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향을 잡아라! 당당히 홀로선 김인화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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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_embassy_cn-620.jpg 중국 공안이 주(駐) 중 북한대사관 정문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충청남도 천안에 거주 중인 김인화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올해 나이 64살이지만 여전히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분이고 혼자 몸으로 꿋꿋이 한국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 분인데요.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돈 벌겠다는 생각에 중국으로 향하지만 대부분의 탈북 여성이 중국에 도착하면 나이가 많은 중국남자나 장애가 있는 분 혹은 산 속 깊은 곳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는 것처럼 인화 씨도 마찬가지였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1998년에 인화 씨와 함께 그저 돈을 벌러 중국으로 향했던 친구들까지 어디론가 팔려가는 신세가 됐습니다. 브로커는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인화 씨를 조선족이 아닌 한족에게 넘겼습니다. 원치 않는 남편을 맞고 인화 씨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습니다. 농사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마음의 고통이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한족 동네에선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인화 씨는 굶고 있을 식구들 생각에 자꾸만 목이 메었습니다. 추운 날씨가 돼도 그곳에선 걱정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솜옷이나 솜 신발을 신을 수 있었으니까요. 몸이 편할수록 생각이 더 많아지고 가족들 생각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져 인화 씨는 쉬지 않고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김인선: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내신 거죠. 그 정도 시간이면 중국생활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을 텐데 인화 씨는 낯선 한국행을 결심했죠?

 

마순희: . 인화 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중국공안의 탈북민 색출을 위한 시도 때도 없는 수색 때문이었습니다. 내년엔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냈지만 시간이 지나도 중국에서 탈북민의 신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인화 씨는 결단을 내렸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 역시 인화 씨가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북한으로 잡혀 나가는 것보다는 한국에 가는 것이 낫겠다며 찬성했다고 합니다. 탈북 여성을 돈으로 보고 일손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인화 씨의 한족 남편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2010년에 한국에 도착한 인화 씨는 정착을 하면서 북한 가족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보니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는 탈북민이 많았기 때문에 인화 씨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돈을 떼이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어렵사리 아들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뿐, 12년이 넘는 긴 세월로 모자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아들은 도청이 두렵다며 매번 짧은 통화로 마무리 지었다는데요. 그마저 안부를 묻기보다 돈 얘기가 먼저였다고 합니다. 

 

김인선: 인화 씨는 자식들 생각에 마음 고생하면서 지냈지만 자녀들은 그걸 알 리 없겠죠. 떨어져 지낸 기간도 길고, 엄마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함께 하지 못했으니까 어색함과 서운함이 더 크기도 했을 테고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으로는 섭섭했을 것 같은데 인화 씨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까요?

 

마순희: . 인화 씨는 아들이 자신의 애끓는 마음과 정성을 모르는 것 같은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글타글 모은 돈을 보내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더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날은 인화 씨의 마음이 더 괴로웠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쉬지 않고 일하며 돈을 모아 보냈지만 상황은 늘 같았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의 상처가 점점 깊어졌습니다. 비단 인화 씨 뿐만 아니라 우리 탈북민들 대부분이 두고 온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 속 깊이 치유되지 못 하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잊어 보려고 자기 몸을 혹사하며 일에만 몰두하면서 그 생각을 지우려 애를 쓰는 사람도 있고 혹은 술로 괴로움을 달래는 경우도 있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북한과 연결하고 도움을 주거나 가족을 데려오기도 합니다. 인화 씨도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의 가족이 인화 씨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돈 뿐이었습니다. 인화 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결국 일상생활에 의욕이 없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우울증도 말을 한다고 해요. 자기 안에서 내는 소리들이라는 거죠. 왜 화가 나는지, 왜 슬픈지,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지 가만히 들어보면 원인을 알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는데요. 인화 씨가 그 과정들을 잘 견뎌낸 것 같은데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인화 씨는 북한에 돈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용직을 하는 것에도 만족했는데요. 제대로 된 직장에서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화 씨는 유리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고 회사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온갖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회사생활이었기에 쉽지는 않았습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제품 만드는 작업도 서툴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화 씨는 주저하지 않았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했더니 동료들이 인화 씨를 모두 좋아했고 서툴러도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다 보니 업무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까 단순 작업에서 생산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 검사를 하는 위치가 됐습니다. 그만 하면 자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잘 정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인화 씨가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탈북민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하나센터의 탈북민 전문상담사 덕분이었습니다. 상담사는 혼자였던 인화 씨에게 미더운 선생님이자 허물없는 친구이기도 했다는데요. 몸이 아플 때면 함께 병원에 가주고 수속도 대신 처리해 주고 입맛을 잃은 자신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 주면서 용기를 주던 상담사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 한다고 합니다.

 

김인선: 누군가 내밀어준 손, 따뜻하게 건네 준 말 한마디가 삶의 고비에선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아요. 그 힘이 얼마나 큰 지 직접 겪어본 인화 씨인데요. 이제는 다른 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면서요?  

 

마순희: , 맞습니다. 인화 씨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착이 된 지금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후배들을 위해 서로 돕고 나누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서 보람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새로 정착하는 후배들이 고맙다고,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고 고마워할 때마다 인화 씨는 자신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하면서, 나도 처음 정착할 때에는 나약한 마음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하면서 진심을 다해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준다고 합니다. 인화 씨는 지금, 혼자 살고 있지만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도움만을 원하는 아들에 대한 마음도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면서, 언제까지나 도움만 줄 수도 없었기에 원할 때마다 돈을 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김인화 씨는 회사 일을 그만 둬야 하는 연령인 61살이 되던 해에 유리제품 제조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했지만 가까이에 양파농장이 있어서 양파 수확이나 가공 등 1년 사계절 일할 수 있어서 퇴직 후에도 변함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나 일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인화 씨가 지금처럼 늘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김인선: 살다 보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참 많더라고요. 하지만 김인화 씨를 통해 마음가짐을 바꾸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것을 배웁니다. 마음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을 해주는 인화 씨인데요. 여러분의 마음 방향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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