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렌트카 회사 대표 허철민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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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렌터카
제주국제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렌터카
사진 -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살다 보면 누구나 몇 번쯤 위기의 상황을 만나게 되죠. 물론 지나고 나면 웃을 여유가 생기지만 그 순간순간을 이겨나가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그런데 그 어려운 위기를 기회로 만든 분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위기가 닥쳐도 주저앉지 않고 극복하면서 인생역전을 한 허철민(가명) 씨인데요. 1999년 도망자의 신세로 북한을 떠났던 그가 지금은 어엿한 한 회사의 대표로 있답니다. 철민 씨는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며 누구나 인생역전이 가능하다고 말하더군요.

김인선: 도망자에서 회사 대표가 됐다는 말만 들어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까 싶은데요. 도대체 어떤 중죄를 지었기에 도망자가 됐는지 궁금해요.

마순희: 도망자가 왜 됐는지 소개하기 이전에 허철민 씨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철민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군입니다. 사법기관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근무처 이동으로 어릴 적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하더군요. 청년이 된 철민 씨는 군사복무 때에도 아버지 덕을 봅니다. 군대에서도 가장 선망의 대상인 호위국에서 군사복무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철민 씨는 근무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감정제대(의가사제대)로 고향에 다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2-3년 사이에 너무나도 몰라보게 변해 있더랍니다. 감정 제대를 한 철민 씨는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직장에 나간다 한들 배급도, 노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돈을 벌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나라에서 금하는 물건들을 중국과 밀거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외화벌이로 백도라지 재배를 한다고 공공연히 산 속에 수십 정보의 아편을 심어서 수확하기도 했기에 아편을 몰래 사서 되팔기도 했다는데 철민 씨는 그 일이 그렇게 심각한 범죄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단속에 걸렸는데 워낙 엄청난 양의 마약을 거래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것이어서 아버지의 뒷배로도 빠져 나올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다섯 명 중에서 세 명이 처형되고 두 사람만 간신히 빠져 나오게 됐을 만큼 중죄였던 겁니다. 더는 그 땅에서 살 수 없게 된 철민 씨는 도망자처럼 두만강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중국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심각한 범죄인 줄 몰랐다고는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한 거네요. 철민 씨는 그렇게 도망자의 신세가 됐는데 어떻게 인생역전이 가능했을까요?

마순희: 철민 씨의 인생역전에는 귀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철민 씨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 명의 귀인을 만났다고 했는데요. 그 첫 번째 귀인 덕분에 중국에서 비교적 잘 지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북한에서 추격을 피해 도망쳐 왔던 철민 씨였기에 중국이라 해도 국경지대에서 사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피신한 것이 북경이었고 거기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귀인을 만난 것입니다. 사업차 북경에서 거주하고 있던 그 분은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는 어린 청년이 안쓰러웠던지 철민 씨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며 철민 씨를 한국 사람으로 신분증을 위조해서 한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북경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철민 씨는 북한에서는 전혀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해요. 철민 씨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또 한 명의 귀인은 하나원 후배인 지금의 아내이고 또 한 명의 귀인은 자신에게 렌터카 회사를 소개시켜 주신 담당 형사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탈북자들에겐 보안원 격인 담당 형사가 한 명씩 배정돼서 신변을 지켜주는데요. 지금도 모르는 문제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먼저 찾게 된다는 담당 형사님과는 형님, 동생 하면서 함께 술 한 잔 나누는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살아가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의 귀인을 만났다는 철민 씨, 정말 인복이 있네요. 그런데 중국에서 만난 첫 번째 귀인 덕분에 그곳에서의 삶도 충분히 좋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을까요?

마순희: 위조신분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도망자의 신분이 언제까지 안전할 리가 없거든요.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북송되게 되었습니다. 철민 씨는 열차를 타고 북한의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도 보위부로 이송되게 되었습니다. 도 보위부에 가면 거짓말이 다 들통 나고 자신은 물론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철민 씨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철민 씨는 한국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게 됐고 제3국을 거처 2001년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김인선: 여기까지만 들어도 인생의 굴곡이 굉장하다 싶은데요. 허철민 씨는 한국에 와선 어땠을까요?

마순희: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철민 씨는 한국돈 만원의 가치가 얼마인지도 몰랐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저 철없는 24살 청년이었던 겁니다. 그나마 하나원 시절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됐는데요. 철민 씨는 회사에서 일하면 놀려 다닐 시간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 이유를 붙여가면서 한국정부에서 준 정착지원금으로 하나원 친구들이랑 제주도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명승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실컷 놀고 마셨다고 합니다.

김인선: 아니 한국에선 그 나이면 철 들 나이인데, 미래를 너무 생각하지 않은 거 아닌가 싶어요.

마순희: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사실 한국에 와서도 국정원 조사를 받을 때에는 하나원 생활을 하면서 항상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집단생활을 하다 보면 외로움을 느끼지 못 합니다. 그런데 정작 집을 받아 가지고 사회에 나와서 휑하니 넓은 집에 혼자 남겨진다고 생각해 봐요. 여성들도 그렇지만 특히 남성들의 경우에 외로움은 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하나원 시절에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 뿐이니까 서로 연락하면서 그 기분이 공감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함께 놀려도 다니면서 내가 살아갈 대한민국이 어떤 곳인지 알아본다고 기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통행증이 필요 없는 자유를 다시 한 번 만끽했던 겁니다. 하지만 정착지원금이 얼마 남지 않자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데요. 철민 씨가 처음 정신을 차리고 시작한 일이 건설현장의 일용직이었습니다. 일당은 하루 100달러 정도로 괜찮았지만 한 열흘 정도 일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팔을 들기도 힘들더래요. 몇 달 일하다가 이렇게 막노동만 하다가는 얼마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에 월급을 받는 다른 일자리를 찾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렌터카 업체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고 렌터카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철민 씨는 막연하게 운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를 찾아간 거죠. 건장하고 성실해 보이는 철민 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업체에서는 생각이 정리되면 언제든지 받아주겠다고 하였답니다. 직장을 구하게 되자 형님처럼 지내는 담당 형사님에게 렌터카 회사에서 일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럴 바에는 자기 친구가 렌터카 회사를 하는데 그곳에 잘 말해 줄 테니 가보는 게 어떻겠는가 하더랍니다. 담당형사님의 소개로 그렇게 들어간 곳에서 철민 씨는 회사를 차리기 전까지 9년을 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민 씨에게 담당형사님은 두 번째 귀인이 된 거죠.

김인선: 허철민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연과 운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철민 씨의 파란만장한 운명 속엔 귀인과의 인연이 함께 하는데요. 세 번째 귀인, 지금의 부인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렌터카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마순희 선생님! 다음 시간에 철민 씨의 못 다한 이야기 전해주세요.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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