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한국 서울의 탈북민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북한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북한에서는 '4.15문학창작단'처럼 우수한 인재들만 모아서 영화를 제작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건가요?
> 도명학: 북한에서 영화는 그 자체를 문학작품으로 보진 않지만 시나리오를 문학으로 취급합니다. 이 점이 남한과 차이 나는 점인데 남한에서는 시나리오를 문학작품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극본은 문학으로 보는 것 같던 데 그것도 문학 범주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지는 않고 예술작품에 더 가깝게 취급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극본을 대본이라고도 부른 것 같습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시나리오든 극본이든 둘 다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며 그것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용어부터 남한과 다릅니다. 시나리오는 영화문학이라고 하고, 드라마 극본은 텔레비전 문학이라고 합니다.
영화창작을 위한 창작단들로는 백두산 창작단, 대홍단창작단, 보천보창작단, 왕재산 창작단 등이 있고, 거기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다 자기 색깔을 가진 작품들입니다.

MC: 북한에서 영화는 상당히 인기 있는 문화예술 분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영화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남한과 비교할 때 북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뭐가 다른 겁니까?
> 도명학: 어느 나라 사람이든 영화는 다 좋아할 것입니다. 북한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볼거리가 별로 없는 북한인만큼 영화만큼 인기 있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한번 봤던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계속 영화관에 가는 사람을 가리켜 "영화 게걸", "영화 미치광이", "영화 중독"이라고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영화의 역할은 대중선전 수단입니다. 영화를 통해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 시키는 것이 첫째 역할이고 그다음이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영화는 1970년대 김정일이 문학예술혁명이라는 것을 한다면서 특히 예술인들을 자신의 친솔부대라며 내세울 때부터 영화는 문학예술혁명을 앞장에서 견인하는 선봉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모든 문학예술작품이 영화를 롤모델로 삼게 됩니다. 그만큼 시나리오 자체가 문학성이 높게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 소설, 희곡 같은 본격 문학 장르들이 영화를 롤모델로 삼기 어렵기 때문에 시나리오작가들만으로 특별히 조직된 “조선영화문학창작사”도 나오고 평양영화연극대학에도 영화문학창작과가 있어 전문적으로 시나리오작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MC: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화를 많이 좋아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김 위원장이 지원도 꽤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남한에서는 개인이 투자자를 모아 영화를 제작하는데 북한에서는 영화를 제작하는 곳이 어디인가요?
> 도명학: 영화를 제작하는 곳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 "4.26만화영화촬영소" 등입니다. 이외 예술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비슷한 영화를 전문 제작하는 "조선기록과학영화촬영소"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는 북한군부 소속으로 주로 전쟁물을 많이 창작합니다. 명칭에서 2.8은 북한군 건군절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4.25영화촬영소"라고 하던 것을 김정은 시대에 개칭했습니다. 4.25는 김일성이 항일빨치산을 창건한 날이라고 하여 그날을 북한군의 뿌리로 보면서 건군절로 기념하던 것을 김정은 시대에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북한군 창군절을 1948년 2월 8일로 변경하여 기념하면서 영화촬영소 명칭도 바뀌었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확실히 굳히기 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까지는 2월 8일이 건군절이었는데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 다시 옛날에 하던 대로 바꾸었습니다.

MC: 그 가운데 '백두산 창작단'이라고 있죠? 이 단체는 어떤 단체인가요? 좀 특별한 곳이라고 하던데요. 백두산창작단의 역할은 무엇이고 주로 어떤 영화를 만드나요?
> 도명학: 백두산창작단은 영화 부문의 4.15문학창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활자로 된 작품이 아니라 스크린에 김일성과 그 일가친척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담아내는 거죠. 가장 우수한 시나리오작가들과 연출가들이 망라되고 인민배우, 공훈배우 등 재능있는 명배우들이 주연을 맡습니다. 특히 김일성 역을 맡는 배우는 1호 배우라고 불리며 마치 진짜 김일성이나 되는 것처럼 우대합니다. 김일성이 그려진 그림이나 조각상도 조금이나마 훼손되면 큰일 나는 정도인데 1호 배우 신상에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특대형 사고죠.
