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한과 북한의 문학 관련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지난 시간에는 저희가 남한의 권정생 작가의 작품인 '몽실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오늘은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네, 오늘은 제가 중학생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북한 소설 "초순이"라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던 남한 청소년 소설 "몽실언니"를 보면서 계속 머릿속에 북한에서 읽었던 중편소설 "초순이"가 떠오르더군요. 두 소설에 등장하는 몽실이와 초순이의 운명이 비슷했고 거기서 받은 느낌도 비슷했습니다.
MC: '초순이'를 쓴 북한 작가는 어떤 인물인가요?
도명학: 하도 오래전 일이라 작가가 누구였던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 작품이 1978년쯤에 나왔을 겁니다. 혹시 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문헌자료실에 소장 되어 있는 것으로 나오던데 발행된 해가 1986년이라고 되어 있어서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1986년에 재출간되었을 수도 있으나 그 당시라면 제가 작가가 되기 위해 한창 문학 수업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왜 몰랐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남한 같으면 매일매일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많은 작품을 다 알 수 없지만 북한은 한 해 동안 출간되는 장ㆍ중편소설이 손에 꼽을 만큼 적어서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소설이 나왔다는 정도는 아는데 "초순이"가 재출간된 사실은 제가 놓쳤던가 싶습니다.
MC: '초순이'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줄거리 역시 너무 읽은 지 오래 돼서 상세하게 소개하기 어렵고 특별히 감명 깊었거나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만 얘기한다면 소설의 배경은 6.25 전쟁 시기입니다. 주인공 "초순이"는 남한 소녀인데 전쟁 중에 미군의 양민 학살로 부모 잃은 전쟁 고아가 됩니다. 초순이는 여러 친척 집들을 오가며 지내게 되지만 전쟁이라는 각박한 환경에서 눈칫밥도 먹으며 초순이를 머슴처럼 부려먹는 친척도 있고 천대하다 내 쫓아내는 친척도 있습니다. 여기저기 떠돌던 초순이는 마음씨 고운 아줌마를 만나 함께 지내게 되는데 그 역시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는 서커스단 같은 곳에 팔아먹습니다. 그곳에서 학대는 더할 나위 없고, 나중에 고아원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고아원은 불쌍한 고아들을 이용해 비리가 자행되는 곳이고 고아들에게 별의 별 일을 다 시키며 돈벌이를 하는 곳입니다.

MC: 아무리 착한 초순이라도 이 정도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받다 보면 사람이 많이 변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끼?
도명학: 이런 고난속에서 초순이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는 가짜 웃음이 너무 많다는 것, 달콤한 말에는 검은 속심이 들어있으며 슬퍼하는 눈물, 동정해 주는 눈물에도 가짜가 있다는 사실, 그나마 초순이가 가장 편하게 지내게 된 것은 거지가 되어 같은 처지의 거지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였습니다. 거지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지만 인정도 많아 어린 소녀인 초순이를 남자 거지 아이들이 오빠처럼 보호해 주며 먹을 것을 훔쳐다 주면서 지냅니다. 그렇게 고아들과 함께 다니다 전선이 가까운 지역에 머물 때 인민군이 그곳을 점령합니다. 점령지에는 북한당국이 전쟁고아들을 위해 파견했다는 선생님들이 나타나고 초순이와 거지들은 자동차를 타고 북한 어딘가에 있는 고아원인 "초등학원"에 입학해 공부도 마음껏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선생님들과 동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느낍니다. 마침내 초순이는 가련한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결국 초순이는 부모도, 친척도 이웃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비인간적 남조선 사회를 저주하면서 그와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깊이 간직하게 됩니다. 이점이 이 소설이 던지고자 하는 기본 메시지입니다.

MC: 북한에서 이 작품이 인기를 많이 끌었나요?
도명학: 제가 "초순이"를 읽었을 때는 중학생이어서 어른들도 그 책을 좋아했는지는 몰랐습니다. 다만 소설이 청소년소설인만큼 중고등생 정도 나이 청소년들 속에선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책을 서로 빌려보다 없어져 싸움이 날 정도였고, 수업 시간에 수업에 열중할 대신 몰래 "초순이"를 보다가 선생님 눈에 뜨여 회수당하는 일도 많았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작품이 통속적으로 말해 재밌었습니다. 소설 속 초순이를 마치 내 누이동생이나 되는 듯 섬세하게 잘 형상했고 그 외 등장인물들도 개성있는 캐릭터여서 더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점이 이 작품의 인기를 높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MC: '초순이'와 '몽실언니'가 닮은 면이 많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도명학: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초순이나 몽실이나 불우한 운명입니다. 둘다 부모도 잃고 이집 저집 떠돌기도 하고 이용도 당하고 사람에게 치이며 커갑니다. 또 초순이와 몽실이 두 캐릭터 모두 순진하고 착하고 그러면서도 결코 나약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북한 당국은 이 작품을 통해 독자 또는 북한 주민들에게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도명학: 의도는 명백합니다. 수령과 노동당 외에는 아무도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는 건 수령과 당이 있는 북한의 사회주의 제도라는 것, 그러니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모든 작품이 같은 의도로 만들어집니다만 초순이는 아주 예술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교묘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MC: 이 작품이 남한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도명학: 네, 저는 남한 사람들도 공감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의 마지막이 정치적이어서 싫겠지만 그 앞부분은 몽실언니 못지않습니다. 아니 사실 몽실언니보다 더 눈물 나게 쓴 소설입니다.
MC: 남한 독자들이 북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이고, 북한 독자들도 무엇을 유념해야 할 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남북한 독자 구분할 것 없이 주의해야 할 점은 소설 초순이를 통해 북한당국이 독자에게 주입하려 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특히 북한 독자들 경우에는 초순이의 불쌍한 운명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의 손길에 의해 바뀐다는 점에 유의하면 좋겠습니다. 노동당만 믿다가 수백만이 굶어 죽은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MC: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옛날에 읽은 기억밖에 없지만 이 작품처럼 머릿속에 오래 각인된 작품은 저에게 많지 않습니다. 우선 문예작품은 재밌고부터 봐야 하는데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등장인물들도 개성이 있는 전형들이고,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해당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쉬운 것은 북한문단이 이 소설이 나올 당시보다 훨씬 쇠락해 지금은 이런 수준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별로 없는 점입니다.
MC: 네, 저희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한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