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한 책임, 사회복지사 이서빈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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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한족 남성에게 인신매매 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탈북여성 채옥희 씨.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한족 남성에게 인신매매 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탈북여성 채옥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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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살다 보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꽝일 때도 있고요. 좋지만은 않은 선택을 했는데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이 말을 실감한 분이라면서요?

마순희: 네. 오늘의 주인공은 올해 42살의 이서빈 씨인데요. 1997년에 고향 온성을 떠나 2008년에 한국 땅을 밟았으니 이제 한국에 온지 11년이 됐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저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 즉 상황에 떠밀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서빈 씨는 달랐습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탈북도, 한국행도, 또 한국에서의 정착과정까지도 모두 그녀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순천시청에서 정규직 공무원으로 사회복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사실 선택이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 저는 선택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서빈 씨가 지금 한국에서 인기직업으로 꼽히는 사무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선택을 잘 해온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런데 서빈 씨가 공무원, 그러니까 사무원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기 전까지도 참 많은 선택을 해야 했죠. 탈북민 뿐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빈 씨의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서빈 씨에게 선택이 시작된 건 아버지의 사망 이후였다고 하더군요. 탄광마을에서 행정 간부였던 아버지가 누군가의 모략으로 하루아침에 일반 노동자가 됐고 이후 이동 작업을 가게 된 아버지가 사기꾼에게 속아 도둑으로 몰리는 억울한 일까지 겪으면서 결국 쓰러졌답니다. 아버지의 억울한 해임과 죽음을 보면서 서빈 씨의 선택하는 삶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터라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하기 위해 돈을 벌 생각을 했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던 거죠.

하지만 서빈 씨가 탈북을 선택했다 해도 이후의 중국에서의 삶은 다른 탈북여성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신매매자들의 상품에 지나지 않았던 거죠. 며칠 동안 그들의 말을 안 듣고 버텨도 봤지만 이러다가는 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국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서빈 씨는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자신을 팔아넘기면 그 돈 절반을 달라며 인신매매범들과 거래를 했던 거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 같지만 서빈 씨가 워낙 반항이 심했던 터라 그들에게도 서빈 씨는 골칫거리였나 봅니다. 서빈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서빈 씨를 식당에 팔아 넘기면서 절반가량의 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사실 말이 쉽지, 그런 상황에서 이런 결심을 하고 실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저희들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식당으로 팔려간 서빈 씨는 식당일을 하면서 중국말도 배우고 차곡차곡 자신의 돈을 모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중국 호적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김인선: 중국에서 호적을 만들었을 정도면 살기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거 아닌가요?

마순희: 맞습니다. 처음 자신을 팔아넘기는 거간꾼들에게서 받은 돈이 서빈 씨에게 종잣돈이 됐고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며 번 돈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이서빈 씨는 직접 식당 겸 숙박시설을 운영할 정도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만든 가짜 호적이라 항상 불안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 게다가 숙박시설을 운영하면서 한국으로 가는 탈북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한국에 대한 동경이 생기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안내자가 사정으로 오지 못 하는 상황이 생겼고 결국 서빈 씨가 한국으로 가는 여성들을 곤명까지 직접 데려가야 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마중 나온 브로커에게 인계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래요. 그 순간 자신도 이참에 이들과 함께 아예 한국으로 가자고 결심하면서 결국 손가방 하나 들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고 또 얼마나 서빈 씨의 머리가 복잡했을까 조금이나마 짐작이 가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선택한 한국행이라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순희: 맞아요. 오랜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했지만 정착은 쉽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해요.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말투만 보면 완전 중국 조선족이었고 사람들이 조선족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버리기가 일쑤였답니다. 말투에 대한 어려움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는데 급여는 외국인 근로자 수준으로 주는 차별이었다고 하더군요. 중국에서도 자신의 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당차게 살아왔던 서빈 씨가 그런 불공평한 일을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죠. 사장에게 조목조목 따지면서 14만원, 약 125달러를 더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때 서빈 씨의 생각은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하더라고요.

서빈 씨는 이 일로 스스로 사직서를 쓰고 다른 일을 찾게 됐다는데요.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력서를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력서에 북한의 고등중학교 이름을 쓰면 그 학교가 어디에 있냐는 물음을 받기 일쑤였고 그것이 남한에서 배움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하더군요. 서빈 씨는 일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 공부를 하게 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5년부터 순천시청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됐던 겁니다. 지난해 만났을 때만 해도 계약직 공무원 2년차로 근무 중이라고 했는데 얼마 전 정규직 공무원이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더라고요. 성공한 서빈 씨가 그렇게 장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

김인선: 서빈 씨는 똑소리 나게 필요한 순간마다 선택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선택하고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때때로 누가 나에게 정답을 좀 알려줬으면, 이렇게 해라하고 말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거든요.

마순희: 그건 저도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회였기에 우리 탈북민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선택이라고들 이야기할 정도니까요. 제 주변의 탈북민 중에는 탈북민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금방 나온 분들이 있는데요. 먼저 나온 탈북 선배가 새로 나온 후배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은 저를 보고 ‘직업도 우리더러 선택하라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라고 하소연 하면서 차라리 북한처럼 배치해 주었으면 싫든 좋든 열심히 일할 자신은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한국에 먼저 나온 선배로서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누구나 평생 일을 하면서 살기는 마찬가지인데 의무감만으로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한다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즐겁게, 더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저 역시 다시 한 번 함께 알아가기도 한답니다. 우리 서빈 씨는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인 당찬 여성인 것 같아요. 탈북, 중국에서의 직업, 또 한국에서 사회복지 공무원 하기까지 모두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것이니까요.

김인선: 인생에서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따라서 인생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 아닐까요? 아마 이서빈 씨는 자신의 방향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회복지사, 이서빈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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