백두산창작단은 김일성이 1967년 박금철 등과의 반종파 투쟁과 유일사상체계 확립 과정에서 문예부문에 대한 지도를 통해 권력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던 시기에 김정일에 의해 창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김일성이 항일투쟁시기에 직접 창작했다는 ‘고전적 명작’이라고 하는 “꽃파는 처녀”,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을 영화로 각색한 후 김일성과 김정일, 그 가계에 대한 우상화 영화 창작에 매진해왔습니다. 그러다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창작과 함께 주체적인 창작지도체계와 창조체계의 복원을 지시함에 따라 1993년에 10여 개의 창작단과 함께 해체됐습니다. 우상화 영화 창작이라는 목적과 기능은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 등으로 분산·계승되고 있습니다. 백두산창작단 해체 직후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의 제작과정에 백두산창작단의 백인준, 리춘구, 리덕윤 등 가장 뛰어난 영화문학작가들이 대거 투입되는 등, 백두산창작단 구성원들은 해체 이후에도 영화제작 현장 각 분야에 진출하여 북한 영화산업의 중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백두산 창작단이 초기에 영화화한 소위 '고전적 명작'들은 <피바다>,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이>,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 파는 처녀>,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등이고, 김일성과 그 가계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위 ‘혁명영화’들로는 <누리에 붙는 불>, <첫 무장대오에서 있은 이야기>, <백두산>, <푸른 소나무>, <조선의 별>, <친위전사>, <압록강을 넘나들며>, <혁명전사>, “민족의 태양, <빛나는 태양> 등이 있습니다.
MC: 백두산창작단에서 제작한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뭔가요?
> 도명학: 워낙 영화마다 특별히 품들여 만든 만큼 백두산창작단 영화들은 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입니다. 그중에도 저는 "조선의 별" 1부와 2부가 가장 인상 깊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조선의 별이 나왔던 시기는 제가 중학생 시절이어서 기억력도 한창 좋을 때인데다 영화에서 나오는 청년 김일성과 그의 동지들 사이의 의리와 열정이 감동적이었고 특히 생소하면서도 감명받은 건 김일성의 동지들이 김일성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고 이름을 성주, 성주 하고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감히 수령님에게 반말을 쓰다니, 하지만 그래서 그 영화가 사람들에게 더 진솔하게 다가가 세뇌시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일성을 위엄있고 딱딱하고 동상 같은 존재가 아니라 피도 있고 살도 있고 열도 있고 기쁨도 슬픔도 있는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살아있는 인격체임을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수령을 우상화 하는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영화가 바로 "조선의 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남한 영화와 북한영화의 차이점은 뭘까요?
> 도명학: 차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남한 영화는 정치적 선전선동이 없는데 북한은 영화 그 자체가 정치 선전물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북한 영화나 남한영화나 둘다 실지 현실과 괴리가 있는 내용들이 들어 있는데 그 차이는 남한 영화가 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사실주의적 영화는 북한이 더 왜곡이 심하지만 남한은 액션영화들, 이를테면 좀비들이 사람들을 쫓고 물어 죽이는 "부산행" 같은 영화들, 또 드라마도 보면 남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같은 것이 많은데 북한에는 그런 영화가 없습니다. 만약 만든다 해도 만화영화라고 하면 했지 그냥 영화라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MC: 북한 주민들은 한국영화를 더 좋아할까요, 아니면 북한영화를 더 좋아할까요? 그 이유는?
> 도명학: 당연히 남한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다만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사람은 원래 보지 말라면 더 기를 쓰고 보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는 법이니 그게 오히려 더 남한 영화를 보고 싶어 못 견디게 하는 거죠. 남한 영화는 내용에 북한처럼 노골적인 정치선전이 없기에 북한 주민들에게 더 진솔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MC: 예전에는 북한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많이 받았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상도 많이 받았구요. 하지만 이젠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 도명학: 네, 한때 북한영화들도 국제무대에 나가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긴 합니다. 특히 남한에서 납북되어 북에 간 신상옥 감독이 신필림영화촬영소 명의로 영화를 제작할 때가 전성기였습니다. 그때 신감독이 만든 "소금"이라는 영화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북한 언론매체들에서 해외언론들을 그대로 인용하며 대대적으로 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MC: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