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간호조무사 박지윤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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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간호조무사 박지윤 씨(1)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우산을 쓰고 보호구 착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 항상 건강을 잘 챙겨야겠지만 올 봄엔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코로나비루스 4차 대유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다가 환절기 감기도 주요 증상이 발열이라 요즘 같은 시기엔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게 최고죠.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해마다 봄철이면 일교차가 심하다보니 감기가 유행하기 쉽고 또 꽃가루나 먼지 등으로 몸에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알레르기질환 등 여러 가지 병들도 많이 발생하거든요. 특히 금년 봄에는 코로나비루스 신규확진자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 방역과 건강관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건강을 위협받는 요즘, 보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은데요. 지난 4 7일이 세계 보건의 날이었어요. 보건의 날은 국민 보건의식을 향상시키고 보건의료와 복지 분야의 종사자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인데요. 한국에선 보건의 날부터 1주간을 건강주간으로 하고 매년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올해 행사들은 대폭 축소됐는데요. 고마운 마음이라도 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도 현장에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보건인들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탈북민 중에도 보건인력들이 많죠?

 

마순희: , 맞습니다. 병자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돌보는 간병인이나 자격요건을 갖추고 좀 더 전문적으로 노인이나 중증환자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그리고 의료활동이나 지원까지 가능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까지 탈북민 중에도 보건인력들이 꽤 있습니다. 탈북민 보건 인력 중에는 저를 포함해 50대 이상의 여성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많은데요. 교육기간이 길지 않고 큰 어려움 없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서 연령대가 높은 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가 도입되면서 간병인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간호조무사에 도전하는 탈북여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가족이 개인의 돈을 들여 간병인을 고용하는 등 환자를 돌봐야 하는 부담을 줄이는 대신 간호사가 중심이 돼 간병과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요. 이 서비스가 활성화 되면서 간호사를 도울 수 있는 간호조무사의 인력배치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주인공도 간호조무사인데요. 한국정착 13년 차인데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경력이 11년이 되는 박지윤 씨입니다.

 

김인선: 간병인은 별도의 자격증 없이도 할 수 있지만 요양보호사는 자격면허를 취득해야 할 수 있는데요.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요양보호사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치료와 보호, 돌봄을 할 수 있어서 간병인보다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이 2011년부터 도입됐기 때문에 2010년도까지는 교육받고 조금만 노력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서 당시 많은 탈북민들이 요양보호사를 직업으로 택했는데요. 박지윤 씨는 어떻게 간호조무사를 택했을까요?

 

마순희: 박지윤 씨에겐 굉장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지윤 씨가 한국에 나온 후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신세를 자주 졌고 그때마다 간호조무사를 접하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니까요. 몸이 아프게 된 얘기를 하자면 우선 지윤 씨의 탈북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요. 지윤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의 한 바닷가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국태생으로 친척들이 모두 중국에 있어서 지윤 씨는 자라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친구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무작정 향한 중국행 길에서 지나가던 차량에 도움을 청했는데 운전기사가 북한사람들이 있다고 신고를 한 탓에 친척도 만나지 못하고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잡혀나가게 되었습니다.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처음으로 감행한 탈북시도였기에 큰 고문을 받지는 않았고 지윤 씨는 다시 탈북했습니다. 이번엔 친척을 만나 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공안에 잡혔고 2005년에 두 번째 북송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번엔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지윤 씨는 돈을 벌겠다고 중국으로 갔던 일에 잠시나마 죄책감이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수용소를 나가면 반드시 다시 탈북하리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생활이 끝나고 몇 개월 몸을 추세우다가 2007년에 재차 탈북하게 되었고 한국에 먼저 가 계신 고모님의 주선으로 한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수용소에서 고문에 망가진 몸에 험난한 한국행을 하면서 건강은 더 나빠졌고 한국 입국 후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받으며 지내는 동안 환자들을 보살피는 간병인이나 간호조무사들의 모습을 보게 됐고 지윤 씨는나도 저런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박지윤 씨는 건강을 회복하면서 하고 싶은 일까지 찾았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지윤 씨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원하는 직업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지윤 씨의 한국행을 주선했던 고모님은 한국에 돈 벌려 나오셨었는데 고령이신데다 건강도 안 좋으셔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셨기에 지윤 씨는 혼자서 한국정착을 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취업도 하고 한국에 잘 정착해야 한다는 각오가 남달랐던 지윤 씨였기에 건강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연결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고, 또 가까이에 있는 간병인 분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하면서 지윤 씨는 교육기간도 짧고 실습기간도 길지 않은 간호조무사는 자신도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호조무사는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남녀 구분 없이 지원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경우에도 지원이 가능합니다. 지윤 씨의 경우에도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했기에 지원 가능했습니다. 지윤 씨는 몸이 회복 되는대로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김인선: 남한에선 직업을 구하는 구직자나 저임금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나라에서 지원하는 교육과정이 있어요. 간호조무사 교육부터 컴퓨터 교육까지 다양한데요. 무료부터 50%본인 부담 등 대상자에 따라 달라지는데, 탈북민은 100% 전액 국가가 지원해 주거든요. 박지윤 씨도 이런 혜택으로 교육을 받았겠죠?

 

마순희: 지금은 말씀하신 대로 탈북민의 경우 100% 지원이 가능한 교육이 많은데요. 지윤 씨가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한 2010년에는 그런 교육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컴퓨터 학원은 국비지원이 됐지만 간호조무사학원은 국비지원이 안 됐기에 지윤 씨는 학원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낮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이면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에서 시간당 급여를 받는 부업을 해 학원비를 보탰습니다. 지윤 씨는 전액 지원의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간호조무사 교육도 전액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2014년부터 '탈북민 치과 간호조무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을 만큼 간호조무사 교육의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김인선: 간병인과 요양보호사의 차이처럼 간호사는 4년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가능하지만 간호조무사는 학원에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결코 쉽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끝까지 공부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텐데요. 박지윤 씨는 어땠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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