야 하는 거죠. 김치를 얼마나 담그느냐에 따라 반년치 식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추운 것은 물론 워낙 겨울에 먹을 반찬거리가 없으니까 김치 없으면 정말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요즘에 남한 사람들은 워낙 다양하게 먹으니까 김치를 많이 안 먹지만 북한 주민들은 분위기 자체가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에 김치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집마다 담그는 김장 양도 많은 거죠.
MC: 북한에서 전투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쩌면 주민들에게 있어서 진짜 전투는 '김장전투' 아닐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반년 식량인데, 그 많은 채소를 집집마다 실어 나르려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겠어요.
조현: 지금 북한은 한국의 과거 60년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도 과거엔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같이 김장하고 그랬잖아요. 진짜 힘들어서 품앗이 없이는 김장을 담글 수 없고요. 요즘 한국과 북한의 다른 모습 중 하나가 한국 남성은 이제 집안일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요리도 하고 빨래, 쓰레기 버리기, 육아 등등 다 같이 나눠 하는데 북한은 아직 그렇게까지는 안 합니다. 그러나 김장철엔 남자들도 많이 움직입니다. 물론 여성들이 80% 이상 하지만 힘쓰는 일이 많잖아요. 김장 전투는 생존 경쟁이니까 등짐도 날라야 하고 달구지, 구르마 모두 총동원 되어야 합니다. 겨우 내 묻어둘 김치움도 파 놓아야 하고요. 이걸 남자들이 합니다.
김장철만 되면 보위부, 안전부에서
배추밭, 무밭을 돌아보는 이유
MC: 그렇군요. 정말 다 같이 도와야 하겠네요. 그런데 그 많은 배추, 무 등의 채소를 확보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조현: 그래서 안타깝지만 남자의 가장 큰 역할은 김장철에 얼마나 좋은 배추와 무를 많이 가져오는가, 그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그 집안 가장의 능력과 수완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김장용 양념인 고추와 마늘 그리고 사용하는 젓갈의 종류와 양이 어떤가에 따라 계층과 신분이 갈리는 거죠. 북한에서 농장원들이 열심히 농사 지으면 수확할 때쯤에 당 기관과 보위부, 안전부 같은 권력기관에서 나와서 밭을 쭉 돌아보고 농사가 가장 잘된 배추밭과 무밭을 자기들 몫으로 찜하고 먼저 가져갑니다. 그 다음에는 군인들이 들어와서 군수용으로 타고 앉습니다. 아무도 못 가져가게 경비 선다는 뜻이에요. 제가 북에 있을 때는 그랬습니다. 농사가 가장 잘 안 된 밭이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MC: 열심히 농사 지은 농민들에겐 가장 허탈한 순간일 것 같은데요. 왜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세요?
조현: 북한 내 고질적인 병폐인 부정부패가 가장 큰 문제겠죠. 다른 입장에서 보면 지역간 차이도 큽니다. 일단 지역에 따라 배추 값이 정말 다르거든요. 그나마 황해도, 평안도 쪽은 좀 괜찮은데 북쪽 추운 지역은 생산도 얼마 못하니까요. 양강도 혜산 지역 같은 경우는 배추 1kg당 가격이 평안도쪽보다 30%나 더 비쌉니다. 물건을 제대로, 빨리, 많이 유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요. 노동당이 그걸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철도도 개선해서 사람도 농작물도 많이 옮겨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요. 도로 상태도 개선 시키고 운송수단인 차도 많이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요. 자동차 같은 경우도 직접 만들지 못하면 중국에서 수입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철도, 운송수단 확충으로
지역 내 격차 해소해야
당장, 지금 같은 경우엔 열차 편성이라도 좀 늘려서 그나마 좀 유통이 빨리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거든요. 그게 배려잖아요. 노동당에서 진심으로 인민들을 좀 위하면 좋겠네요. 이런 점들이 개선되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일단 많이 심어서 더 많이 수확하는 게 급선무겠죠. 또한 제 기억에 김장전투가 가장 잘 되었던 시절은 2000년대 초반이라고 봅니다. 고난의 행군이 지난 후, 시장이 생겨나면서 그때 자율적으로 가격이 형성됐거든요. 이때가 사회주의가 가장 잘 되었다던 70~80년대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70~80년대땐 배추도 양념도 주는 것만큼만 했어야 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니까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배추를 가져갈 수 있더라고요. 그게 참 좋았는데 지금의 북한은 다시 과거보다 못한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안타깝습니다.
MC: 북한 주민들에게 김장전투는 여타 당국이 시켜서 하는 전투와는 다른,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전투인 것 같은데요. 김치에만 매달려 있는 북한의 먹거리 환경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조현: 북한에 비해서 얘기하면 한국은 지금 김치를 거의 안 먹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다른 식품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도 새파란 쑥갓이나 부루(상추), 배추 등 채소가 생산되지 않습니까? 반면에 한국에서도 생산 안 되는 것들이 많지요. 그러나 그건 수입이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채워 나갑니다. 그만큼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소통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젠 북한에서도 김치 말고 다른 식품들을 많이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김치 너무 좋지만 겨울에 김장 때문에 걱정하는 북한주민들 얼굴이 아른거리네요. 어떻게든 배부른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C: 한민족만의 훌륭한 자랑이자 지역마다 그 특색도 색다른 김치, 남북한이 협력해서 대대로 이 문화 잘 지켜나갈 수 있길 바라고요. 다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김장전투가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김치축제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