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남녀평등 ‘종잇장의 빛 좋은 문구’ 불과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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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남녀평등 ‘종잇장의 빛 좋은 문구’ 불과 북한이 3·8 국제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주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지난 3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날을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는데요. 선생님, 그래서 오늘은 여성과 관련된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다고요?

 

도명학: 네 맞습니다. 오늘 갖고 나온 작품은 북한노래 ‘여성은 꽃이라네’와 ‘안해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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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3·8 국제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중앙과 지방에서 다채로운 축하공연들과 체육 및 유희오락경기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MC: 먼저 이 노래들은 어떤 작품인지 잠시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이 노래들 역시 북한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러하듯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는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 가사를 외형적으로만 봐선 여성을 존중해주고 아껴줘야 할 존재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즉 여성의 존재감과 남녀평등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으로 단지 북한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먼저, 첫번째 노래인 ‘여성은 꽃이라네’를 들어 보겠습니다.

 

1.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에 꽃이라네

한 가정 알뜰 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정다운 아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생활의 한 자리가 비어 있으리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에 꽃이라네

(출처: 유투브 채널 김삿갓’)

 

MC: 들어보니까 노래가 아주 경쾌하고 멜로디도 좋아서 듣기가 편안한데요.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가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도명학: 네, 정말 듣기도 좋고 부르기도 좋은 노래입니다.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습니다. 한국인들도 이 노래를 들어보고는 다들 좋다면서 북한에는 혁명을 부르짖는 전투적 노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생활적인 노래도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문학적인 면에서 봐도 가사가 까다롭지도 않고 통속적이면서도 시상도 기발합니다. 특히 여성을 꽃이라고 에돌지 않고 직접 선언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을 꽃에 비교하는 것이 비단 이 노래에서 처음이 아니지만 누구나 늘 알고 있는 상식적인 개념을 독특한 느낌으로 마음에 새롭게 와닿게 썼다는 것은 상당한 시적 기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이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남한의 인식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도명학: 공통점은 여성에 대한 사랑과 존중, 특히 가정이나 생활에서나 사회적으로 소중히 여겨져 마땅할 존재임을 표현하는 점일 것입니다. 남한에도 이 노래와 비슷한 내용의 노래들이 있으니까요.

 

차이점은 역시 가사에서 은연중 드러나는 체제에 대한 충성심 유도입니다. 가사에 보면 여성을 나라의 꽃, 아들 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 위훈의 길에 수놓을 꽃, 이런 구절이 그렇습니다. 나라의 꽃이라는 말은 체제를 위해 여성으로서의 역할, 여전사로서의 혁명임무를 다하라는 의미고, 아들 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이란 자녀들을 당과 혁명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전사로 키우라는 의미며, 위훈의 길에 수놓을 꽃이란 여성 본인도 열과 성을 다해 공로를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MC: 다음은 두번째 노래인 ‘안해의 노래’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1.

살펴주는 그 눈길 떠날새 없고

젖어 있는 그 손길 마를새 없네

사랑없인 잠시도 못 사는 마음

저를 위해 바친건 하나 없어라

안해여 안해여 그대는 나의 길동무

(출처: 유투브 채널 ‘chosunmusiccom’)

 

MC: 남편이 불렀으면 더 좋았을 노래 같습니다. 후렴구를 보면 ‘안해여 안해여 그대는 나의 길동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여자가 안해를 찾는 모습이 좀..이 노래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도명학: 그렇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불러주어야 할 노래가 맞으니까요. 그런데 실지로 남성 가수들이 이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생활 속에서도 남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지 여성들은 부르지 않습니다. 여성이 남자들 보는 데서 이 노래를 부르면 우스꽝스럽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여가수가 부르는 동영상과 음반이 대표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 노래를 처음 만든 곳이 여가수들로만 구성된 음악단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남성가수들도 참 잘 부르는데 왠지 남성가수가 부르는 음반이 나온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사에서 아내를 나의 길동무라고 하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인생의 먼길을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간다는 의미일 뿐 실지 생활에서 아내를 동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부부 사이에 동무라고 부르던데 중국도 같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북한과 달라서 의아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을 동무라고 부르면 화를 낼 일인데 말이죠. 북한에선 이혼한다어쩐다 하며 당장 헤어질 것처럼 다툴 때 간혹 동무라고 부르며 싸우는 경우를 봅니다만 일상에서 그렇게 불렀다간 큰일 납니다.

