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없이 가슴 따뜻했던 ‘빨치산 아버지’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3.03.25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없이 가슴 따뜻했던 ‘빨치산 아버지’ 빨치산 출신인 리을설 북한 인민군 원수가 지난 2012년 정전협정 체결일인 전승절(7.27) 기념행사에서 김정은 총비서와 악수하는 모습.
/연합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이 시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오늘은 남한의 소설가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갖고 나오셨는데요. 먼저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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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가 지난해 11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파랑새극장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2' 개막 토크에 참석해 오은 시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도명학: , 정지아 작가를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지인이 이 작품을 지리산 빨치산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의 삶에 대해 쓴 책인데 읽어 볼 필요 있다고 해서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정지아 작가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했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1990년에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습니다. 소설집으로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 적” ,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있습니다. 정지아 작가는 그동안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상들을 많이 수상한 것으로 봐서도 그렇고, 아직 다른 작품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 하나만 보고도 상당히 역량 있는 작가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MC: 그러면, 이 소설은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 방금 말씀 드렸듯 이 작품은 작가가 소설 형식을 빌려 지리산 빨치산활동을 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삶을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아버지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장례식을 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소설은 장례식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옛 빨치산 전우들과 일가친척들이 아버지의 생애와 엮어진 에피소드들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소개하는 수법으로 전개됩니다. 아버지가 사회주의자가 되어 빨치산 활동을 한 이유, 같은 빨치산 출신인 어머니와의 결혼 사연, 빨치산 활동이 패색이 짙어지자 당의 비밀과업을 받고 위장 자수를 한 후 지하혁명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된 사연,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 이야기, 빨치산활동을 한 경력으로 인해 일가친척들에게 연좌제의 굴레를 씌워 원망받는 사연,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그가 누구든 인간 됨을 중시하여 친교를 맺고 지낸 사연 등 정말 많은 에피소드로 가득합니다. 이런 이야기들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데올로기보다 사람이 먼저고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과 모순되고 괴리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속상함과 동정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휴머니즘 성격이 매우 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MC: 이 소설의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작품 속 아버지라는 존재와 정지아 작가는 특별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도명학: 소설에서 보여 지는 아버지와 딸은 특이한 관계입니다. 딸은 아버지가 사회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고령의 나이에 이르도록 혁명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딸을 아버지는 절대 탓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친동생과는 원쑤 지간처럼 평생 지냅니다. 빨치산 형을 둔 연좌제로 공부도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제한받아 인생 쪽박 찼다는 생각으로 형이 사망할 때까지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장례식에도 맨 마지막에야 나타날 정도입니다. 딸 역시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지내지만 오래전 연좌제가 전면 폐지되면서 대학 공부도 하고 좋은 직업도 가지고 불편없이 살아갑니다. 이러한 딸에게 있어 빨치산 활동을 한 아버지, 어머니의 지나온 인생과 아직도 미련을 못버린 사회주의 혁명가다운 마음가짐과 행동들이 원망보다는 오히려 유머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를 규정지어 본다면 실패한 사회주의 와 승리한 자본주의와의 통하지 않는 대화, 그러면서도 절대 적대적이지 않은 애증 관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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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도서관은 제26회 책읽는청주 시민독서운동 대표도서 일반부문에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를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연합

 

MC: 그렇다면 딸 정지아는 이 소설을 통해 아버지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요?

 

도명학: 작품 속 아버지의 얼굴은 웃음기가 거의 없고 사회주의 혁명가답게 진지하고 근엄합니다. 빨치산 활동에 대한 후회도 없고 누가 북한을 비판하면 기분이 상합니다. 전사한 빨치산 동지들에 대한 의리심도 깊이 간직되어 있고 옛 동지들을 위한 일이면 무슨 일이든 헌신적으로 도와 나섭니다. 그리고 늘 입에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말하는 민중은 노동자, 농민 등 평범한 사람들로, 사회주의 혁명도 그들을 위한 혁명이기에 아무리 무식하고 못나고 가난해도 탓하지 말고 성심성의로 위해줍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웬 여자를 꽁무니에 달고 집에 옵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잘 곳이 없다고 집에서 하룻밤 묵게 하려고 데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여자를 재우기 꺼려합니다. 행색으로 보아 보아 몹시 궁핍한 처지고 방에 재우게 되면 집안에 벼룩을 옮겨놓을 것 같아 싫다고 합니다. 이에 아버지는 당신이 저런 민중을 위한 사회를 만들려고 빨치산을 했으면서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하는가 하고 핀잔을 줍니다. 이상하리만큼 어머니는 아버지 입에서 사회주의자가 그러면 되는가는 말만 나오면 잠잠해지고 순종합니다. 결국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현실적이긴 하지만 50 100보 차이입니다.

