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열정, 신원농장 이향란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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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신매리의 배추밭에서 농민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강원 춘천시 신매리의 배추밭에서 농민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깨어있다는 것은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고요. 열정적이라는 것은 가슴이 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누구나 열정적으로 시작하지만 열정을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어야 발전을 하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8년된 이향란 씨는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간절함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자신이 번 돈 모두를 고스란히 봉사활동 비용으로 사용하며 헌신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향란 씨의 이런 열정 덕분에 지역주민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고 하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이향란 씨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탈북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기탁했고 2016년부터 김해에 위치한 장유 은혜요양병원과 협력해서 탈북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한 봉사활동도 시작했습니다. 2017년에는 추석 때 남편과 함께 1년 내내 땀 흘려 농사지은 햅쌀 수백 킬로그램을 진해 지역 탈북민 수십 가구에 전달했고 추석 당일에는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인 외로운 탈북어르신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해마다 직접 키운 무와 배추를 요양병원에 보내기도 하고 김치를 담가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 집에 나누어 드리기도 한답 니다. 이제 향란 씨의 삶에서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한 남편과 무탈하게 지내는 게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요? 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마순희: 그럼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짬 시간을 내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이 바로 이향란 씨입니다. 향란 씨의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인데요. 남편도 알고 보니 대단한 분이더라고요. 향란 씨가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자금과 물자가 필요했는데 그런 부분들을 지역의 재력가인 남편이 많이 도와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이 맺어진 거였습니다. 남편은 북한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남북교류가 이루어질 때에는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쌀들을 북한에 보내기도 하던 분이었기에 탈북민들에게도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습니다. 관심이 많은 만큼 도움도 많이 주다보니 향란 씨와 부부로 맺어지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향란 씨는 남편의 든든한 지원으로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는데요. 가정생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80이 넘으신 시어머님과도 고부 갈등 없이 잘 지내고요. 고향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자식을 생각하며 남편의 아들도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며느리도 봤는데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며느리라고 말하는 향란 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2017년부터는 남편과 함께 함안에 효도농장과 탈북민을 위한 쉼터를 꾸리고 있는데요. 농사일에 관심을 보이는 탈북민들이 각지에서 찾아오기 때문에 쉼터를 생각해 낸 거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향란 씨는 해마다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의 함안 지역에서 이웃돕기에 모범이라고 소문난 남편이 향란 씨의 사업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김인선: 부부는 닮는다더니 남편도 말리지 않고 적극 지원하고 있었군요. 그런데 요즘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죠?

마순희: 아, 태도가 달라졌다고 보기는 그렇지만 그전처럼 향란 씨 말이라면 무조건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답니다. 향란 씨가 무리할까봐 건강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인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향란 씨였지만 알고 보니 큰 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2016년에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데요. 파킨슨병은 떨림이나 근육의 강직 그리고 몸동작이 느려지는 등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는 만성진행성 퇴행성 질환이라고 하더군요. 이 파킨슨병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증상들이 심해질 수도 있는데 다행히 향란 씨는 증상을 초기에 발견해서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말이죠. 그래도 남편은 향란 씨가 걱정인데요. 아무리 일이나 봉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건강에 비길 수는 없다면서 향란 씨가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해 주고 더 많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향란 씨는 절대로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면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부부가 항상 사랑싸움을 하게 되는 거죠.

김인선: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현대 의학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증상을 늦출 수 있을 뿐 아직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마순희: 네. 하지만 향란 씨의 경우 워낙 초기에 발견해서인지 지금의 건강상태는 아주 양호해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상적으로 약은 복용하고 있는데요. 시누이가 외국에 많이 다니면서 그 병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준다고 하네요.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는 했지만 향란 씨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남을 도와주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했고, 지금도 자신의 강점은 남을 도와주는 봉사정신인 것 같다면서 밝게 웃더군요. 축제 때마다 금강산예술단의 공연을 통해서 북한문화를 알리는데요. 해마다 진해에서 제일 먼저 벚꽃 축제를 하잖아요? 향란 씨는 그때마다 지역의 자율방범대 활동으로 정복을 입고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봉사도 하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참 멋지더라고요.

김인선: 제복을 입고 멋진 향란 씨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올해 나이 57살, 하지만 이향란 씨의 열정 나이는 2,30대 청년쯤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향란 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탈북 후배들이 귀감을 얻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아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 향란 씨는 탈북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돈만 따라가지 말고 양심껏 성실하게 살라고, 통일된 후 북한의 가족이나 지인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있도록 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남한에서 살고 있는 우리 탈북민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고 또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내가 선 자리에서 나는 탈북민을 대표한다는 마음, 두고 온 고향과 식구들 앞에 떳떳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향란 씨는 척추디스크도 있고 파킨슨병 진단도 받고, 몸이 그리 건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일손을 놓으면 오히려 병이 더 날 것 같다면서 오늘도 손에서 일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남한사회에서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도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들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3만평의 논농사와 배추와 무, 고추, 깨, 마늘 등 여러 가지 농사일을 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발 벗고 나서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탈북민들의 귀감이 되어 지역사회에 당당히 자리 잡아 나가고 있는 이향란 대표님, 늘 응원합니다.

김인선: 삶은 경험이라고 합니다. 경험이 삶을 만들고 자신을 만드니까요.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경험, 땀과 눈물을 흘려본 경험, 꿈을 이뤄본 경험, 봉사의 경험. 그 좋은 경험들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래서 이향란 씨의 삶이 열정적이지 않나 싶은데요.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그 경험을 후배들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에서 인사드릴게요.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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