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임꺽정은 도둑인가 아님 계급투쟁의 희생자?
2023.04.29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이 시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지난 주에 못다 한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소설 임꺽정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소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세한 줄거리를 이야기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또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인 만큼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소설의 줄거리가 독특한 짜임새를 가진 소설이라는 점에 포거스를 맞춰 개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설 “임꺽정”은 식민지 시기에 발표된 한국 소설들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소설입니다. 북에서는 역사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봉단편”“피장편”·“양반편” 각 1권씩과, “의형제편” 3권, 그리고 말미가 미완으로 남은 “화적편” 4권을 포함하여 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남한에 한해서입니다. 소설을 끝낸지 못한 상태에서 홍명희가 월북했기 때문에 완성본은 북한에서 출간되었는데 분량이 많이 압축된 형태로 간소화되었습니다.
소설의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화적패가 아직 결성되기 이전인 연산조 때부터 명종 초까지의 정치적 혼란상을 폭넓게 묘사하는 한편, 백정 출신 장사 임꺽정의 특이한 가계와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소설 중에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인 주인공의 전기 형식을 띤 작품들이 많고, 그러한 작품들은 흔히 주인공의 탄생 장면으로 시작되나 “임꺽정”의 서두 “봉단편”에서는 연산군 때 유배지에서 달아나 함흥 고리백정의 사위가 된 홍문관 교리 이장곤과 그의 처 봉단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임꺽정은 봉단이의 사촌 돌이의 아들로서 “피장편”의 중간 부분에서야 등장합니다.
그리고 “피장편”과 “양반편”에서는 봉단이와 돌이의 삼촌으로 선견지명이 있는 갖바치 양주팔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가 된 임꺽정의 성장 과정과 아울러 도처에서 화적패가 출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어지러웠던 그 시대 지배층의 정치적 혼란상을 소상히 그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 임꺽정의 전기 형식을 피하고, 그 시대의 사회 현실을 장황할 정도로 폭넓게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의 주체가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들이라 보는 민중사관을 보여 주고 있으며, 나아가 역사적 인물인 임꺽정의 등장을 위해 필요한 사전 준비를 면밀하게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형제편”은 '박유복이', '곽오주', '길막봉이', '황청왕동이', '배돌석이', '이봉학이', '서림', '결의'의 8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제외한 각 장의 소제목이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의형제편’에서는 후일 임꺽정의 휘하에서 화적패의 두령이 되는 주요 인물들이 각자 양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청석골 화적패에 가담하기까지의 경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의형제편’은 각각 한 사람의 두령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자체가 독립된 한 편의 중편소설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완결된 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장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은 거기에 등장하는 다른 두령들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관되고, 그리하여 마지막 장인 '결의'에서 일곱 두령들이 의형제를 맺는 데에 이르기까지 각 장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형제편」은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에 비해 훨씬 더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화적편’은 '청석골', '송악산', '소굴', '피리', '평산쌈' 그리고 미완된 '자모산성'의 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청석골 화적패가 본격적으로 결성된 이후의 활동을 그린 것으로서, 작품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는 청석골 화적패의 대장으로 추대된 임꺽정이 서울에 가서 여자들과 외도를 일삼아 가족과 불화를 겪기도 하고, 두령들이 가족을 동반하고 송도 송악산 단오굿 구경을 갔다가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게 되어 파란을 겪는다든가, 화적패들이 지방 관원들을 괴롭히거나 토벌하러 나온 관군과 대적하는 등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마지막의 '자모산성'장은 화적패들이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을 피해 자모산성으로 피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임꺽정』은 이 부분에서 연재가 중단되어, 주인공 임꺽정이 관군에게 잡혀 죽는 최후 장면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완성된 소설은 마지막은 임꺽정이 관군에게 잡혀 죽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이 대목에는 북한의 계급투쟁 이념이 진하게 반영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서림을 비롯한 양반 출신은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양반계급 편으로 변절하면서 임꺽정은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말하자면 계급투쟁에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거죠.
MC: 남한에서는 소설 임꺽정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임꺽정이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북한 주민들의 인기를 크게 모았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임꺽정의 인기(배우 말고 임꺽정이라는 캐릭터)는 어느 정도였나요?
