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주민의 추억 떠올릴 담백한 남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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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도명학 :오늘은 최승권 시인의 시 "사랑해서 미안했습니다"를 준비했습니다.

MC: 이 작품을 쓴 최승권 시인에 대해서도 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최승권 시인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서 태어나 석산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교육학박사를 수료했습니다. 등단은 〈중앙일보〉 신춘문예 「겨울수화」 가 당선되면서 했고, 시집으로는 "정어리의 신탁",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으로 내려 왔을까"등이 있습니다. 최승권 시인의 가까운 선배인 곽재구 시인은 최승권 시인의 시에 대해 한마디로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시 세계가 어떤 것일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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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각지서 건군절 76주년 기념 공연 북한은 조선인민군창건(건군절) 76주년을 맞아 각지에서 뜻깊게 경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 (나기성/YNA)

MC: 그럼 시낭송을 먼저 들어 보시겠습니다.

<사랑해서 미안했습니다 / 최승권>

(출처: 유투브채널 ‘시낭송작가 고은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분명 미안한 일이 아닐진데

그대에게 건넨 제 모든 사랑은 모두 미안한 사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사랑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대라는 사람을 알고 난 후에

얼마나 많이 흐느껴야 했는지... 그래서 내 남은 눈물이 모두 말라버렸는지...

이제는 무척이나 덤덤해진 나를 보며 요즘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젠 어지간히 슬퍼서는 눈물이 나지를 않습니다.

사랑해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덧없이 주기만 했던 이 사랑에

마음에도 없이 받기만 했던 그대...얼마나 힘겨우셨겠습니까...

그간 정말 미안했습니다. 원하지도 않던 그대의 아픔 받이가 되어

홀로 헤매던 이 바보같은 사랑을 보며 그대는 또 얼마나 안쓰러워 하셨겠습니까...

정말 사랑해서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접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 미련한 아이의 외사랑도 마음처럼 쉽게 접혀지지가 않아...

앞으로도 기약없이...이 미안함 그대에게 계속 건네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하 생략)

MC:이 시가 다른 시들과 달리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도명학: 사랑을 다룬 시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이 시의 특징은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역설적인 설정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시 구절에도 있듯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 미안한 일은 아니죠. 그게 일반적 통념이고 상식이죠. 물론 이 시와 제목이 유사한 가수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다만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는 사랑해서 미안해, 좋아해서 미안해, 그대 허락 없이 내 마음을 주어버렸어라는 구절을 계속 반복하는 형식이어서 이 시처럼 왜 사랑해서 미안한 이유가 무척 단순하게 전달됩니다. 그에 비해 이 시는 길게 설명은 하지 않지만 어떤 기구한 사랑에 대한 긴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으면서 섬세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의 그 미안함이란 오히려 더 열정적 사랑임을 반어적으로 구사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남한에서 씌여진 이 시가 만약 북한에서 발표가 되면 문제가 될만한 구절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리고 왜 문제가 될까요?

도명학: 만약 이 시가 남한 시인의 작품이 아니라 분단되기 이전, 그러니까 1945년 광복 이 전에 나온 시라면, 예컨대 김소월이나 한룡운의 작품이라면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내용과 맥락으로 보나 구절들을 보나 제가 보기엔 별로 시비당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남한 작품이니까 문제 되는 거죠. 또 이 시를 만약 북한 시인이 쓴 것이라면 그땐 더 심각해집니다. 시에 정치사상 선동이 전혀 배어있지 않은 시를 두고 혁명적이고 전투적이어야 할 대신 왜 소부르주아적 사랑을 다뤘냐고 걸고 들 것입니다.

MC: 만일 북한에서 이 시가 발표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바끼어야 하는지 몇 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명학: 글쎄요. 방금 말씀드렸지만 이 시는 남한 작품이기에 문제지 내용이 바뀐다고 해서 발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 작품을 북한 시인이 썼다고 가정하면 사랑해서 미안한 이유 자체를 수정해야 되겠죠. 예컨대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휴전선에서 근무하는 한 인민군 장교가 사랑 따윈 하찮은 감정이라며 군인의 본분과 임무 수행에만 정신을 쏟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한 여성이 오히려 그것을 진짜 사나이다운 매력이라고 느끼고 집착이라 할만큼 사랑을 추구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남자의 목표 실현에 부담이 되고 군의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보게 되면서 사랑한 것을 미안해하는 식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만 과연 그렇게 바뀌면 독자들이 진실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억지스럽고 괴이하다는 소리나 듣기 한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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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각지서 건군절 76주년 경축 북한은 조선인민군창건(건군절) 76주년을 맞아 각지에서 뜻깊게 경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 (나기성/YNA)

MC: 최승권 시인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도명학: 이성 간의 사랑에서 그 사랑이 늘 상대에게 행복감만 선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경험 또는 주변을 통해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짝사랑일 수도 있으나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또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임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안되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죠. 그럼에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스스로 잠재울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너무 사랑해서 일부러 파트너를 매몰차게 더 좋은 상대를 찾도록 밀어버리고는 평생 아픈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도 봤습니다. 아마 시인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잡함과 집요함, 그로부터 얻게 되는 아픈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호소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MC: 북한 주민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아마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오지 않을까요? 뭐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하는 데 왜 미안하다고 할까 하면서 의아해 할 것 같습니다. 워낙 북한에 순수한 사랑을 말하는 시가 적은데다 제목이 사랑해서 미안했습니다로 되어 있는 건 정말 낯설 것입니다. 그 의아함과 궁금함때문 더구나 이 시를 읽고 싶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읽다 보면 이해가 되겠죠. 구절구절마다 자신들이 경험했거나 어디서 본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참 좋은 시로 사랑받을 것입니다.

MC: 선생님께서 이 시를 읽으셨을 때 가장 가슴에 와닿는 구절은 어디였고 또 왜 그랬을까요?

도명학: 저는 이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힘겨우셨겠습니까...원하지도 않던 그대의 아픔 받이가 되어

홀로 헤매던 이 바보같은 사랑을 보며 그대는 또 얼마나 안쓰러워 하셨겠습니까...

이 구절이 특별히 와닿은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사생활 이야기라서 좀 쑥스럽긴 한데 저에게도 청년 시절에 너무 힘들고 아픈 일을 겪고 있을 때 시의 구절에서처럼 아픔 받이가 되어준 사랑이 있었습니다. 참 미안한 사랑이죠. 이 시가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MC: 전체적인 감상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시가 전반적으로 담백합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고 구구절절 솔직하고 절절한 느낌입니다. 화자가 저의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몰래 보는 것도 같고, 북한 담시 형식과 유사한 작시법으로 쓰여진 것 같은데. 참 시가 좋습니다.

MC: 네,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영은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담당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