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 '춘향전' 계급투쟁 선전물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사랑>(1984)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사랑>(1984)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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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뭘 이야기해 볼까요?

>도명학: 네, 오늘은 남한과 북한이 각각 민족 고전 작품 춘향전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와 주제곡인 '사랑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MC: 무엇보다 남한의 춘향전과 북한의 춘향전이 그 형태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두 춘향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도명학: 네,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남한이든 북한이든 같은 원작인 춘향전을 각색하여 영화를 만든 만큼 등장인물, 줄거리 같은 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말투와 태도, 창법, 영화 장면 배경 등이 다릅니다. 내용 면에서도 남한 춘향전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향에서 좀 세속적이고 희극적인 재미가 많이 가미된 것 같고, 북한 춘향전은 전통적인 요소에 현대적인 요소가 섞인 느낌이 듭니다. 특히 북한 춘향전은 이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통해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하는 점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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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창극 '춘향전' /연합뉴스

MC: 이런 고전 작품에까지도 빼놓지 않고 그런 것을 넣는군요.

>도명학: 그래서 북한 춘향전을 보고 나면 이몽룡과 춘향이처럼 아름답고 절개 굳은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사회 지배계급, 착취계급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혁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영화의 끝부분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두하여 변학도를 응징할 때 보면 엄청나게 많은 백성들이 농쟁기를 치켜들고 성난 파도처럼 관가로 밀고 들어가 모든 양반 관료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부수는 장면은 마치 자본주의 제도를 뒤엎는 사회주의 혁명에 나선 폭동 군중이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북한 춘향전은 출신 계급이 전혀 다른 이몽룡과 춘향의 곡절 많은 사랑을 통해 계급투쟁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그런데 북한에는 춘향전 영화가 하나밖에 없나요?

>도명학: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북한에는 "춘향전" 영화가 3개인데 맨 처음 나온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본 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나온 춘향전은 197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고 세 번째가 납북된 신상옥 감독이 1980년대에 만든 "사랑 사랑 내 사랑"이라는 제목의 춘향전입니다. 현재의 북한 주민들은 맨 처음 나온 춘향전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춘향전 하면 두 번째 나온 춘향전과 신감독이 만든 '사랑 사랑 내 사랑' 두 개를 꼽습니다. 그중에도 신 감독이 만든 춘향전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을 만큼 훌륭합니다. 특히 이채로웠던 것은 신 감독 이전에 나온 춘향전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적인 역사물 영화 형식인데, 신 감독이 만든 영화는 노래와 가무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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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 사랑> 중 한 장면

MC: 오페라 같은 형식으로 만든 영화였나 봅니다;

>도명학: 그래서 당시 그 영화를 처음 본 북한주민들은 영화가 이상하더라,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노래로 하던데 가극을 촬영기로 찍어서 영화필름에 담은 것 같아 영화라기보다 가극을 보는 느낌이 들더라며 낯설어했습니다. 그 낯설음이 오히려 영화를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본 것 같고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들이 워낙 재미가 있고 부르기 쉬워서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영화 주제곡 "사랑 사랑 내 사랑"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도 즐겨 부를 정도인데 영화가 나온 지 까마득한 지금도 여전히 불려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MC: 북한에서도 판소리가 공연되고 있나요?

>도명학: 북한 사람들은 판소리가 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북한에서 판소리가 사라진 지 오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없어졌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판소리를 없애라고 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김일성은 1950년대 천리마 운동이 한창일 때 판소리에 대해 소리는 사람의 자연적인 목소리를 왜곡해 내는 소리로 듣기 싫다고, 케케묵은 봉건통치배들이 즐기던 판소리는 천리마 시대 사람들의 미감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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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국악공연 창신제 공연 모습. 2021.12.9 /연합뉴스

MC: 남한에 오셔서 처음 판소리를 보고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도명학: 판소리는 북한에서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남한이 전두환 정권 때로 기억되는 데 당시 남한에서 평양에 온 전통예술단 공연에서였습니다. 전통예술단이라는 명칭부터 낯설고 공연은 더욱 한심해 보였습니다. 출연자들이 무대에 걸상도 없이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북을 두드리고 가수가 이상한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혀 보는 사람들 모두가 실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오니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런 공연이 있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남한에 산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익숙해지긴 했습니다.

