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국문학의 감동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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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국문학의 감동 이문열의 소설 ‘아우와의 만남’.
/YES24.com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은 탈북자가 한국에 와서 접한 문학작품에서 어떤 느낌,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과연 감동을 받긴 하건지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작가들이 생각하는 ‘감동적인 문학작품’이란 무엇인가요?

 

도명학: 그건 말 그대로 그 작품을 읽었을 때 감동이 저도 몰래 가슴 가득 몰려오는 작품일 것입니다. 특히 작품 속 주인공이나 등장인물 중에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거나 성품, 언행 등 개성이 유사해보이는 인물이 있을 때 더 공감하는 정도가 클 것입니다. 또 비록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평소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던 바를 보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고 확신케 하는 작품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과 기쁨, 사랑과 증오 등 온갖 희노애락이 엮어져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작품이 어떻더냐고 물으면 대답이 대개 재밌다 재미없다로 대답하기 일쑤인데 사실 정확한 대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이란 유희, 오락적 요소로 인해 재미있게 읽어지는 작품에 한해서만 맞는 말인데 감동적인 작품까지도 뭉뚱그려 대답하곤 하죠. 그래서 저는 꼭 구분해서, 이건 재밌는 글이다, 저건 감동적인 책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MC: 남한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동은 북한 작품을 읽고 느끼는 감동이랑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도명학: 네 당연히 다릅니다. 북한작품 자체가 현실을 억지로 미화하고 실현불가능한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게 하는 등 현실과 너무 다른 내용이라서 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려 하다보니 남한 작품을 읽을 때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읽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느낄 때가 있는데 다 읽고 나 책을 덮고 나면 내가 왜 감동한 거지? 하고 씁쓸함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반면 감동적이지는 않아도 재밌는 부분들은 좀 있습니다. 예컨대 주민교양을 목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비판하는 작품들이 재밌습니다. 어느 정도 진솔하기도 하구요. 가령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목하지 못해 물의를 일으키는 현상을 비판하는 영화 같은 것은 참 재밌습니다.

 

반대로 남한 작품이 감동적인 것은 무엇보다 생활 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반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작가가 제기하는 주제와 해명, 메시지가 정치적 검열 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어서 더 감동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감동의 크기 면에서 남북한 작품 차이가 극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남한에 오셔서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감동을 많이 받은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소개 좀 해 주시죠?

 

도명학: 남한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이문열의 소설 “아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문열 소설가와 친분이 있고 그분의 인생사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이 소설가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담았고 남북한에 관한 얘기여서 더 감명 깊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아우와의 만남’은 남한 교수인 주인공이 북에 있는 이복동생을 중국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북으로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했고 북에서 재혼했고 늘 남쪽 고향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해 북에 갔지만 출신성분을 따지는 사회에서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던 거죠. 그리고 북에서 재혼해 얻은 자식들 역시 남한출신 아버지와 남한에 있는 이복형제들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형과 아우가 중국에서 만나 며칠간 지낸 실지 이야기가 소설 “아우와의 만남”의 내용입니다.

 

MC: 그 작품 속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감동을 받게 되셨나요?

 

도명학: 주인공이 아우와 만나기로 했을 때 감정입니다. 과연 한번도 보지 못한 이복동생과 대화가 통할지,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만나고 보니 얼굴에 틀림없는 혈육의 모습이어서 놀랍고 끌립니다. 그러나 대화는 딴판인데요. 아우는 아우대로 형은 형대로 자기가 살아온 사회의 타성대로 솔직하지 못한 대화를 나눕니다. 동생은 북에서 걱정없이 잘 살아가는 듯이 말하는데 형은 형대로 남쪽에서의 자기의 처지를 솔직히 말하지 못합니다. 형제 사이임에도 마음의 벽이 있음을 주인공이 실감합니다. 그래서 형은 아우에게 달러를 건네기 싶은데도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 같아 망설이다 포기합니다. 나중에 술에 취한 김에 동생이 솔직하게 사는 형편을 털어놓고 형은 달러를 줍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왜냐면 북한사람들 마음의 겉으로 보이는 말과 속마음이 달라야만 하는 처지와 타성을 새롭게 소설을 통해 거듭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라는 비정상 사회에서 직접 살아온 저로선 공감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전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사회에서 내가 어찌 살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을 뿐 더러 지금의 생활이 한없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MC: 선생님께서 감동받으신 그 작품을 지금 북한 주민들이 읽어도 비슷한 감동을 받을까요?