 

MC: 이 노래들은 북한뿐만 아니라 조선족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가 있다면서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도명학: 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에 가보니 조선족 동포들이 부르더군요. 연변조선족예술인들의 공연에서도 부르던데 아마 풍속이 같은 한 민족이고 사회주의 사회다보니 문화정서적으로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족동포들은 남북한 노래를 다 부릅니다. 물론 남한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북한노래는 사상성을 강조하지 않는 민요나 여성은 꽃이라네처럼 사상주입을 덜 강조하는 생활적인 것만 부릅니다.

 

MC: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북한에서는 마치 남성이 여성들을 끔찍이 생각하며 위해주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요. 실제 생활에서도 그런가요?

 

도명학: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북한 남성들도 마찬가지죠. 다만 가부장적인 문화에 기반한 사랑인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하늘 같은 남편” 이런 말도 있구요. 그래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보호 의지와 책임감이 매우 강합니다. 여성들 역시 남자들을 기둥처럼 의지합니다. 제가 남한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남한 남자들은 평소에는 말도 살뜰하게 하고 여성에게 사소한 것까지 이것저것 잘 챙겨주던데 사이가 좀 틀어지거나 이해관계와 맞지 않거나 어떤 위기 상황에 부닥치면 태도가 금시 바뀌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부부끼리 다투다가도 집을 나가면 아내에게 쓰라고 준 카드부터 막아놓고 돈소리를 꺼내는 남편들도 있던데 북한 같았으면 콱 패주고 싶을 만큼 같은 남자로서 보기 민망하고 부끄럽더라구요. 북한 남자들 속에도 그런 현상이 있긴 하지만 남한에 비하면 극소수입니다.

 

MC: 북한에서 가장 바람직한 여성상은 어떤 건가요?

 

도명학: 여자는 예의 밝고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를 존중하고 아내는 남편 뒷바라지와 시부모 공대 잘하고, 아이들을 깨끗하게 잘 거두고 말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고, 어디서나 눈치 있게 행동하고 생활력과 의지가 강하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조신하다는 평을 듣는 여성이면 최고겠죠.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여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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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3·8 국제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주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MC: 그렇다면 북한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은 무엇인가요?

 

도명학: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합니다. 활달하면서도 점잖고 여성들을 아껴주고 어렵고 힘든 고비는 솔선 나서 막아주고 특히 사랑을 약속한 사이라면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남성을 선호합니다. 한마디로 멋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건데 실지 그런 남자 만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기대치가 그렇다는 거죠.

 

MC: 북한 남성들이 여성을 대할 때 이것만큼은 고쳤으면 하는 나쁜 습관이나 행동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도명학: 네, 고쳐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성을 덮어놓고 아랫사람 취급하는 습관이 몸에 밴 남자들이 많습니다. 동등한 사회적 존재라고 교육받아도 그럽니다. 또 여성들이 남자라고 존중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면 마치 남자로 태어난 것이 특권이라도 되는 듯 우쭐대는 남자들도 있고, 아내가 사회활동에 나서려 하면 허파에 바람들었다며 막는 남자들도 있는데, 그런 건 북한당국도 낡은 봉건사상 잔재라고 비판하는데도 들을 때뿐이고 돌아서면 그대로인 남자들이 꽤 됩니다.

 

MC: 가정 말고 사회적으로 볼 때 여성들을 위해 바꿔야 할 제도나 규범 같은 것이 있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명학: 여성을 위해 사회적, 제도적으로 바꿔야 할 규범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남녀평등권 법령, 어린이보육교양법 같은 것도 보면 여성 차별적이거나 불이익을 주는 부분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법과 규정이 한갓 종잇장 위에 쓰여진 멋진 문구에 불과하고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간부를 뽑을 때도 가능하면 여성보다 남자를 뽑으려 합니다. 또 대학교 입학도 좋은 대학일수록 여성을 적게 뽑습니다. 나랏돈으로 공부시키는 데 여성을 많이 입학시키면 나중에 시집이나 가서 가정에 파묻히므로 밑진다는 이유죠. 현실적으로 교육기관이든 산업현장이든 전부 국가 소유라서 실리를 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경제력이 막강해 돈이 펑펑 쏟아져 여성들을 많이 공부 시켜도 나라 금고가 줄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 북한 경제가 어떤지는 다 알지 않습니까. 결국 북한당국이 핵과 미사일 같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개혁개방을 해서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경제가 살아나야 여성 인권도 증진될수 있죠. 지금 북한 여성들은 사회적 책무와 가족의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2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이 제발 가녀린 여성들 등쳐먹을 생각 하지 말고 정상국가의 길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MC: 네,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남한 가수 하수영이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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