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기능사, 김정희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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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재난위기가정의 도배 등 주거환경 개선 봉사를 하는 모습.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재난위기가정의 도배 등 주거환경 개선 봉사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요즘 한국에선 직접 바닥부터 도배, 문고리까지 싹 바꿔서 새집처럼 꾸미는 게 유행이잖아요. 물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지만, 너무 비싸다 보니 이런 유행이 생긴 건데요. 탈북자 분 가운데 이쪽 일의 전문가가 계시다면서요?

마순희: 네. 탈북민 중에서 몇 안 되는 도배기능사 김정희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정희 씨는 지금 60이 넘은 지도 몇 해 되는 나이인데요. 지금도 열심히 도배일을 하고 있답니다. 김정희 씨는 46세 때인 2003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김정희 씨도 처음 한국에 오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워낙 음식솜씨가 좋아서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정작 취업으로는 연결되지 못 했습니다.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배 학원이 있었는데 도배 기술을 배우면 일자리 걱정은 없다고 해서 저도 김정희 씨랑 함께 도배 학원에 다녔었답니다. 6개월 후 도배 학원을 졸업하면서 기능사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요. 20여 명 교육생 중에서 단 네 명이 자격증을 받을 정도로 쉽지 않은 실기 시험이었답니다. 저희들 20여 명의 교육생들 중에서 현재까지 도배일을 하는 사람은 김정희 씨 한 사람이랍니다.

김인선: 아 선생님도 처음엔 도배 일을 했었군요. 그럼 선생님도 그때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따셨나요?

마순희: 아니요.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매 수험생들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천정과 벽, 장판까지 주어진 시간에 다 해야 하는데요. 저는 천정을 바르다가 도배지가 확 떨어져 내리기에 다시 할 생각을 안 하고 그냥 포기하고 나와 버려서 자격증을 따지 못했답니다. 저는 그때 50대 중반이라 도배가 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시험만 어려운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도배 작업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고 합니다. 천정이나 벽, 장판 등 도배를 하는 방법이 배우면 배울수록 정말 놀라웠고요. 벽지 종류도 수 십 종이나 되는데 일반 벽지와 실크 벽지는 도배 방법부터 달라요. 벽지 바르는 풀도 다 사서 하고 공구들도 다 갖추어져 있으니 실제 작업하는 것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정희 씨도 힘들게 자격증을 따고 도배일을 시작했지만 실제 현장에 가 보면 자격증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더래요. 그분들이 하는 말이 자격증이 없더라도 현장경험이 많은 사람을 쓰는 게 몇 배 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김정희 씨는 한국에서 현장 경험은커녕 49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도배를 시작 했잖아요. 그 나이에 시작하기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혹시 북한에서도 도배 일을 했었나요?

마순희: 아닙니다. 북한에서 정희 씨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와서도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정희 씨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고 어떤 일을 해도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남한에서는 자격증과 기술이 곧 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제과제빵 기술도 익히고 자격증까지 땄던 거죠. 하지만 제빵 쪽 일로 연결은 안 됐답니다. 그러던 중 도배 학원을 알게 되었고 도배하는 기술을 배우면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학원에 간 거랍니다. 도배 자격증을 취득한 정희 씨는 북한에서 하던 대로 자신이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었는데 그것이 큰 오산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처음 주택을 받을 때에도 대도시가 아니면 거의 도배나 장판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도배나 장판을 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풀도 가루를 풀어서 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풀에 도배지의 종류에 따라서 몇 대 몇이라는 비율로 물을 섞어서 골고루 풀기만 하면 되거든요. 풀칠도 작은 규모로 할 때에는 솔로 하지만 웬만하면 다 기계로 풀칠을 해서 규정대로 접어서 가져 오더라고요. 초벌 벽지도 북한에서는 신문지를 바르고 그 위에 벽지를 바르지만 여기서는 초벌은 한지 같은 부직포로 바르고 그 위에 초벌, 그리고 그 위에 벽지를 무늬를 맞추어서 이음목이 전혀 알리지 않게 작업 하는데 웬만해서는 이음목을 찾아 볼 수도 없더군요. 이렇게 남북의 도배 문화가 달라서 정희 씨는 일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현장의 텃새였답니다. 그래서 초반엔 발붙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하더라고요. 일당도 3만 5천원 정도로 적었는데요. 한 달을 일해야 겨우 1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지만 반드시 도배기능사로 자리 잡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정희 씨였기에 조금도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김인선: 사실 15년 전의 하루 일당이 35달러였다면 적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당시 비슷하게 몸을 쓰는 일, 흔히 말하는 막노동을 해도 최소 7만원(70달러) 이었으니 비교해보면 도배일로 받는 일당이 적은 금액으로 여겨졌을 것 같긴 해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러나 김정희 씨는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처럼 기술이 낮은 사람이 일을 하면서 월급이 적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고 해요. 기술이 없는 사람이 잘못 붙인 도배지는 다시 뜯어내야 하거든요. 검사에서 불합격되면 다시 반복 시공을 해야 하기에 일당을 많이 주고서라도 고급인력을 쓰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차 기술이 높아질수록 일당이 높아지게 되었지만 정희 씨는 짬이 나면 뜯었다, 붙였다를 반복하면서 도배 기술을 배우는 것에 전념했습니다. 점차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3년 반을 한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술을 많이 익혔기에 한 공정을 끝내고 다른 작업장으로 장소를 옮겨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어느 공정도 능히 해낼 수 있는 기술자가 되다 보니 오히려 업체들도 동료들도 그와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더군요.

김인선: 능력자가 되신 거네요. 집을 새로 꾸밀 때에도 그런 기술력 있으신 분들은 인건비가 꽤 비싸더라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특히 요즘엔 이런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정희 씨의 능력이 더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실 남성들이 많은 공사현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그의 성실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자격증도 있는데’ 하고 자신만만하게 들어갔던 현장에서 3개월을 견디다가 나왔다고 합니다. 도배 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정작 자신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기술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더 실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학원을 다시 한 번 다니고 그 다음 다시 시작한 일이 금년까지 12년 차인 것입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더구나 도배 일이라는 것이 여러 공정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작업능률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더군요.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잘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좋은 회사를 만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인선: 겸손하시기까지 하네요. 이런 분들이 자리를 잘 닦아 놓으면 후배들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새 아파트들도 계속 지어지고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시점이라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도 많고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배기능사 교육을 통해서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과정들도 수시로 있더라고요. 이제는 정희 씨도 10년이 넘는 고참이다 보니 일당은 세고 하는 일은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자신의 손길에 따라 알뜰한 살림집들이 태어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자신 스스로도 그렇게 대견할 수 없다고 해요. 북한에서는 직장생활도 못 해보고 전업주부로 집에서 돼지나 기르고 텃밭이나 가꾸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그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사장님들이 늘 함께 일하고 싶은 우선순위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선배 도배기능사가 된 것입니다.

김인선: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은 못 당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김정희 씨가 바로 그런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숙달된 기술과 정성으로 도배 일을 하는 도배기능사, 김정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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