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한 짠돌이, 임성민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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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위해 외출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위해 외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어요.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말로도 쓰이는데요. 사람 생김새나 성격이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난주 서산에서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김선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오늘은 김선희 씨를 꼭 닮았다는 아들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마순희: 네. 오늘의 주인공 임성민 씨는 어머니인 김선희 씨를 꼭 닮은,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겉모습 뿐 아니라 한국 정착하는 과정도 역시 어머니를 꼭 닮아서 열심히 살고,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정까지도 판박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올해 나이 34살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주간에 일할 때도 있고 야간에 일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찾아 갔을 때는 밤에 일을 하고 자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중한 잠을 깨운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먼 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차를 가지고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임성민 씨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청년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은데요. 몸은 힘들지 않은지, 또 회사생활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민 씨는 어떤지 물었더니 처음부터 문제없이 잘 지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북한 사람이라고 공개하고 한 발 양보하고 서로 좋게 지내면 나쁜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면서 내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관계가 결정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제가 취재하면서 만나 본 탈북청년 중에는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경우도 있고 심리적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임성민 씨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은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민 씨가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사상적인 이념을 첫 자리에 놓는 평범한 청년으로 고등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했습니다. 7년 군 복무하던 중 어머니가 탈북해서 한국에 가셨다는 소식을 친척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요. 만기까지 군복무를 하고 제대되면 그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니며 자신의 앞길을 막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척을 통해서 뒷사업을 좀 한 거죠. 고이기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김인선: 뇌물 말하는 건가요?) 네. 그래서 뒷돈을 쓰고 성민 씨는 한국에서는 의가사제대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감정제대라고 해요.

그래서 감정제대를 했는데요. 어머니와 연락하면서 한국에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사회주의는 어머니 혼자 배반하는 것으로 끝내라고 자신은 끝까지 남아서 사회주의를 지킨다고 할 정도로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념이 투철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정제대 후 1년을 지내면서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게 됐고 뒤늦게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외아들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도 탈북의 계기가 됐고요. 그래서 2011년 한국에 왔습니다. 어머니를 만난 기쁨도 잠시, 한국에 와서 먼저 적응한 어머니와 사사건건 부딪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탈북 가정에선 그런 상황들이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아요. 정착을 먼저 한 엄마가 자녀를 데려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브로커 비용을 대고 한국으로 오게 하지만 자녀들과 문제가 꼭 생기더라고요.

마순희: 네,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미움과 원망이 생겼을 수도 있고요. 정착과정을 놓고 의견이 다를 수도 있어서 그럴 겁니다. 임성민 씨와 그의 어머니 김선희 씨의 경우 8년 만에 한국에서 만났습니다. 탈북민 초기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기간 중에 가족의 면회를 허가해주는데요. 선희 씨는 아들 성민 씨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들 속에서 유독 왜소하고 볼품없이 구석에 있었기 때문인데요. 성민 씨가 먼저 선희 씨를 알아보고 달려왔었다고 합니다. 성민 씨는 처음 하나원을 나와서 식당에서 일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군인생활로 단련된 체력이라 이만한 것도 못 이겨내겠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됐습니다. 몸 상태가 성민 씨를 가장 힘들게 했는데요. 아침이면 코피를 쏟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몰래 병원에 갔더니 영양실조라고 하더랍니다.

하루 세끼 어머니가 해주는 쌀밥에 고기반찬을 비롯해서 맛있는 밥상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영양실조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데요. 그동안 북한에서의 어려운 생활과 탈북과정에서의 힘든 상황들로 몸이 망가졌는데 회복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식당을 그만두고 건강관리에 전념했는데요. 어머니가 몸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구해다가 정성 들여 보양식을 만들었고 성민 씨는 그 보양식을 억지로라도 먹었다고 합니다. 또 매일 새벽이면 동네 길을 달리면서 기초체력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어머니의 정성과 임성민 씨의 노력으로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마음도 점차 안정되어 갔습니다. 몸과 마음이 안정된 후에 성민 씨는 지금의 회사인 승용차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노력도 깃들어 있는 새 승용차들이 생산되어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도 컸다고 하는데요.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성민 씨를 기쁘게 하는 것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봉투였다고 합니다.

김인선: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이 월급날이라고 하잖아요. 임성민 씨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참, 남한에선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을 위해 선물을 해드리는 문화가 있잖아요?

마순희: 네. 성민 씨도 그 문화를 따랐다고 합니다. 840달러(100만원)가 훨씬 넘는 첫 월급을 받은 날, 식구들을 위해서 한 턱 쏜다고 제일 좋은 식당에 예약을 했습니다. 외할아버지, 외삼촌을 비롯해서 여러 식구들을 모두 초청해서 식당에 갔는데 스테이크라고 하는 소고기는 채 익지 않아서 피가 벌겋게 나오고 생풀을 썰어 놓은 샐러드까지. 성민 씨는 난생 처음 보는 요리 앞에서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직행으로 온 청년에게는 너무나도 이색적인 요리였던 겁니다.

먹지도 못 한 그 요리가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지, 그 이후부터 임성민 씨는 아예 식당 외식이라고 하면 두 손 들 정도로 마다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내 집 밥이 맛도 있고 돈도 절약하는 일석이조인 셈이라며 그 이후부터 임성민 씨는 외식도 안 하고 알뜰하게 한 푼, 두 푼을 모았습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마련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어머니에게 1원도 안 주고 저축을 하는 모습에 짠돌이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깍쟁이라는 소리죠. 그런데 그 짠돌이 임성민 씨가 열심히 모은 돈으로 어머니에게 새 차를 선물했는데요. 낡은 차를 몰고 일하러 다니시고 봉사활동도 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김인선: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일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남한의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는 있지만 올해 34살이면 이제 슬슬 결혼을 생각할 나이예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서 임성민 씨가 금년 4월에 같은 북한 출신의 동갑내기 아가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가장 큰 효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5월, 가정의 달에 어머니와 아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어서 저도 너무 기쁘네요. 열심히 벌어서 아끼고 모은 돈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는 것이 꿈이라는 임성민 씨입니다. 바라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길, 신혼 재미를 마음껏 느끼고 앞날이 늘 오늘처럼 행복하기를 빌어봅니다.

김인선: 제가 임성민 씨 나이였을 때는요. 아끼고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임성민 씨 얘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집니다. 저도 성민 씨처럼 꿈이 있는 짠돌이 한 번 돼 봐야겠네요.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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