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이 모르고 부르는 남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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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먼저 작품 소개에 들어가기에 앞서 궁금한게 있습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노랫말도 일종의 문학작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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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서울, 평양과 비무장지대(DMZ)를 표시한 지도가 전시되어 있다. /AP

도명학: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 저는 노랫말, 즉 가사는 시문학에 속한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가사를 서정시의 정수라고 이야기 합니다. 곡을 붙일 것을 예상하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쓰는 시와 달리 가사는 곡을 붙이기 쉽도록 음절 수에 따른 리듬도 고려해서 써야 하는데다 외우기 쉬우면서도 함축된 의미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가사 창작이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남한에 오니까 가사를 노랫말이라고 하던데 북에서는 노랫말이라는 표현 자체가 없습니다. 노랫말이라면 얼핏 듣기엔 통속적이고 귀맛도 좋으나 한편으론 가벼운 느낌이 좀 듭니다. 실지로 어떤 최근 가요들 중 어떤 노래는 순수 멜로디가 좋아서 듣게 되지 노랫말은 의미도 없고 속된 말로 흥에 겨운 나머지 그냥 넉두리를 하는 것 같은 것들도 있어 쓴 웃음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가사가 좋아야 작곡하기도 좋지, 가사가 한심하면 그만큼 작곡가가 곡을 만들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명가사에서 명곡이 나옵니다. 세계적인 명곡들도 보면 곡도 좋지만 가사가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이 나옵니다.

MC: 오늘 북한에서 많이들 좋아한다는 노래 두 곡을 가지고 나오셨는데요. 어떤 것들인가요?

도명학: '동무생각'이라는 노래와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두 노래 다 듣기도 좋고 내용도 좋고 곡도 얼마나 아름답고 서정적인지 모르겠습니다.

MC: 그런데 이 두 노래가 어디서 유래됐는지 북한 주민들은 모른다고요?

도명학: 네, 북한 주민들은 이 노래들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민족과 운명"이라 제목의 다부작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됐습니다. 노래 "동무 생각"은 "민족과 운명" 시리즈 중 윤이상 편에서 나옵니다. 한국의 유명한 음악가 윤이상을 원형으로 한 영화인데 거기서 윤이상과 부인과의 애틋한 사랑을 돋보이게 하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삽입되어 활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동무 생각"을 들을 때면 머릿속에 영화의 장면들이 상상되면서 참 명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 역시 영화 “민족과 운명” 중 차홍기 편에서 활용되었습니다. 차홍기는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였던 최홍희 선생을 원형으로 한 인물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차홍기와 부인이 캐나다 초원으로 승용차를 몰고 가면서 함께 “아 목동아”를 부르는데 참 정겹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그 노래의 출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 목동아”는 어느 유럽 노래라는 정도로 짐작하고 “동무생각”은 윤이상이 지은 노래가 아닐까 하는 정도로 생각할 뿐입니다.

MC: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한 건가요?

도명학: 이 노래들의 출처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긴 합니다. 왜냐면 북한 주민들은 우물안 개구리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이런 노래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노래에 담긴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상식을 얻게 되는 것이죠.

특히 노래 “동무 생각”은 윤이상이 지은 남한 노래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 나와 불려진 노래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방 전이면 분단시대도 아니고 온 민족이 함께 부른 노래였는데 왜 분단 이후 유독 북한에서만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색깔이 없는 자연주의적 가요라고 해서 배제된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해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은 일이었겠으니 실지 당국의 어떤 지시와 조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MC: 먼저 '동무생각'의 문학적인 측면에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지난 2000년 북한의 홍보잡지 '금수강산' 9월호는 이 노래를, 홍난파의 봉선화와 함께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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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23년 새해를 맞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 아래 신년 경축 공연을 열었다. 조선중앙TV는 1일 "12월 31일 밤 수도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신년 경축대공연이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연합

도명학: 영화 "민족과 운명"에 이 노래들이 사용되면서부터 북한주민들에게 상식적으로 알려줄 필요를 느낀 것 같습니다. 홍란파의 "봉선화" 역시 영화 "민족과 운명" 중 카프작가 편에서 활용된 노래입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울지 마라', "낙화 유수" 도 영화 "민족과 운명"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동무 생각”의 경우엔 방금 이야기 한 노래들과 비슷한 시대에 나온 노래면서도 그 중에 특별히 아름다운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눈물젖은 두만강”이나 “봉선화” 등 다른 노래들은 양상이 슬픔과 비애에 젖은 마음을 토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는데 “동무 생각” 생기발랄하면서도 애틋한 우정을 담은 것이 특징입니다. 가사 자체가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 그 자체고 어쩌면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MC: 가사를 쓴 작사가 이은상 선생은 남한에서는 유명한데, 북한에서는 어떻습니까?

도명학: 유명할 수가 없습니다. "동무생각" 자체를 북한주민들이 접한지 오래지 않은 데 알지도 못했던 그 노래 가사를 쓴 이은상 선생을 알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몇몇 전문가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알겠지만 말입니다. 하긴 노래가 알려진지 이젠 꽤 되었으니 지금쯤은 많은 사람들이 알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MC: 둘째 노래 '아 목동아'는 또 문학적인 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도명학: "아, 목동아" 역시 외국 노래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감정에도 잘 맞습니다. 한국인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감정에 다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세계명곡이 되었겠죠.

이 노래 역시 가사가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고 한 폭의 명화 같습니다. 곡은 또 얼마나 서정적이고 아름답습니까. 가만히 눈감고 들으면 마치 눈앞에 초원이 펼쳐져 있고 말 탄 목동이 피리 부는 소리가 은은히 들여오는 듯 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가사 번역이 잘되지 않은 건지 모르겠는데 저는 가사 내용 액면 그대로를 보고선 이 노래가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는 늙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내용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노래에 대한 해설을 통해서야 알게 됐지 그 전에는 연인을 그리는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MC: 이밖에도 북한에서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는 있는데 그 출처가 남한이거나, 또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가요?

도명학: 네 그런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중국 연변에서 불법으로 유입된 음반을 통해 듣게 되고 따라 부르는 노래들이 그러한데, 그걸 들으면서 중국 노래인지 남한노래인지 아니면 해방전 유행가인지, 계몽기 가요인지 가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대남심리전을 위한 비공개 음악단인 "칠보산음악단"에서 부르는 노래들도 사회에 유출되어 돌아가는데 그중 남한 노래를 개사한 것들이 있는데 그걸 듣고는 북에서 만든 노래인 줄 아는 사람도 드물게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출처가 불분명한 노래들은 방송이나 공연무대에서 들어본 적 없는데도 유포되는 노래들인데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꽃제비들이 지어 부르는 노래도 꽤 있는데 당국에선 부르지 말라고 하지만 출처가 어딘지 알지 못해 속수무책입니다. 그런 걸 봐선 몰래 노래를 짓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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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평양의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우리 예술단의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리허설에서 조용필 등이 '친구여'를 부르고 있다. /연합

MC: 지금은 북한에서는 K-드라마나 K-팝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K-문학이 북한에서 인기를 끌만한 방법은 없을까요?

도명학: K-드라마나 K-팝이 인기를 끄는데 비해 아직 K-문학에 대해선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문학작품 자체가 유입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에는 워낙 책이 귀합니다. 한국 문학작품들이 들어가면 누구든 읽지 않고는 못 견딜 것입니다. 다만 책은 부피도 그렇고 은닉하기도 불편하여 북에 들여보내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을 메모리카드에 넣어 보내는 방법이 좋을 듯 싶습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