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 공부해 고향 북한이나 아프리카에 가서 아픈 사람 도와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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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자유아시아방송의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 시간입니다.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은 사람 중심의 보건, 복지, 의료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각국의 노력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남한 간호학과에 합격한 탈북 학생과 보건 분야를 택한 탈북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들여다 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4년제 대학교를 다니다가 혹은 졸업한 뒤 다시 전문대행을 택하는 현상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국회에 제출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대학으로 다시 입학한 신입생이 7천2백명을 넘었습니다. 특히, 간호학과는 매년 등록인원 1위를 차지했습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학과 선택에서 간호학은 2019학년 전공별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 탈북 학생이 최근 상명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해 눈길을 끄는데요, 서울에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 재학생 은진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매일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바쁜 은진 씨와 어렵사리 통화했는데요, 은진 씨는 신변보호 차원에서 성, 고향, 가족관계 등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기자: 한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은진) 2018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기자: 하고 많은 전공 중에서 간호학을 택한 계기가 있나요?

(은진) 제가 북한에서 조금 아팠고, 제 가족 역시 아파서요. 그리고 여기 남한에 와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간호학을 택했습니다.

기자: 북한을 고향에 둔 친구들 가운데 간호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있나요?

(은진) 없습니다. 남한에 온 친구들 중에 간호학 공부한 사람 못 봤고요, 주변에도 간호학 하는 사람 없어요.

기자: 혹시 북한에 있을 때 간호사에게 치료받아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나요?

(은진) 아니요. 저는 간호사고 의사고 (만나 치료 받은 적이 없어요). 그저 약 사다가 집에서 치료했어요. 북한에 약국이 있거든요. 거기 가면 저희가 달라는 약은 다 팔거든요. 그걸 사다가 치료하곤 했습니다.

기자: 약이 그다지 비싸지 않나 보죠?

(은진) 비싸지요. 약방이 엄청 비싼데요.

<여러분께서는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을 듣고 계십니다>

동남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김희숙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 대학생이 남한에서 가장 많이 선택한 전공 중 하나가 간호학인데요, 2017년 기준 사회복지학, 경영학, 중국어학에 이어 4번째입니다. 탈북 대학생들은 취업 문제에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서, 비교적 취업이 쉬운 간호학과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전공하는 학생이 많은 만큼 중도 탈락 학생도 많다고 하네요. 한가지 문제는 엄청난 공부량입니다. 은진 씨도 이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은진) 어쨌든 자지 못하고 공부해야 하고, 다 그렇겠지만, 간호학과는 특별히 그렇게 빡 세게 공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양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은 영어입니다. 실제로, 한국 KBS 방송의 2016년 보도에 따르면, 남한 내 탈북 고등학생 중 60% 이상은 영어 과목에서 기초학력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고등학생 25%가 받은 영어 우수학력도 4%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2016년 현재, 전국 탈북 학생은 1000여개 학교에 2천4백여 명이 넘었는데요, 은진 씨는 생리학, 병리학 등 기본 전공보다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의학용어 학습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은진) 북한에서 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한국처럼 세게 영어 공부를 하지 않거든요. 영어를 이렇게 일러주지 않고, 영어를 그다지 하려고도 안 했고요.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제 주변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그래 보니까, 남한에 나와서 간호학을 공부하자니까 의학 용어가 거의 다 영어로 된 거에요. 저희가 그런 새로운 면을 접하니까 이게 제일 힘듭니다. 영어가 제일 힘들어요.

은진 씨의 말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는 의료용어에는 생소한 외래어, 특히 영어 단어가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남북한 의학용어 차이는 심각합니다. 예컨대, 북한은 차트를 ‘깔따’, 휠체어를 ‘밀차’, 마약중독을 ‘아이스 중독’이라고 표현합니다. 응급처치는 ‘1차 치료’, 진료하는 것은 ‘병 보다’, 엑스레이는 ‘뢴트겐’이라고 합니다. 한약을 ‘고려약’이라고 하고 항문은 ‘홍문’이라고 하니 남한과 많이 다르긴 다르죠?

다행히 은진 씨처럼 간호학을 공부하는 탈북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요, 고려대학교 간호학과 신나미 교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신 교수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남북한의 간호사 면허제도를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올해 8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남북교류에서의 간호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자타공인 북한 전문가입니다. 신 교수는 은진 씨처럼 간호학을 선택한 탈북 학생들이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신나미) 북한에서 온 학생들이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간호학을 선호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직업 안정성 때문에요. 이 학생들이 실제로 병원에 취업해서는 그리 오래 일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탈북 간호 전공) 학생만 해도 임상에서 잘하고, 바라기는 공부도 더 해 석 박사까지 하고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 간호제도를 개선하는 인재로 컸으면 하거든요. 많은 학생이 현실적 이유로 선택은 하지만, 공부의 목적, 의미 등까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직접 지도를 해보면서 느낀 점은 북한에서 온 학생들을 돌봐주고 싶어서 자주 손을 내미는데 제 손을 잡기가 (어려운 듯해요). 여러 반응이 있는데, 유심히 관찰해보니,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학생들이 있더군요. 또, 한국 내 교회나 좋은 뜻을 가진 분들이 학생들에게 해외로 나갈 기회를 많이 제공해줍니다. 제 경우, 학업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으로 미국에 있는 가족이 여름방학에 한국에 나오면, 조카들 시켜서 탈북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반을 열어 도와줍니다. 탈북 학생들이 학원을 다녀도 영어가 늘지 않는다고 해서요. 하지만, 영어가 팍팍 늘지 않죠, 언어라는 게.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은진 씨만큼은 다가올 새로운 도전의 길을 잘 헤쳐나갈 듯 합니다. 왜냐면,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고 뚜렷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진 씨의 말, 들어보시죠.

(은진) 앞으로 꿈은 저도 간호학 공부해서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고 싶습니다. 북한의 의료시설이 조금 미약하니까요. 그 곳에 가서 치료해주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요. 아프리카에 나가서, 그런 사람들도 생명이 있잖아요. 그런데 가서 봉사할 겁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좋은 간호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던 데요, 간호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영어가 많은 의학용어를 습득하는 등 자기 분야에 대해 정확히 알고, 마음까지 따뜻한 간호사,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OUTRO) RFA 기획 프로그램 ‘더 나은 보건, 복지 세상’, 오늘은 최근 남한 간호학과에 합격한 탈북 학생과 보건 분야를 택한 탈북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기획, 제작, 진행에 장명화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