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도명학 : 네,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해 오셨나요?
> 도명학 : 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MC: 최은희 배우와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 의해 납치됐던 사람들 아닌가요?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 도명학 : 네, 사실 북한 주민들은 신상옥 감독 부부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납치당해 북에 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북한에서 이들의 존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식으로 공개된 건 남한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전두환에게 불만이 많아 그꼴을 보기 싫어 신상옥, 최은희가 동유럽에 나가 살며 영화를 만들다가 김일성, 김정일의 위대함을 깨닫고 자진 월북한 것으로 선전되었습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만큼 이 방송을 북한에서 듣고 있을 청취자들에게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어떻게 북한에 가게 되었는지 좀 자세히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MC: 당시 납치 사건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먼저 납북된 것은 최은희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장소는 1978년 홍콩입니다. 당시 홍콩의 프라마 호텔에 묵고 있던 여성이 짐도 그대로 둔 상태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그 여성이 최은희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최은희와 관련하여 남편이 관련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당시 신상옥과 최은희는 이미 헤어진 사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최은희가 사라진 배후에 신상옥 감독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 감독은 자녀들에게 엄마를 찾아오겠다며 홍콩으로 떠났는데 이후 신상옥 감독마저 실종되었습니다. 먼저 납치된 최은희는 홍콩에서 마침 시간이 좀 남아 있던 참에 누군가가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별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은희가 안내자들을 따라 간 곳은 바닷가였고 보트가 있었습니다. 최은희는 마카오에 갔고 다시 중국 본토로 가는 배에 태워졌습니다.
MC: 듣기로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최은희를 마중나왔다고 하던데요?
> 도명학 : 공작원들에 의해 마취 상태로 있다가 깨어나 보니 이미 그곳은 북한 남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최은희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남포항에 미리 도착해 있다가 최은희가 도착하자마자 크게 반가워하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최은희는 대한민국에서 실종자가 됐습니다. 이후 김정일은 최은희를 극진하게 대접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신상옥과 재회하게 됩니다. 실종된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으로 갔던 신상옥이 납치되어 끌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는 5년이나 흐른 후였습니다. 그 이유는 신 감독이 북에 끌려와서도 2번이나 탈출을 시도해 정치범수용소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다가 겨우 풀려나 최은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1982년 4월 2일. 한국 정부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만한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합니다. 그것은 바로 1960~197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감독과 영화배우가 납치됐다는 발표였습니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지시로 최은희가 납북되고 전처인 최은희를 찾다 6개월 뒤에 함께 납북된 신상옥의 상태가 '실종'에서 '납북'으로 바뀌는 데 4년 3개월이 걸린 셈이었습니다.

MC: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 아니겠습니까? 주민들은 당시에 이들의 등장을 어떻게 생각했나요?
> 도명학 : 당시 북한 주민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조선에서 제일 대단한 감독과 배우가 김일성, 김정일을 얼마나 흠모했으면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북한에 왔을까 생각되고 이제부터 그들이 만들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도 컸습니다. 그때 돌아가던 말에 의하면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김정일 시로 건설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내 촬영거리를 구경한 신 감독이 이 훌륭한 촬영기지에서 한해에 영화를 몇 개나 만들고 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촬영소 사람들이 한해에 3~4편 정도 만든다고 대답했는데 신 감독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 같으면 이렇게 훌륭한 조건에서 한해 백 편도 만들겠다면서 북한 영화인들이 너무 게으른 것 같다고 혀를 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항간에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얘기죠.

