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이번 시간에 소개해 주실 작품은 뭔가요?
도명학: 네 오늘은 시 "사평역에서"와 단편소설 "사평역" 두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 합니다.
MC: 저희 프로그램에서 시와 소설의 제목이 같은 작품들을 소개하는건 처음인데요. 이 '사평역'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도명학: 사평역은 실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철도역입니다. 시인이 광주에서 살 때 보아온 남광주역에서 영감을 얻어 사평역이라는 역명을 지어냈다고도 하고 ,전라도 어느 군의 시골 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 9호선에 사평역이라는 역이 있긴 한데 작품 속 사평역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지하철역입니다.
MC: 소설 '사평역'은 시 '사평역'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된 거라고 하던데요. 맞나요?
도명학: 네. 그렇습니다. 시가 워낙 좋아서 소설을 쓰고 싶은 의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소설 제목도 "사평역"이라고 달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시의 매력이 컸다는 얘기겠죠.
MC: 그런데, 특별히 이 두 작품을 고르시고 소개해 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도명학: 이 두 개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사평역 모습은 현재의 북한 시골 역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이런 작품을 북한에서 본다면 상당히 공감할 것 같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MC: 그럼, 먼저 소설 '사평역'에게 영감을 줬다는 시부터 좀 살펴 보겠습니다. 시 '사평역'를 쓴 시인 '곽재구'는 어떤 인물인가요?
도명학: 네. 곽재구 시인은 195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출생 성장하여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또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도 있었습니다. 문단에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공모전에서 오늘 소개하는 시 "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습니다. 그 후 시인은 토착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특히 민중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썼습니다.
시집으로는 첫 시집“사평역에서”, “전장포아리랑”, “한국의 연인들”, “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등과 시전집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가 있습니다. 이외 어린이 동화 “아기참새 찌꾸”를 썼고 산문집도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길 귀신”을 비롯하여 여러 권 발간했습니다. 상으로는 1992년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과 1996년 제9회 동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MC: 시 사평역에서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제목: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출처: 유투브 채널 ‘최현숙 시낭송TV’)
MC: 시를 듣다보면 정말 시 한구절 한구절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느낌을 맏으셨나요?
도명학: 시의 서정적 주인공이 마치 제가 된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실지로 제가 한적한 시골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며 저 나름대로 저 사람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기차를 기다리는지도 짐작해보며 난로 불에다 톱밥이나 석탄 덩이를 던져 넣기도 했었죠.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정서가 느껴지더군요.
MC: 이 시 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히 북한 시에서는 볼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무엇인가가 있을까요?
도명학: 제가 이미 전에도 여러번 얘기 한바 있지만 남한 시들은 대개 난해한데 이 시는 내용와 감정이 아주 잘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 시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시에서 느껴볼 수 없는 진실함과 매우 섬세한 서정적 묘사와 구수하고 찰진 시어들이 너무 좋습니다.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특히 북한 시에서 추구하는 정치 선전적 색깔이 없어 더 순수합니다.
MC: 사상과 이념을 강조한 문학작품을 접하는 북한 주민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아주 좋아할 것입니다. 아마 이 시를 수첩에 옮겨 적거나 외우고 싶어 할 정도로 애독할 것 같습니다.
MC: 이 작품을 읽으시면서 어느 부분에서 '아! 이게 정말 시를 읽는 맛이지'라고 감동을 느끼셨는지요?
도명학: 저는 시의 앞부분에서 홀딱 반했습니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지난날 북한 시골 역에서 겨울밤을 보냈던 저의 모습을 그대로 스케치한 것 같았습니다. 시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MC:sp,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은 시인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이 시에 영감을 얻어 썼다는 소설 '사평역'을 살펴 보겠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남한에서 '간이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를 들으시면서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출처: 유투버 채널 '전주 KBS)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