 

한편 아버지는 본인이 가진 사회주의 사상과 괴리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민중과만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좌우이념, 진보 보수와 무관하게 사람만 좋으면 누구든 형님 동생하며 잘 지냅니다. 빨치산 활동 때는 점령한 마을을 순찰하던 중 숨어 있는 젊은 순경을 발견하고도 살려주고 그 은혜를 순경은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겉으론 근엄한 혁명가인양 포즈를 취하지만 속은 고향과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는 한없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MC: 작품 속에서 작가는 사회주의 이념의 실패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도명학: 작가는 소설에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사회주의 이념이 실패했음에도 그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속상해 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사회주의 혁명가로 나선 이유에 대해 웃습니다. 어머니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차별받지 않고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를 이상으로 간직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주의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딸은 이미 대한민국은 여성도 차별없이 공부하는 사회가 되어 있고 복지정책만 봐도 사회주의라고 하는 나라들, 특히 인민이 주인 된 세상이라고 하면서도 그 인민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에 비해 월등하지 않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습니다. 아버지 역시 가끔은 은연중 자신의 사상과 위배되는 발언과 행동을 합니다. 한없이 고상한 아버지도 술집에서 마담의 엉덩이를 두드리다가 어린 딸에게 들켜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는가 하면 대학공부하는 딸을 자본주의 부르주아 공부나 하는 거라며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정작 딸이 박사논문이 발표되자 말없이 책을 수십권이나 사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딸내미 박사가 됐다면서 술도 함께 마시며 흐뭇해합니다. 이렇듯 작가는 아버지의 다양한 면모를 통해 사회주의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상인지, 그것이 인간의 속성을 간과한 오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MC: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딸과 아버지 간에 감동적인 내용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선생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던 부분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가장 감동적인 것은 딸의 마음속에 간직된 아버지와의 어릴 적 추억입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딸바보입니다. 얼마나 딸을 이뻐했으면 딸이 엄마 등에 업히기보다 아버지 등에 업히는 걸 더 좋아하고 딸이 아무리 생떼를 부려도 욕 한마디 하지 못합니다. 저도 딸바보라서 그런지 그 대목에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소설 속 딸은 자신이 아버지를 겉모습부터 그대로 닮아 인물도 이쁘지 못하고 성격도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MC: 북에서 바라보면 빨치산과 남한에서 바라보는 빨치산은 어떻게 다른가요?

  

도명학: 북에서 바라본 남녘의 빨치산은 남조선혁명을 위해 조국통일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다바쳐 싸운 혁명가들이고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본 그 빨치산들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당시 환경에서 자신들이 나라와 민중을 위해 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일이 사회주의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사회주의는 실패하고 말았죠. 그러니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죠.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싸우다 숱한 동지들이 목숨을 잃었지 살아남은 사람들도 핍박을 받았지,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죠.

 

MC: 지금도 북한에서는 빨치산 출신들이 대우를 받고 있나요? 왜 그런가요?

 

도명학: 대접은 해줍니다. 그러나 그 대접이라는 것이 남한의 평범한 회사원이 누리는 직원복지보다도 못한 수준입니다. 작품에서도 약간 나오지만 북에 간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대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북에 가겠다고 제기해 명단에 오른 비전향장기수에게 북이 고향도 아닌데 왜 북에 가려는가고, 거기 가봐야 형편도 말이 아니라는데 대접 받아봤자지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남한에 있으면 노동을 해야 하는데 자기는 워낙 부자집 도련님 출신이라 노동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물론 북에 간 이인모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이 대우는 받았습니다. 신문방송에도 소개하고 회고록 같은 것도 출간하고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잠잠해졌습니다. 왜 그런가했더니 그들이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실망한 나머지 우리가 이런 꼴 보자고 피흘려 싸우며 체포돼서도 전향도 하지 않고 신념들 지켰단 말인가고 개탄한 사연이 보고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비전향장기수들의 마음속 사회주의가 북에 가서 오히려 붕괴된 격이죠. 이것이 역사의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MC: 이 책을 북한 주민들이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대부분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옛날과 달리 남한이 자유롭고 잘살고 발전됐다는 사실이 비밀이 아닌데 상식적으로 봐도 존경심이 가겠습니까.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에 갔을 때도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가면 북조선 같으면 감옥에서 몇 년 살기도 어려운데 30 40년 이상 감옥살이를 하고 살았다는 건 그만큼 남조선 감옥생활이 쉬웠다는 말이 아닌 가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또 북한 주민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사회주의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오류를 내포한 사상인지 아주 마음에 와닿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MC: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도명학: 작품 속에 보면 아버지가 인간관계를 진보와 보수, 우익과 좌익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만 보고 맺으며 돈독하게 지냅니다. 딸이 말하기를 아버지의 십팔번은 “오죽하면 그랬겠냐”라고 합니다. 누가 보증을 서달라고 해 보증을 서고 배신을 당해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누가 한밤 중에 집에 급한 환자가 생겼다고 전화를 해도 싫다고 하지 않고, 아내가 그 집은 친척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남남인 당신부터 찾는 가고 투덜대도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달려갑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갈등 없는 사회, 서로를 틀려먹었다며 반목질시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선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소설 속 아버지와 같은 인간성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MC: 우리는 북한의 빨치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까요?

 

도명학: 북한의 빨치산이라고 하면 김일성 항일빨치산인데, 그 역시 남한 빨치산과 다를 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들이 산에서 무장을 들고 일제와 싸운 것이 인민들이 굶어죽고 인권유린이 난무하고 제 고모부와 이복형도 죽이는 패륜 사회를 바라서 싸운 것이 아니잖습니까. 아무 그 때는 자기들이 하는 일이 인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혁명운동이라고 생각햇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주의의 실패고 북한은 인민의 나라가 아닌 김 씨 가문의 노예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길인줄 믿고 목숨 바친 빨치산들에 대한 김씨일가의 배신입니다. 분명 통일이 되면 과거사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이런 점을 유념해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MC: ,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남한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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