MC: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북한에 가기 전에도 주민들은 이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 도명학 :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시기는 지금처럼 북한에 한류가 유입된 것도 아니니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MC: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들을 왜 납치했던 것일까요? 목적이 무엇이었까요?
> 도명학 : 북한 영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당시의 북한 영화들이 눈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광인 김정일은 저 혼자서만 사회주의 나라 영화든 남한 영화든 미국영화든 가리지 않고 보니까 세계적인 영화 추세를 환히 꿰뚫고 있었을 게 뻔합니다. 그러니 북한 영화인들한테 영화 수준을 높이라고 암만 요구해봤자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북한 영화인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각국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고 해외에 자유롭게 나가 볼 수 있어야 시야가 트이죠. 그러니 외부에서 능력자를 데려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 외국인 감독은 적합지 않고, 결국 동족인 남한에서 도둑질할 궁리를 한 거죠.

MC: 신상욱 감독의 영화는 기존의 북한의 것과 어떻게 달랐나요?
> 도명학 : 한마디로 완전히 때벗이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북한 영화들은 신 감독이 만든 영화에 비하면 딱딱하고 정형화된 틀에 박혀 창의력을 느낄 수 없는, 아이들 만화책 수준이었습니다.
MC: 신성욱 감독의 작품을 본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도명학 : 신 감독이 만드는 신필름 영화들은 하나같이 스토리가 탄탄하고 스릴감, 박진감이 있고 감동이 때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슬며시 밀려들거나 때로는 강렬한 폭발에 휩싸이듯 다가오는 영화들이었습니다. 특히 촬영술이 기가 막힐 정도여서 사람들이 와! 저런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하며 감탄했습니다.

MC: 신상옥 감독이 만들었거나 최은희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 가운데 북한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는?
> 도명학 : 어느 영화나 다 인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론 비현실적인 전설같은 이야기를 영화화한 영화 "불가사리"가 좀 별로였는데, 그래도 그 영화를 아이들은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화는 "소금"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영화 축전에서 최고의 상을 수상했고, 최은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정도인데, 좀 속된 시각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이 영화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 북한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베드신이 가장 진하게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MC: 신상옥 감독 이후 북한의 영화에도 변화가 일어났나요?
> 도명학 : 신상옥 감독이 만든 신필름 영화들은 북한 영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신 감독이 떠난 이후 제작된 "도라지 꽃"이라는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고 여주인공역을 맡은 인민배우 오미란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또 신필름 영화 영향을 받아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을 탈출한 후에 만들어진 북한 영화들에도 나체 장면이 나오는 등 상당한 질적변화를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MC: 이제 북한에는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없는데요. 그렇다면 그런 종류의 영화가 이젠 안 나오나요, 아니면 누군가가 그것을 이어받아서 제작하고 있나요?
> 도명학 : 좀 반복되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신상옥 최은희가 떠난 후에도 신필름 영화 흉내 내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잘됐다는 영화들은 그게 신필름 영화였는지 어느 창작단 영화였는지 아리송할 때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북한 영화계가 신필름 기술을 상당수 흡수했다는 것을 말해주죠.

MC: 북한 주민들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 같은 것을 더 좋아하나요, 아니면 전통적인 북한의 영화를 더 좋아하나요? 이유는 뭘까요?
> 도명학 : 신상옥 식 영화를 더 좋아하지 전통적인 북한 영화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들을 신사숙녀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북한 영화들은 남루하기 짝이 없고 어색한 속된 말로 상놈들 영화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MC: 남한에 오셔서 남한 영화를 처음 보셨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 도명학 : 신필름 영화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긴 했으나 훨씬 더 진화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속도감과 액션이 더 강렬한 느낌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미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속도였습니다. 또 북한 영화들에 비해 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북한 영화는 보통 90분인데 남한 영화는 대개 120분 넘습니다.

MC: 북한 영화는 어떻게 변화해야 북한 주민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 도명학 : 세계적인 영화 추세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경제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현재의 북한 경제난으론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경제적 기반부터 만들어진 다음에라야 다른 것을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 내용 자체가 정치선전물인데 그래선 아무리 좋은 장비와 촬영기술과 훌륭한 연기로 영화를 만들어도 국제영화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북한 당국이 직시했으면 합니다.
MC: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도명학 :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