MC: 춘향전 하면 뭐니 뭐니해도 사랑가가 유명한데 말이죠. 남한의 사랑가와 북한의 사랑가를 비교할 때 공통적인 것은 무엇이고 또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도명학: 공통점은 둘 다 순수한 사랑 노래라는 점일 것입니다. 북한도 춘향전 사랑가에까지는 체제선전 뉘앙스를 섞지 않았습니다. 다른 점은 북한 것은 당국의 민족문화계승 발전 정책에 따라 전통에 현대성을 가미한 느낌이고 남한 것은 전통적인 판소리 형태를 유지한 것 같습니다.

단지 사랑가 뿐 아니라 “노들강변”, “영천아리랑”, “군밤타령”, “돈돌라리” 등 전통 민요 모두가 남과 북이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남한은 민요에 한과 정 같은 애환이 느껴지는 판소리 형태로 부르는데 북한은 밝고 명랑하고 리듬도 빠르고 고음 위주여서 전통음악과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곡뿐 아니라 가사도 북한식으로 개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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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사랑가'의 한 장면 (2011.1.14) /연합뉴스

MC: 북한의 춘향전은 신상옥 감독이 만들어 주목을 받았는데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네, 앞에서도 잠간 말씀드렸지만 영화인지 가극인지 낯설면서도 이전에 나온 춘향전보다 재미는 더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왜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했는지 그냥 대사로 했으면 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면서 신상옥 감독이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MC: 영화와 판소리 말고 두 춘향전을,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사랑가를 문학적인 면에서 비교를 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명학: 문학적 면에서 남북한 사랑가 가사를 살펴보면 남한 것은 문자 그대로 노랫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몽룡이 춘향에게 "업고 놀자", "뒤태를 보자", "잇몸을 보자"라고 하는 등 아주 구체적입니다. 반면 북한 사랑가 가사는 북한에서 가사는 서정시의 정수라고 하는 말대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북한 사랑가가 가사가 문학성이 더 높고 남한 사랑가 가사는 원작과 전통에 더 충실한 것 같습니다. 둘 다 각각의 색깔이 다를 뿐 남한 사랑가와 북한 사랑가 중 어느 것이 더 낫다 못하다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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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가극단 <춘향전>. 기생들에게 새롱거리는 변학도 /조선신보

MC: 북한의 춘향전에도 북한 노동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사상과 이념, 또는 선전 선동의 내용이 들어가 있나요?

>도명학: 춘향전 영화가 고전 작품을 각색한 만큼 거기에 정치적 사상과 이념 선전을 끼워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하는 선전은 없고 단지 이면에 계급투쟁의 당위성을 은근히 설파하는 수준입니다. 춘향전 뿐 아니라 흥부전, 토끼전, 심청전, 양반전, 등을 각색한 영화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MC: 결국 춘향전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명학: 춘향전은 봉건적 신분제도 하에서 성립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신분의 남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가는 절개 높은 사랑을 통해 원작인 춘향전이 나온 옛날에는 물론이고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교양과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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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가극단 <춘향전> 중 암행어사가 된 몽룡이 춘향이 투옥된 사실을 알게 된 장면

MC: 오늘은 남북간의 춘향전, 그리고 그 안의 사랑가를 비교 분석해 봤는데요. 마지막으로 정리를 좀 해 주시죠.

>도명학: 네, 춘향전은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남긴 매우 소중한 가치를 갖는 민족 전통 자산이고 영원히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춘향전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북한은 춘향전을 각색함에 있어 춘향의 절개보다는 신분제도 타파에 무게 중심을 두고 남한은 춘향의 절개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