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탄오리농장 주인 허 철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2.22
sk_farm_exhibition-620.jpg 귀농·귀촌 박람회에서 관람객이 농업관련 분무기를 알아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제 주변에는 은퇴 이후에 귀농을 고려하는, 그러니까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의 주인공도 귀농으로 자리를 잘 잡은 분이라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벌써 5년째 오리 사육 사업을 하고 있는 허 철 씨가 오늘의 주인공인데요. 허 철 씨는 북한에서 행정위원회 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2008년에 한국으로 온 탈북민입니다. 처음 한국에 오면 빈손으로 시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허 철 씨의 경우에는 한국 정착 당시 그보다 못한 상태였습니다.

김인선: 그보다도 못한 상태라면요?

마순희: 네. 탈북과정에서 중국 변방대에 체포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인데요. 북송을 피하기 위해 1000만원, 그러니까 9천3백 달러라는 빚을 지게 됐고 한국에 와서 그 돈을 갚아야 했습니다. 거금의 빚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일하면 일한 것만큼 보수가 따랐기에 큰 빚을 1년도 안 돼 갚을 수 있었답니다.

김인선: 1년도 안돼서요? 대단합니다.

마순희: 네. 빚을 다 갚고 나니 어느 순간 통장에 돈이 쌓여가는 게 그렇게 신기하더래요. 자신의 사업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사업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영농을 선택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인선: 남한 통계청의 자료를 보니까 2005년 1천여 가구에 불과했던 귀농귀촌 가구가 2015년 약 33만 가구로 330배나 급증했더라고요.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일 텐데요. 작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우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잖아요. 허 철 씨는 어떤 마음으로 영농사업을 시작했을까요?

마순희: 네.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허 철 씨와 같은 고향사람이 귀농을 해 강원도에서 오리 목장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답니다. 궁금하기도 했고 고향사람이라 보고 싶기도 한 마음에 달려가 보니 그곳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답니다. 오리사 안에는 만여 마리의 오리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병 없이 건강하게만 잘 키워내면 오리를 가져가는 업체에서 40일마다 꼬박꼬박 비용을 입금해 준다고 했던 겁니다. 1년에 8-9회, 한 번에 만여 마리의 오리를 키워내는 오리 목장 사업이야말로 부지런하고 차분한 자신의 적성에 꼭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했지만 허 철 씨는 차근차근 철저히 준비하여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오리사육의 전 과정을 알기 위해서 3개월 넘는 동안 보수도 받지 않고 오리농가에서 지내면서 기술을 배워 나갔습니다. 농가 주인은 하도 열심히 일하는 그를 보고 함께 오리 사육 사업을 하자고 했지만 그는 전국의 오리 사육장을 둘러보고 싶었답니다. 오리 사육에 적합한 동네는 어디이고, 병 없이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어떤 비법들이 있는지 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게 공들인 준비 끝에 그는 충청도 음성군에서 오리 사육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김인선: 보통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자신에게 맞는 일터를 찾거나 창업을 하게 되는데요. 허 철 씨의 경우에는 준비과정부터 꽤 신중했던 것 같아요?

마순희: 네. 허 철 씨가 오리 사업에 신중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그도 사실은 이미 시행착오를 여러 번 했답니다.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바닷가 양식장에서 다시마를 수확하는 일을 했다는데요. 만만치 않은 작업에 두 달 반 만에 그만두고 동국제강이라는 회사에 생산직으로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고 특히 제3국 체류 없이 한국으로 바로 입국한 사례잖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행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한국의 회사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입사 연한에 따라서 급여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허 철 씨는 기존 직원들보다 자신이 일도 더 많이 하고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월급이 제일 적었던 게 탈북자라서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김인선: 탈북자라서 무시했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마순희: 그렇죠. 어차피 힘들기는 마찬가지니 그렇다면 차라리 내 사업을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교육을 받아 보았고 시작한 일이 택배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택배 사업도 잘 안됐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향 지인이 운영하는 오리 목장에 우연히 가게 됐는데 북한에서 농업대학도 나온 자신에게 맞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김인선: 목장을 하려면 땅도 있어야 하고 오리도 사야하고 제법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 돈을 다 마련했을까요?

마순희: 그동안 벌어둔 돈도 좀 있었고요. 탈북민을 지원해주는 하나재단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지원금도 받고 여기저기에서 빌리기도 했답니다. 요즘은 하나재단뿐만 아니라 귀농귀촌 지원센터가 있어서 지원금액도 많고 다양한 정보 제공, 그런 혜택들이 많은데요. 허 철 씨가 오리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지원금액도 적었고 귀농, 귀촌에 대한 정보도 잘 알지 못해서 정말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자금이 없어 여기저기 자금 대출도 받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육장도 두 배로 늘어났고 3만 마리의 오리 사육을 위해서 직원까지 고용하고 있는 제법 번듯한 오리 목장으로 성장했습니다. 허 철 씨에게 있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그동안의 노고는 참으로 소중한 체험이었고 깨달음이었다고 합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외지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 경제난까지 혼자서 짊어지고 묵묵히 버텨 온 허 철 씨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하나로 이뤄낸 오늘의 오리 농장은 앞으로 허 철 씨의 더 큰 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김인선: 허 철 씨가 운영하는 사업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는 제법 번듯한 오리 목장으로 성장한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살아있는 동물을 사육하다 보면 계속 신경 쓸게 많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생산 현장과 달리 생명을 다루는 모든 업체들이 다 그러하듯 오리 농장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신경 쓸 문제들이 많다고 해요. 종자 오리를 들여오는 때로부터 마지막 출하작업까지, 그리고 출하한 후에는 일정한 기간 오리 사육장 소독도 철저히 해야 하고 밑바닥에 깔린 톱밥을 걷어내고 새 톱밥이나 볏겨를 깔아 주는 등 할 일이 정말 많다고 해요. 그리고 오리가 자랄 때에도 밤을 밝혀 가면서 교대로 사육장을 돌아봐야 한다는데요. 오리는 한 번 넘어지면 건드려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밟혀서 죽을 수도 있대요. 그래서 혹시라도 넘어진 오리가 있으면 일일이 건드려서 일으켜주어야 한답니다. 물론 사료나 물은 자동으로 주도록 설비가 돼있고 통풍도 잘 해 주어야 하고 온도나 습도도 유지해 주어야 하는 등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해요.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마다 그 긴장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합니다.

김인선: 맞아요. 조류독감, A.I 때문에 오리 농가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최근 전라남도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 있었는데요. 그때문에 오리 사육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허 철 씨가 운영하는 오리 농가는 어떤가요?

마순희: 다행히 조류독감은 오지 않았는데요. 아무래도 오리 농장 사업에 타격이 없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오리뿐 아니라 흑염소 같은 것도 몇 마리씩 키우면서 점차 마리수를 늘여가면서 경험을 쌓아가기도 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오리만 전문으로 하지 않고 다른 품종도 함께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닥칠 수도 있는 피해를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에 넘친 모습이었습니다. 오리 농장의 주인 허 철 씨의 새로운 비약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오리를 키워 온지 올해로 5년 째 된 허 철 씨. 묵묵히 버텨 온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기에 어느덧 3만 마리의 오리를 키우는 농장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소탄 오리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허 철(가명)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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