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웨이 코디 김성림 씨

0:00 / 0:0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많은 탈북 여성들이 요양보호사나 미용사 혹은 식당일 등의 서비스직, 그러니까 봉사원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오늘의 주인공도 봉사원이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한국의 정수기 렌탈 회사인 코웨이에서 봉사원으로 일하는 김성림 씨입니다. 수돗물을 깨끗하게 걸러주는 기계를 정수기라고 하는데요. 성림 씨는 그 기계를 빌려 주고 매달 사용료를 받는 렌탈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겁니다. 사실 한국의 수돗물은 북한에서 먹는 수돗물보다 엄청 깨끗하고 맛도 좋아서 그냥 마셔도 됩니다. 그런데 그 물을 더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 정수기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식당들이나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집들에서도 정수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보니까 정수기를 관리해 주는 봉사원들이 많이 있는데요. 성림 씨가 그 봉사원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성림 씨는 현재 제주도에서 코웨이의 코디로 근무하면서 11살 딸애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인선: 일단 여기에서 코디라는 말을 좀 짚고 넘어가야 될 것 같은데요. 코디라는 게 코디네이터의 줄임말이죠. 정수기를 설치한 집들을 방문해 위생적으로 기계를 관리 해주는 일을 바로 이 코디가 하는 건데요. 저는 이런 일 하는 탈북민 얘기는 처음 들었어요.

마순희: 네. 사실 저도 정수기 관리를 하는 봉사원, 코디라는 직업을 가진 탈북민을 만난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집집마다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관리해주는 분을 봤을 때는 특별히 기술이 높은 사람들처럼 보여요.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직접 자신이 해 볼 엄두를 못 내는 거죠. 성림 씨도 처음부터 코디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올해로 10년이 넘었는데요. 초반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서 같은 탈북민 남성과 동거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헤어지게 됐는데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었던 거죠. 다들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고 만류했는데 성림 씨는 혼자 몸으로 아이를 낳았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습니다.

김인선: 그럼, 아이를 낳고 시작한 일이 코디였던 거예요?

마순희: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일을 했지만 보다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면서 미용학 공부를 하게 됐고 학교가 제주도에 있는 ‘한라 대학’ 이다 보니까 입학하면서부터 제주도에서 지내게 된 거죠. 생활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면세점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도 했고 피부 관리실에서 일하기도 했다는데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낯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에 자신감이 붙은 거예요. 그러던 중에 혼자 몸으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또 아이까지 키워야 하다 보니까 주변에서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코디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코웨이에 입사하게 됐고 벌써 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은 한 번 시작하겠다고 한 일은 끝까지 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성림 씨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한 달이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답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고 보니까 업무상 어려운 점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한 달에 거의 100여 세대를 점검해야 합니다.

김인선: 많은 집을 방문해야 되죠.

마순희: 네. 또 일 나가는 세대들은 주말이나 퇴근시간 이후에 나가봐야 할 때도 있어서 고객들과 약속을 잡기도 힘들지만 약속해 놓고도 고객이 집에 없으면 또 다시 약속을 잡아 찾아가야 한다고 해요. 그렇게 고객이 원하는 시간을 맞추다 보니까 저녁 늦게까지 어린 딸을 집에 혼자 두게 되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고객과 이야기 나누면서 방문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게 됐답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김인선: 그런데 저희 집에도 코디 분이 2개월에 한 번씩 와서 점검도 해주고 불순물을 제거해주는 필터를 교환해주고 있는데요. 저희 집에 오는 코디는 자주 바뀌는 편이더라고요. 그런데 ‘성림 씨는 3년 째 근무를 하고 있다'라고 말해줬는데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을까요?

마순희: 물론 있었답니다. 생각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남북한의 봉사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요. 북한에서는 봉사원이 갑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고객이 갑이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한 번의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기에 많은 참을성도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실제로 겪은 사례가 있다면요?

마순희: 어느 날 얼음 정수기 점검을 나갔을 때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그 집은 간단히 점검으로 관리할 정도가 아니라 정수기가 고장 나서 얼음이 안 나오더래요. 그래서 고객에게 이야기하고 다음날에 수리 받을 수 있도록 신청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그 고객의 어머니가 전화해 다짜고짜 반말로 욕하면서 점검을 잘 못해서 고장이 났다고 그렇게 야단을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했고 과연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기도 했었다는데요. 그럼에도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마음을 다잡고 얼음을 사 들고 퇴근 시간 이후에 찾아갔대요. 마침 점검 때 봤던 고객이 있었는데 비 오는 밤길에 얼음을 사 들고 찾아 온 성림 씨의 모습을 보고서는 자기들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기 어머니가 아픈 사람이라 신경이 예민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달라고 대신 사과하더래요. 그 날 기분 나쁘다고 그 일을 그만두었더라면 오늘의 자기는 없었을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성림 씨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돋보이더라고요.

김인선: 성림 씨가 참으로 현명하게 소비자와의 마찰을 잘 이겨낸 것 같은데요. 성림 씨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마순희: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코디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별의 별 생각을 많이 했었대요. 그런데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견뎌냈다던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코디 일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늘 겸손하고 한없이 낮은 자세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사람들은 역시 진심을 알아보더라고 하더군요. 한 집 한 집 최선을 다 해서 꼼꼼히 정비해주고 친절히 해결해 주었더니 또 다른 고객을 소개해 주기도 해서 자연히 영업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소득도 높아지고 너무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림 씨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면 본인만 힘들어진다고 하면서 북한식 사고방식을 버리고 늘 칭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떤 일을 하든지 장기 근속을 하게 되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인선: 힘든 만큼 보람도, 성과도 크네요. 그런 성림 씨를 보면서 다른 탈북민들도 ‘코디’라는 직업에 관심이 좀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생각만큼 코디라는 직업에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탈북민에게 낯선 집을 방문하는 일, 지도를 보고 찾아가야 하는 게 쉽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일이 가장 두렵고 어렵습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부담스럽다고 할까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탈북민들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이 가장 불편하거든요. 그런데도 코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성심 성의껏 지금까지 하고 있는 성림 씨가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김인선: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성림 씨는 어쩌면 탈북민 출신의 1호 코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림 씨처럼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탈북민들이 더 많아지길 바래봅니다.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코웨이 코디, 김성림 (가명)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