도명학: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워낙 종이 사정이 긴장하다보니 많은 부수를 찍어내지 못하니까요. 저도 빌려 보았는데 너무 많은 손을 거쳐 많이 닳은 데다 페이지가 더러 떨어져 없는 걸 읽었습니다. 대신 영화는 누구나 한두 번 이상은 다 봤을 겁니다. 아 남쪽에선 드라마로 만들어졌던데 북한에선 드라마가 아니고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다부작 영화로 만들었는데 몇 개 부였던지, 6부까지였던지 7부까지였던지 아리송 합니다. 또 영화의 내용이 북한 주민들 마음에 크게 와닿는 점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인공 임꺽정이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영웅처럼 여겼습니다. 임꺽정 캐릭터가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지로 먹고 살기 어렵게 된 일부 청년들과 하급 병사들이 임꺽정 청석골 화적들을 모방해 산모퉁이 도로를 타킷으로 매복했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와 행인들을 약탈하는 현상도 발생하곤 했습니다. 주민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양반관료들의 행동을 북한간부들이 일삼는 행동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주제가도 그래서 인기가 높았는데 가사에 있는 “마음 어진 백성들이 어이 칼을 들었나. 피맺힌 사연 없다면 누가 이길 택하랴, 양반들과 한하늘 이고 정녕 살 수 없었네”라는 구절을 탐관오리나 다를바 없는 간부들과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속마음을 담아 불렀습니다. 그런데 북한당국도 그걸 눈치 챘는지 어느 순간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금지곡으로 지정하더군요. 그래서 주민들은 귀속말로 속이 찔리긴 찔리는 모양이구나 하고 수군거렸지요.
MC:북한 드라마에 임꺽정 역을 맡았었던 배우 출연했던 인민배우 최창수가 지난 2020년 갑자기 사망하자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애도를 표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북한주민들이 좋아했나요?
도명학: 인민배우 최창수가 워낙 인물이 장부답게 잘 생겼고 연기도 잘했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다 최고 인기를 누렸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그의 연기가 처음으로 큰 인기를 끈 영화가 1970년대에 “중앙공격수”였던 같습니다. 그때는 젊었는데 아주 미남이었습니다. 그 후 상승일로를 걸으며 계속 발전하더군요. 평양에서도 그가 거리에 나가면 모두가 쳐다보고 따라가는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지방에 가는 경우 그가 나타나면 인파에 포위돼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MC:임꺽정이란 사람을 놓고 후대의 평가는 나뉩니다. 어떤 이들은 도적이라고 하는가 하면, 의적이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에서는 임꺽정을 각각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도명학: 남북한의 주류 평가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봉건적 신분차별 제도에 항거한 임꺽정의 행동을 의로운 행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남한에 임꺽정을 남의 재물을 빼앗은 도적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들에게 속된 말로 일갏고 싶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가 백정으로 살아보고 나서 다시 평가해보라고요.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임꺽정의 행동이 도둑질 형태인 건 맞으나 내용에 들어가 보면 부당하게 백성을 약탈한 재물을 빼앗아 나눈 거죠. 그것까지 도적질이라고 한다면 전쟁에서 얻는 전리품과 전후 배상금도 다 도둑질이죠.
MC: 북한은 임꺽정이라는 소설이 계급 간 투쟁을 살린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임꺽정이란 소설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도명학: 남한 임꺽정에 비해 볼 때 북한 임꺽정은 큰 틀에선 부당한 신분제도와 양반관료들의 부패상을 비판한 점은 동일합니다. 다만 북한은 갈등 관계를 사회주의 계급투쟁론 입장에서 더 진하게 형상했습니다. 예컨대 영화에서 양반관료들과 가족들은 교활하지만 얼뜨기고, 그러면서도 잔인하고 욕심 많은 캐릭터로 진하게 그렸습니다. 반면 백정을 비롯한 하층민은 배운 것은 없어도 똑똑하고 유머도 있고 인정도 뜨겁고 예의 바른 사람들로 형상했습니다. 이에 비해 남한 드라마 임꺽정에서 나오는 하층민 캐릭터는 임꺽정을 비롯한 두령 몇 명 빼곤 나머진 거의 우스꽝스럽고 좀 모자란 사람들처럼 그렸더군요. 북한에서 하층민 캐릭터를 그렇게 그리면 계급성과 인민성을 훼손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난리 날 것입니다.
MC: 남한에서는 홍 작가가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그가 쓴 작품들이 모두 금서조치를 당했었다고 하는데요. 홍 작가처럼 월북한 작가들은 북한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나요?
도명학: 월북작가들에 대우가 한동안은 괜찮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 영향이 해방직후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의 월북을 자극한 점도 있습니다. 서울이 수도이기에 문화예술인재가 서울에 있고 북한 지역에는 거의 없으니 김일성이 대우를 잘하는 것으로 유도했었고 실지로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을 배정해주고 특별배급도 해주는 등 여러모로 잘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헌영을 위시한 남로당 출신들이 종파분자로 숙청되던 시기를 전후해 하나 둘 소외 당하거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작가동맹위원장을 했던 한설야가 그 중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숙청된 다음엔 월북작가 존재 자체를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단 유명 월북작가 중에는 이기영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만 그 역시 사망될 때까지 상당 기간 글을 쓰지 않고 여생을 보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아마 글 쓰고 싶은 의욕이 없었을 겁니다. 다만 남한 출신인 오영재 시인, 석윤기 소설가 등 몇 명은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 영웅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대우를 받은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남쪽에서 작가가 된 상태로 북에 간 사람들이 아니니까 월북작가로 부르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그들은 북에 가서 사회주의 문학을 공부해 작가로 성장했으니 숙청당할 이유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MC: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소설 임꺽정에 대해 도명학 선생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