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남한의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북한작품을 소개해 주신다고요?
도명학: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주로 남한 작품들을 많이 소개했는데 북한작품들도 함께 살펴보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MC: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도명학: 오늘은 북한 영화 "헤어져 언제까지"라는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이산가족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번 시간에 이야기 나눈 한국 영화 "간 큰 남자"도 이산가족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오늘은 북한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어떻게 영화에 담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MC: 이 영화의 감독도 저희가 잘 아는 인물이죠?
도명학: 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신상옥 감독입니다. 그가 김정일에 의해 납북된 후 북에서 적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한편이 "헤어져 언제까지"입니다.
MC: 영화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영화는 남북으로 갈라진 남한의 아버지와 북한의 딸에 관한 이야긴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남한에서 일용직 등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독거노인인 아버지에게 어느 날 안기부 요원이 찾아와 헤어진 딸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북에 피치 못한 사정으로 딸을 남겨두고 남으로 내려온 노인은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딸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기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미련을 갖습니다. 안기부 요원은 딸이 살아 있으며 잘 커서 평양교예단의 유명배우가 되어 있다며 신문에 난 보도자료도 보여주면서 딸이 프랑스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안기부 요원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딸은 정말로 북한의 재능있는 교예배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기부의 진짜 목적은 이산가족인 아버지와 딸을 만나게 해주려는 순수한 목적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아버지를 이용해 딸을 남쪽으로 월남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노인은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안기부 각본대로 움직입니다. 안기부 요원들은 노인에게 새 양복도 사입히고 돈뭉치도 줍니다. 또 노인의 친구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돕는데, 마침 프랑스에는 옛날에 가깝게 지내다가 남한 군부 정권에 반감을 품고 망명한 친구 노인이 있습니다. 그 친구분도 노인이 딸과 상봉하게 된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안기부가 모처럼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협조합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관과 안기부 요원들은 딸과 아버지의 상봉을 통한 딸의 월남을 성사시키려고 작전에 돌입합니다. 북한 측도 아버지와 딸을 만남을 반대하지 않고 한시바삐 만나게 해주자고 호응합니다.
그러나 안기부가 정작 노리는 것은 혈육의 만남보다 딸의 월남이라는 정치적 실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쉽게 만나지 못하게 여러 가지 핑계로 시간을 질질 끕니다. 아버지와 딸의 혈육의 감정을 마지막 크라이막스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속을 더 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은 안기부가 바라던대로 흘러가는 가 싶더니 꼬이기 시작합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북에서 고아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안기부가 대화를 감청합니다.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니 딸의 이야기에 감동된 아버지가 딸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끌려가는 상황입니다. 물론 아버지는 안기부가 시킨 대로 딸에게 서울에도 극장이 있는 만큼 그 재능이면 돈을 많이 벌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며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서울에 가서 함께 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딸은 남한에 가서 아무리 우대를 받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부모도 책임지지 못하고 돌덩이처럼 나 딩구는 신세인 자기를 친혈육의 정으로 키워 온 나라가 다 아는 유명예술인으로 내세워 준 노동당과 인민을 어떻게 저버리겠는 가며 오히려 아버지가 평양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합니다.
대화가 이렇게 번지자 급해 맞은 안기부 요원들은 황급히 덤벼들어 상봉을 중단시키고 아버지를 끌어갑니다. 대사관에 억류된 아버지는 공연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딸과 만나기로 된 약속을 지키려고 창문으로 뛰어내립니다. 노인은 다리가 부러졌지만 오로지 딸을 만나겠다는 생각이지만 공항으로 들어갈 수 없고 뒤따라온 안기부 요원들에게 잡혀 끌려갑니다. 한편 딸은 아버지가 이렇게 된줄도 모르고 공항에서 아버지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비행기에 오르게 되는데 공항 철조망 밖에서 딸이 탄 비행기를 향해 손을 뻗으며 목놓아 딸을 부르는 아버지를 보고 몸부림칩니다. 결국 아버지와 딸의 상봉은 차라리 없었기보다 못한 상처로 남게 되고 노인은 강제로 남한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MC: 보는 이가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어디이고, 왜 그런가요?
도명학: 가장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은 안기부가 아버지와 딸을 만나게 해주려는 목적이 드러나는 대목들입니다. 딸을 월남시키면 얻게 될 정치적 이득에 대해 수군댄다든가, 빨리 만나게 해줄 수 있음에도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며 애간장이 더 타들어가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안기부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 영화를 만든 신상옥 감독을 비롯한 남한 인사들을 유인 납치해 자신 월북으로 포장해 선전한 북한 국가보위부 등 정보기관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는 현재의 국정원이 안기부로 활동하던 시기 이산가족 문제에 관해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가 나왔던 시기까지는 아직 남북 간 체제경쟁이 극도로 치열할 때였던 만큼 그랬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다만 북한만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북한은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 관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치적 지렛대로 써먹고 있고,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체제 선전의 기회로 활용하려 합니다. 이런 의미를 기준으로 이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MC: 얼마 전에 실향민과 이산가족을 다룬 남한 영화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같은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남한과 북한이 영화를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요.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요?
도명학: 전 시간에 이야기 나눈 이산가족 영화 "간 큰 가족"을 통해 볼 수 있듯 남한은 이산가족 작품을 순수하게 인도적인 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인데 북한은 무조건 저들의 체제 선전을 동반한 순수하지 못한 방식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북한 주민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상을 갖게 되나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북한 주민들에게 이 영화가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북한 당국이 가장 크게 얻은 성과는 북한 주민들에게 안기부의 존재를 음모와 모략의 소굴로 깊이 각인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뀌었음에도 국정원이 뭔지는 몰라도 안기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탈북자들도 한국에 오기 전 국정원이라면 알아듣지 못하고 안기부라고 해야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산가족의 슲픔과 비극을 한시바삐 끝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기부를 비롯한 남한 당국의 반민족적 처사를 끝장내는 것이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MC: 남한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도명학: 글쎄요. 아직 이 영화를 본 남한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인터넷에 친북성향을 가진 것으로 인해 이적단체 논란이 있는 단체 블로그에 감상평이 약간 있던데 북한에서 노리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MC: 선생님 보시기에는 이런 종류(이산가족문제, 남북통일 인권 문제 등)의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바람직한 제작방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다른 것이 없다고 봅니다. 이산가족이나 남북통일 인권문제 등을 영화를 만들 땐 남한처럼 비정치적으로 만들어야지 북한처럼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결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MC: 한마디로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도명학: 한마디로 이산가족 문제를 남한에 대한 악선전에 이용한 프로파간다 영화입니다, 예술성, 작품성으로만 따진다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봅니다. 유명한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니까요.
MC: 한국사람들은 이 영화를 볼 때 무엇을 주의하면서 봐야 할까요?
도명학: 남한 사람들이 특별히 주의할 점은 단 하나 북한의 선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은 자칫 곧이 곧대로 반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입니다.
MC: 네, 오늘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북한의 선전선동 영화 작품을 살펴 봤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