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치유자, 건강상담사 김영순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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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민원 상담사들이 감정노동 전문 교육과정 '비타민 캠프'에 참여해 마음건강관리를 받고 있다.
콜센터 민원 상담사들이 감정노동 전문 교육과정 '비타민 캠프'에 참여해 마음건강관리를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파편이고 흔적일 뿐인데 언제든 다시 살아나서 멀쩡하던 사람을 바닥부터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이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지워버리는 것'과 '뜻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마순희: 네. 그러셨군요.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금은 ‘지금’이라는 농담도 있더라고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결정되지만 사실 지금 이 시간도 곧 과거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현재에 충실함, 그리고 현재에 다시 시작함은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은 탈북민들에게 있어서 그 말은 참으로 의미 깊은 말이라는 것을 공감하게 되면서 저는 오늘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됩니다. 춘천보건소에서 탈북민들의 건강지키미, 건강상담사로 근무하는 김영순 씨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인선: 춘천이라면, 지난달에 소개했던 나세진 씨가 기억나는데요. 외로움을 느끼는 엄마를 위해서 잘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춘천으로 내려왔잖아요.

마순희: 네. 그때 세진 씨가 취업문제로 어려워할 때 도움을 주었던 상담사가 있었다고 제가 소개를 했었잖아요? 바로 그 상담사가 오늘의 주인공, 김영순 씨랍니다. 나세진 씨 뿐만이 아니라 제가 소개를 해 드렸던 춘천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자들의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김영순 상담사의 도움으로 대학공부를 새로 시작해 자격증을 취득했다거나, 취직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간답니다. 또 김영순 씨의 도움으로 봉사활동에 열심히 동참하면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곤 하죠. 그만큼 춘천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 속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순 씨는 2004년에 탈북해 중국에서 6년 정도를 어렵게 살다가 2009년에 한국에 정착하게 됐는데요.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도 배우고 열심히 취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영순 씨는 지인을 통해서 춘천보건소에 찾아 가 보라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전국적으로 탈북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 보건소에 탈북민 상담사들을 한 명씩 취직을 시켜서 탈북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업무를 해 나가도록 하는 때였거든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있을 때부터 착실하고 성실하게 배워 나갔고, 사람들 사이에 신망도 있는 영순 씨를 하나원의 선생님이 눈여겨 본 거죠. 그분이 춘천보건소에 영순 씨를 추천했고 그 덕에 영순 씨는 정착한지 5개월 만에 보건소에 취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보건소는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의료기관으로 아주 저렴하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부담 없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마순희: 네. 저도 한, 두 번 보건소에 가보기는 했는데 병원 비슷하지만 병원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보건소는 지역주민의 건강과 위생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하나이고 전염병이나 질병의 예방관리, 학교 보건에 대한 지도, 영양관리 식품위생, 공중위생 등 많은 업무들을 수행하는데요. 한국의 보건소를 북한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비슷하게는 북한의 방역소나 진료소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기관이라고나 할까요?

김인선: 쉽게 말해서 작지만 병원보다 더 많은 일을 하네요. 그런데 그보다 영순 씨가 보건소에 취직을 했다는 게 놀라워요. 남한에 입국한지 불과 5개월 만에 취업을 한다는 건 쉽지도 않고 흔치도 않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요. 영순 씨는 어떻게 건강상담사라는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었나요?

마순희: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영순 씨가 보건소에 취직할 당시는 전국적으로 탈북민들이 많이 정착하고 있는 지역 보건소마다 탈북민을 한 명씩 상담사로 채용하게 됐을 때였습니다. 마침 영순 씨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거기에 뽑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탈북민들도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자격증도 없는 영순 씨에게 보건소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은 영순 씨에게도 너무도 뜻밖이었던 겁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워서 자신이 없다고, 못 할 것 같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평소에 탈북민들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던 보건소의 소장님이 모르는 것은 차차 배워가면 될 것이라고 함께 열심히 해 보자면서 격려해 주셔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영순 씨가 누구한테 잘 보여서 좋은 일자리에 척척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는 등 뒷소리를 하기도 했고 직접 보건소에 와서 자신들은 왜 취직을 안 시켜주냐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건소의 소장님을 비롯한 팀장님 등 기존의 직원들이 불과 며칠이었지만 영순 씨의 성실함을 잘 보았기에 자신들은 하나원이라는 통일부의 기관에서 추천한 사람을 쓰겠다고 했답니다. 이 얘기만 들어도 영순 씨가 얼마나 더 노력을 했을지는 상상이 되는 거죠.

김인선: 자격요건을 다 갖추지 못한 상태로 취업을 했으니까,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는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요? 한국에 온지 1,2년이 지나도록 뭘 할지도 모르는 탈북민도 많고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탈북민들도 많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운을 만드는 것 역시 영순 씨 본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들의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영순 씨의 생활이 바르고 성실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추천을 해 줄리가 만무하니까요. 보통의 탈북민들은 취업을 하려면 컴퓨터 교육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직업훈련교육을 받은 뒤에야 일자리를 알선 받게 되거든요. 드물게는 공채(공개경쟁채용)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탈북민들의 경우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영순 씨는 자신을 추천해 준 하나원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김인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좌절도 하게 되고,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영순 씨에게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을 소개해준 분에게나 자신을 믿고 채용해준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순 씨는 낮에는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밤이면 인터넷으로 공부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에 입학해서 사회복지에 대해 배우고 상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멀리 서울까지 가서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금 영순 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물론이고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아동심리, 노인 심리, 가정폭력상담사 자격증 등 수많은 자격증들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영순 씨는 지금 춘천에서 탈북민들의 건강상의 문제뿐 아니라 심리정서적인 문제, 진로와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상담도 해주고 해당 기관을 연결해 주기도 하면서 탈북민들의 대모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김인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김영순 씨는 탈북민들의 삶의 조력자, 그리고 치유자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고 살아가는 방식도 변하게 하니까요. 건강한 삶을 이끌어주는 김영순 씨의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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