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미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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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의 한식 조리기능사 양성 프로그램 '꿈을 잡(Job)아라' 3기생들이 요리 실습을 하는 모습.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의 한식 조리기능사 양성 프로그램 '꿈을 잡(Job)아라' 3기생들이 요리 실습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허영미(가명)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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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은 최근 10년간 다문화 인구가 늘어나면서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국제결혼, 국제재혼, 이주노동 등으로 인해 한국에 살게 된 아이들의 비율이 늘었습니다. 그 중에는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 자녀들이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이 이 아이들과 관련이 있다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의 한국어 교육과 한국사회 초기적응을 지원하는 곳,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영미 씨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은 2006년에 처음 설립되었고 당시에는 ‘무지개청소년재단’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하는데요. 무지개청소년재단은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처럼 ‘다양한 청소년들이 함께 한다’는 뜻에서 지어졌답니다. 비영리재단 법인으로 탈북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청소년 등의 사회적응 지원과 문화통합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김인선: 그렇다면 탈북자라서 채용이 결정된 건가요?

 

마순희: 아닙니다. 공개경쟁채용, 공채였습니다. 공채란 직원을 채용하려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채용모집공고를 내고 그 요구에 따라 서류들을 제출하고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서 채용을 결정하는 구조더군요. 사실 북한에서는 어떤 기관에 채용된다면 당위원회의 추천을 통해서 노동부 혹은 노동과에서 임명하거나 배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공채라는 것을 잘 몰랐었습니다. 공채는 북한과 대비도 안 되는 너무 참신하고 공정한 채용방법이라고 저는 탄복했습니다. 영미 씨 역시 자신의 학력이나 경험, 그리고 실무능력까지 다 갖추어져 있었기에 채용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거기에 탈북 청소년 사업을 많이 하는 기관이라 남북한 사회를 다 같이 경험한 영미 씨가 그 업무에 더 적합할 거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김인선: 아마도 가산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영미 씨는 경험과 실무능력을 다 갖추었기에 채용이 가능했을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경력이 있나요?

 

마순희: 영미 씨는 2001년 12월에 한국에 입국했는데 영미 씨가 하나원을 나왔던 때는 탈북자도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하나센터나 전문상담사도, 정착도우미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탈북자 지원정책이나 정보들도 지금처럼 잘 알 수 있는 체계가 안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 딸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적당한 일자리를 구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조무사학원 안내 전단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당시에는 유일한 조언자이던 담당형사에게 학원에 다니는 것이 어떨까 하고 물어 보았답니다. 그런데 여러 탈북자들이 입학했다가 결국은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 하고 도중에 그만두는 것을 보았다면서 힘들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에 그 힘든 것을 내가 한 번 도전해 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원에 등록했고 1년 과정을 거쳐서 간호 조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답니다.

 

자격증이 생긴 후 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병원근무는 못했습니다. 간호사라면 주사를 놔야 하는데 주사기를 잡으면 손이 떨리고 무서웠답니다. 또 간호사가 3교대로 근무를 하다 보니 밤 근무도 해야 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더군요. 결국 얼마 못 가 병원을 그만두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교사로도 근무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위가 높았던 북한과 달리 학부형이 우선시 됐던 한국식 교육방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교사일도 그만두게 됐습니다.

 

김인선: 아무래도 남북의 교육 차가 크긴 해요.

마순희: 네. 이렇게 직업이 몇 번 바뀌긴 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인터넷공지를 보았을 때에도 선뜻 지원할 수 있었고 높은 경쟁률이었지만 학력이나 어린이집 교사, 그리고 행정실무능력까지 두루 겸비했던 영미 씨는 당당하게 공채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영미 씨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 전체 인구가 3만 명. 그 중에 탈북 청소년은 5~6천 명 정도 됩니다. 여기에 제3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중도입국 청소년들도 있는데요.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추정치로는 만 2천 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비하면 약 3배정도 많아진 수치라고 하는데요. 이 친구들을 위해 영미 씨가 할 일이 점점 많아질 것 같은데요?

 

마순희: 그렇죠. 초반에는 탈북청소년 지원 업무를 중심으로 해왔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한국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어 중심의 교육도 중점적으로 하고 있고 각자의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공감하고 수준에 맞는 교육과 심리안정 과정도 맡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서 힘들 때도 많지만 하루빨리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탈북민 정착기관인 하나원의 하나둘 학교에 교육을 나가는 일 역시 허영미 팀장의 역할로 한 주일에 한 번, 하나원 청소년학교에 방과 후 교육을 나가고 있답니다. 북한을 떠나 한국에서 정착해야 할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무엇부터 가르쳐야 이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언어 장벽과 심리 불안 등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들이 한국어를 빨리 배우고 한국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일한다고 합니다.

 

김인선: 학생들의 진로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것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요. 힘든 일이지만 보람도 클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죠. 올해로 영미 씨가 무지개 청소년 센터에서 근무한지 10년차 됐는데요. 그동안 센터도 많은 발전이 있었고 영미 씨는 현재 2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센터에서 팀장으로, 크고 작은 업무들을 모두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센터로 방문했던 작년 여름의 그 날도 영미 씨는 직원들과 함께 회의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려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당당함과 긍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수많은 친구들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미 씨를 잊지 않고 연락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이면 영미 씨는 수많은 제자들의 축하 문자를 받기 바쁘다고 합니다.

 

사실 처음 영미 씨가 하나원을 수료할 때 대부분의 동료들이 공부보다 취업을 택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영미 씨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허영미 씨는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많은 사람들이 취직부터 하고 돈을 벌었다지만 지금 저보다 훨씬 부자로 사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저는 마음의 부자랍니다’ 라고요. 이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자신이 즐기면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배워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에서 밤을 새우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허영미 팀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인선: 무지개청소년 센터의 팀장으로 성장한 허영미 씨의 사례는 많은 탈북민들에게 성공적인 정착의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허영미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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