 

도명학: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소설들은 북한에 필요한 소설입니다. 다만 감동은 저같은 탈북자들과 조금 차이는 있겠죠. 왜냐면 그들은 북한의 삶은 알지만 남한에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 기준이 없어서겠죠.

 

MC: 북한 주민들이 감동 받을 수 있는 남한 소설 작품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 있을 수 있나요?

 

도명학: 구성요소는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남한에 범람하는 난해한 시들은 공감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소설, 영화, 드라마 같은 스토리 장르는 다 통합니다. 특히 남한 작품 중 소설작품은 판타지 소설을 제외하곤 다 먹힐 것입니다. 저도 북한에서 몰래 남한 작품 몇 개 봤지만 읽는데 있어서나 감동과 재미에 있어서나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MC: 남한 작품과 북한 작품을 놓고 볼때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 작품에 더 큰 감동을 받을까요? 그 이유는 뭔가요?

 

도명학: 앞에서도 말했지만 두말 할 것도 없이 남한 작품이 감동이 있을 겁니다. 다만 너무 지엽적이고 사말적인 개인사를 단순히 나열한 작품들은 처음 몇 개는 남한작품이라고 하니 궁금해서 읽히겠지만 나중엔 읽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문학은 남의 얘기가 나의 얘기로 받아들여 질 때 공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MC: 남한의 시는 어떻습니까? 예전에 남한의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유가 뭔지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네.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 하곤 하지만 남한 시는 정말 난해합니다. 저는 시는 쉬우면서도 읽을 때 감정이 솟구치게 써야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한 시는 비약과 함축이 지나치고 상징적인 시어도 너무 낯설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가 많고, 그런 시가 또 높은 평가를 받고 큰상도 받습니다. 이에 대해선 남한 시인들 가운데도 문제 제기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쉽게 이해되면서도 감동을 주는 좋은 시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걸 3류시 취급을 하는 문단세태가 마음에 안듭니다. 그것이 아무리 세계적 추세고 현대시의 기준 같은 것이라고 역설을 해봤자 그건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얘기지 민중이 이해 못하면 서점과 도서관 서가에서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MC: 읽으신 것 중에 감동을 가장 크게 받은 남한의 시는 어떤 게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저는 오래된 시로는 백석의 시가 개인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시인 백석은 일제시기에 등장한 시인이고 해방 후 북에서 활동하다가 마지막엔 시를 아예 쓰지 않고 절필상태로 협동농장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북에서 저는 그를 한번 보고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자꾸 백석, 백석 하고 백석문학상까지 있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 알아봤더니 다름 아닌 내가 만났던 그 늙은 시인이 바로 유명한 백석이란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놀랍고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시들이 많고 많지만 그 중에도 오늘은 제가 남한에 와서야 읽을 수 있은 백석의 시 한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목: 남신의주 유봉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MC: 북한 시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남한 시인의 입장에서 감동을 주는 '시'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명학: 단순할 것 같지만 좀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주장하든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시란 어려운 장르죠. 어떤 이들은 시가 짧다고 해서 쉬운 글인 줄 아는데 사실 감동적인 시 한편을 쓰자면 장편소설 한권 쓰기 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소설은 엉덩이로 쓰지만 시는 피로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조언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시를 쉽게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몇 줄 안 되는 것이 시지만 노력은 적어도 단편소설 한 두 개쯤 쓰는 노력을 기울여 쓰고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퇴고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좋은 시가 완성된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는 북한 시인들이 참 힘들게 시를 씁니다. 시 한편을 완성하는데 1~2년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검열을 통과하려니 요령있게 써야 하는 고충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제가 남한에 와서 보니 시 한편을 앉은 자리에서 뚝딱 써버리는 경우도 있더군요. 물론 시상이 뇌리에 번쩍 번개 칠 땐 순식간에 명시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매번 그럴 순 없다고 봅니다. 감동을 주는 시가 무엇인가, 글쎄요, 읽고 나면 여운이 남아 생각에 잠기고, 메모하고 싶고, 외우고 싶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시가 그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저로선 딱히 뭐라고 한마디로 규명할 순 없겠고 다만 이 정도로밖에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네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저희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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