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조용원 당 조직비서 복귀는 ‘내부 위기’ 방증”

앵커: 조용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3개월 만에 당 조직비서로 기용된 가운데, 한국 내 전문가들은 이례적인 인사 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 내부 위기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일부터 사흘 동안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열렸다고 23일 보도한 북한 관영매체.

이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조용원을 소환해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선거할 것을 제의했고, 전원 찬성으로 가결된 뒤 바로 조직지도부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조용원으로선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선출되며 실세로서 입지를 굳힌 지 불과 석 달 만에 당 조직비서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당 비서였던 김재룡은 직무에서 일괄 해임됐습니다.

공석이 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은 앞으로 열릴 최고인민회의에서 다시 선출될 예정입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 내 권력 2인자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당 조직비서로 급히 이동시키는 이례적인 인사조치가 내려진 것에 대해 표면상 내세운 군 내부 부정부패 등 조직 내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박희철 소장이 받고 있는 부정부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법기관에 넘기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이날 보도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의 말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비리 혐의로 처벌한 것이라면 결국 조직 지도부 전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김정은 체제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미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재룡이 해임된 것까지 포함하면 북한 역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그 정도로 노동당 관리 체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원들에 대한 감시·감독과 교육 훈련, 사상 훈련 등이 강화되는 흐름이 보인다는 북한 내부로부터의 전언이 있다”며 “김정은 체제가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적인 여러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역시 최측근인 김재룡을 해임하고 조용원을 다시 기용한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군부 고위직인 박희철 소장에 대한 사법 처리를 전격 단행한 것에도 주목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렇게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군부 고위직에 공개적으로 부정부패 혐의를 씌워서 사법처리한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조기에 군부와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근절시킬 필요성이 내부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임 교수는 현재 공개된 단서로는 정확한 내부 상황을 추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당과 군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서 부정부패를 비롯한 지시 불이행 상황을 조기에 개선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불과 임명 몇 달 만에 당 실무로 되돌리는 결정이 이례적이란 점을 밝히면서 “이번 인사가 사전 설계된 정상 절차가 아닌 상황에 따른 결정이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재차 지목하고 핵무력 강화를 강조한 김정은 위원장 발언에 대해선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앞세운 강경 기조를 내부 통제와 결속에 활용하려는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임을출 교수는 내용은 기존 메시지의 반복이지만 그 수위가 점차 세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한국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를 통해 내부 통제, 사상 통제를 더 강화하려는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국을 이른바 ‘반제 전선’ 일부로 편입시키는 동시에 그 전선에서 가장 부각된 단일 표적으로 삼았다며, 남북관계를 별도의 민족 개념이 아닌 대미·반제 대결의 하위 전선으로 흡수시킨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기존 입장에 따라 다시 한번 한국을 향해 선을 그은 것이라며, 당분간 ‘적대적 두 국가론’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상반기에 개최되는 당 전원회의로서는 국방분야나 대외분야에 이례적으로 비중을 할애해 핵무력 강화 의지, 대남 적대노선 등을 재확인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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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중·러 주도 ‘다극화 체제’ 편입으로 자신감"

이런 가운데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다극화 체제에 성공적으로 편입됐다는 분석이 한국 내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됐습니다.

북한이 현재 보이고 있는 개헌과 대남 적대 노선, 핵무력 고도화 등 거침없는 태도 뒤에는 이 같은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말입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북한도 새로운 생존 공간을 마련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 역시 ‘안러경중’,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 기본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23일 서울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2일차 회의.
23일 서울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2일차 회의. 23일 서울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2일차 회의. (RFA)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2026 국제 한반도 포럼’ 2일차 토론회에서 “미국이 주도한 기존 ‘단극화 국제질서’로부터 제재를 받아온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 전략적인 보완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진단했습니다.

김상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평화공존 정책’ 보다는 전쟁을 방지하는 데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상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평화공존 전략을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정상화시킨다는 개념보다는 한반도 위기 관리와 전쟁 방지가 일단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중일과 북중러 간 이른바 ‘진영화’가 깊어져 역내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중국·러시아와 소통을 유지하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