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간호사 김명희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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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인천시 동구 인천의료원 음압치료 병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모습.
사진은 인천시 동구 인천의료원 음압치료 병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간호사 김명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명희 씨는 서울에 있는 한 의료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입니다. 2001년 24살의 나이에 한국에 왔는데요. 명희 씨의 할아버지의 친구가 한국에 계셔서 한국으로 오는데, 그리고 한국에서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명희 씨의 양할아버지신데요. 명희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에서 지낼 때부터 양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참고서적들을 밑천삼아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순희: 네. 양할아버지의 존재는 명희 씨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양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의사였던 명희 씨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명희 씨에게 간호학을 추천했는데요. 명희 씨 역시 어려서부터 의사로 근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의료인을 꿈꿨기에 양할아버지의 추천 대로 간호대학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명희 씨는 간호학을 선택했지만 북쪽에서 의료계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북한에선 의대나 의전에서 전문 의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6개월 정도의 간호원 양성소를 졸업하면 간호원이 될 수 있지만 남한에선 4년 동안 전문 과정을 공부하고 국가고시를 거쳐 면허증을 취득해야 간호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영어가 대부분인 의학용어도 어렵고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학업구조, 국가고시까지 탈북민이 남한에서 간호사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남북의 용어 차이도 있고, 모르는 용어가 많을수록 이해도 안 되니까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할 거예요.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학업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도 몇 배로 늘어나게 되고 그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탈북 대학생 중에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꽤 많은데요. 1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공부해도 쉽지 않다며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명희 씨의 경우엔 간호학 공부를 중간부터 시작했다던데, 이게 무슨 말이죠?

마순희: 명희 씨는 북한에서 경공업 대학을 졸업했기에 대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거든요. 의학계열 공부는 처음이었기에 1학년부터 시작하면 좀 더 수월했겠지만 명희 씨는 한국에서 4-5년이라는 시간을 대학에서 보낸다는 것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입이 더 어렵잖아요? 남한 토박이들이 힘들게 학원을 다니고 대학입학 시험, 수학능력 평가를 봐도 좋은 대학에 가기가 쉽지 않지만 탈북민의 경우에는 만 35세까지는 정부 등록금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고 탈북민 특별전형도 있기 때문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게 훨씬 유리합니다. 하지만 명희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명희 씨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나이로 25살이었거든요. 그때부터 4년을 공부하고 실습까지 하면 30살 전에는 간호사로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1학년부터 체계적으로 배우면 좋긴 하겠지만 하루 빨리 배워서 근무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했던 명희 씨는 편입을 하면 간호사가 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인선: 예전에는 맘먹고 도전하면 원하는 학교, 학과로의 편입이 가능했는데, 요즘엔 편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들 해요. 경쟁도 치열하고 그만큼 해야 할 공부도 많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명희 씨가 편입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영어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던지라 영어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생활할 때부터 양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참고서적을 탐독하면서 영어는 무작정 한글로 쓰면서 외우는 방법으로 대학입학준비를 했다는데요. 그런 명희 씨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하나원 선생님들도 필요한 서적을 챙겨주고 입시상담도 해주면서 도움을 줬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편입 경쟁률은 예측도 불가능하고 학교마다 다른데요. 명희 씨의 경우 기독교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연세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연세대학교는 남한에서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곳이잖아요? 당시 8명을 선발하는데 1000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시험을 거쳐 400명 넘는 인원이 선발되고 최종 면접시험을 통해 8명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는데 명희 씨는 그 과정을 당당히 거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김인선: 편입 시험을 통해 1000명 중 400명 안에 든 것도 대단하지만 면접시험을 통과한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시험성적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면접관이 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합격을 결정하거든요. 그래서 남한에는 면접 대비 학원도 많이 있어요.

마순희: 그렇더라고요. 인재를 뽑는 곳마다 마지막 관문에서 가치관이나 창의력, 개성, 잠재적 역량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 면접을 치르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거나 모의 면접을 통해 대비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명희 씨는 당황하지 않고 대처를 잘 한 것 같습니다. 면접시험을 어떻게 보는지도 몰랐기에 대학의 학장님, 교무부장님 등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 자신만의 특기를 살려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조언을 받게 된 명희 씨는 자신의 특기인 러시아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러시아어로 노래도 불렀습니다. 면접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눈물겨운 명희 씨의 노력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명희 씨는 최종 8명에 포함됐습니다.

김인선: 명희 씨가 합격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남쪽에서 원하는 대학인재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합격의 좁은 문을 통과한 명희 씨 앞에 또 다른 관문이 있죠? 3학년이면 실습수업도 많거든요. 지난 주, 실습수업과 이론수업을 병행하는 간호학 공부가 버거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탈북학생이 많다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3학년에 편입하다 보니 명희 씨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늘 성적은 그 자리 걸음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명희 씨는 좌절하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더 했습니다. 영어의 경우 영어발음을 한글로 표기해서 무조건 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다른 과목들은 참고서적들과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배워 나갔습니다. 책벌레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공부에만 열중했는데요. 명희 씨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에서 탈북학생들에게 등록금도 지원해 주고 매월 생활비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남한 친구들 중에는 학업과 부업을 병행하면서 대학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신은 오직 공부만 할 수 있으니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나이가 어린 동기생들이나 심지어는 대학교 학장님 사무실에 찾아가서라도 문제를 해결했을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성적도 점점 오르고 자신감도 함께 올랐고 명희 씨는 편입 후 2년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아무리 그래도 남한 친구들 틈에서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명희 씨 2년 만에 졸업했다는 것에 박수를 쳐드리고 싶네요. 그런데 문제는 대학교 합격이 마지막 관문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겁니다. 다음 관문인 취업이 더 만만치 않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대학공부보다 더 힘든 관문인 취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희 씨의 경우 기독교인이자 의료인이셨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길은 기독교 계통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취업에 도전했습니다. 더러는 합격하기도 하고 더러는 면접시험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명희 씨는 불합격을 해도 절망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요. 대학 교수님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명희 씨는 바라던 연세의료원에 취직하게 됐습니다. 명희 씨는 솔직함과 성실함으로 신뢰를 쌓았고 2015년에는 10년 장기근속자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5년 차가 된 지금은 책임간호사로서 자신 앞에 맡겨진 업무를 원만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병원 내에서 명희 씨에 대한 평판이 좋아서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김인선: 명희 씨의 삶은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을 하니까 작은 성취를 느끼게 되고 그 작은 성취들이 모여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됐으니까요.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일, 오늘부터 습관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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