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 직장인 정미자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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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직장인들이 서울 광화문네거리를 지나고 있다.
출근길 직장인들이 서울 광화문네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평범한 직장인 정미자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남편에게 12년 만에 연락이 왔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미자 씨에게 약만 받아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미자 씨는 거절했죠.

 

마순희: 위험했으니까요. 그래도 남편이 애들이 너무 보고 싶으니 애들과 한번만 왔다 가라고 해서 미자 씨는 결국 중국행을 결심했는데요. 막상 가보니 남편은 중국이 아닌 한국에 가 있었습니다. 결국 약 가지러 떠났던 길은 한국행으로 이어지게 됐는데요. 함께 했던 탈북 일행들과 북경의 한국 국제학교에 진입했고 영사관에서 1년 정도를 지낸 후에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13년 만에 만난 남편은 정신적으로 많은 위로가 됐고 두 자녀에 대한 교육문제도 함께 공유했습니다. 두 자녀를 탈북민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로 보내지 않고 일반 학교에 보는 걸로 말이죠.

 

김인선: 맞아요. 그래서 제가 두 자녀가 몸과 마음이 성숙해지는 사춘기 시절에 한국에 왔기 때문에 일반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힘들어 하진 않았을까 염려된다고 했었잖아요.

 

마순희: 네. 하지만 미자 씨의 두 자녀는 별 문제 없이 무탈하게 자랐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탈북민들은 사춘기라는 걸 잘 몰라요. 사실 저도 한국에 와서 사춘기라는 말을 알았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제 나이 또래의 거의 모든 북한사람들이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감정의 변화가 급변하는 시기를 10대엔 사춘기, 노년엔 갱년기 이렇게 말하던데 저희들은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미자 씨의 두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빠 없이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고 한국까지 오는 어려운 길을 함께 하면서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앞섰지, 사춘기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한국에 와서도 일반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도 따라가야 하고 학교생활도 익히면서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와 갈등을 겪거나 방황하지 않고 늘 건강이 안 좋은 엄마부터 걱정하는 효심이 가득한 자녀들이었습니다. 아빠 엄마의 사정을 잘 알기에 학원 한 곳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했는데 그러면서도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했다고 하더군요.

 

김인선: 아이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주니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마순희: 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게 살자는 것이 미자 씨 가족의 서로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하는데요. 애들을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얼마 안 되어 미자 씨는 지인의 소개로 인터넷으로 물건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가전제품부터 의류와 신발, 생활용품을 인터넷 상에서 판매하는 회사인데요. 판매도 많이 하지만 그에 따라 반품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미자 씨는 반품된 제품들을 처리하는 공정을 담당했는데요. 처음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해로 14년 장기근속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사회 물정을 몰라서 장기근속하기에 유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가볍게 웃어넘겼습니다. 입사 초기 급여가 월 80만원, 660달러였다고 하는데요. 미자 씨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받고 일하는지 관심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최소 820달러, 100만 원 정도는 받고 싶어서 급여가 적다는 이유로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미자 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직행으로 오다보니 배치 받은 직장에서 무조건 일해야 하는 북한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 한 거죠. 미자 씨는 그런 사고방식도 장기근속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더구나 이 회사에 함께 입사한 탈북민 여성이 있어 서로 의지해 가면서 회사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취업 초반,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직장을 골라가면서 일할 정도로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는데 특별한 기술도 없는 자기에게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돈보다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지내다보니 결과도 좋았습니다. 처음 2년은 계약직으로 근무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으니까 말이죠. 이제는 급여도 많이 올라가서 이보다 더 좋은 일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인선: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처음 들어간 회사 생활이라고 하더라고요. 회사를 자주 옮기는 탈북민 중에 동료와의 관계가 문제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미자 씨는 동료와의 사이도 좋았던 건가요?

 

마순희: 네. 직장 내 동료들과의 관계도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북한과 다른 직장생활로 남한 동료들 사이에서 거리감도 느꼈다고 하는데요. 한 번은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엄청난 분량의 반품이 도착했답니다. 그날 중으로 처리해야 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각자가 맡은 일들을 끝내고 퇴근시간이 되자 모두 퇴근을 했다는 겁니다. 크게 미안해하지 않고 퇴근하는 모습에 미자 씨는 북한의 집단주의에 기초한 직장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미자 씨도 곧 동료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각자가 맡은 업무가 서로 다른데 다른 사람 업무를 함께 하다보면 책임성 문제도 따르고 해서 남의 일을 선뜻 돕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자 씨는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라고 하는데요.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주어진 일을 해내면서 14년 장기근속을 하다 보니 동료들 사이에서, 또 임원진 사이에서 신뢰가 쌓였습니다.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한 임원이 ‘여사님들은 우리와 같이 끝까지 갑시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그 한마디 말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평가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 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로임이 얼마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또 로임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자 씨처럼 처음에는 적은 금액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 하고 성심을 다 해서 근무한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보답, 즉 급여나 보상은 따라 오니까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혹은 로임만 보면서 자주 직장을 옮기면 근속연한도 길어질 수 없고 신뢰도 쌓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장기근속을 하면서 기술도 익히고 힘든 경험조차도 경력으로 차곡차곡 쌓아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실지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도 많이 실감하고 있거든요.

 

김인선: 위대한 인생도 결국엔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행복한 인생은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해요. 지금의 미자 씨처럼 말이죠. 아이들은 부모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는데요. 미자 씨를 보면 두 자녀 역시 멋지게 성장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미자 씨의 두 자녀는 정말 멋지게 성장했습니다. 큰 녀석은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해외연수를 나가 있고요. 작은 녀석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우리 지역에서 제일 큰 이대목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딸이 엄마 아빠의 건강을 늘 염려하면서 몸을 봐 가면서 일하시라고 요구도 하고 건강 약품들을 챙겨주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미자 씨는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고 하면서 오히려 일손을 놓으면 몸이 아플 것 같다고 합니다.

 

일하면 일한 만큼 보수가 따르는 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노후에도 나라에 손 내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하는 미자 씨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루하루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웃으며 이야기 하던 미자 씨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어쩌면 그 말은 저에게도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뜻 깊은 메아리로 울릴 것 같습니다. 무심히 흘려보냈던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대단한 노력의 결과인지,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이 됐기를 바래봅니다.

 

김인선: 정미자 씨의 삶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기본과 중심을 지키며 살았기에 특별한 하루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날이기에 감사로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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