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 전도사, 봉사단대표 서영희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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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탈북난민인권연합 사무실에서 인권·법률·노무 분야의 상담을 받는 탈북자의 모습.
사진은 탈북난민인권연합 사무실에서 인권·법률·노무 분야의 상담을 받는 탈북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서영희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탈북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에서는 탈북민이 남한사회에 적응할 때 생기는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종합상담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영희 씨는 이 콜센터의 상담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았습니다. 영희 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준 상담사가 바로 마순희 선생님이셨고요.

 

마순희: 저는 그냥 성심 성의껏 들어주고 공감만 했을 뿐인데 서영희 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작게나마 다른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는데요. 서영희 씨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영희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하고자 봉사활동에 뜻을 두었는데요. 직접 봉사단체를 꾸려 후배 탈북민들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북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서영희 씨입니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딸을 언니 집에 맡겨 놨는데 중국에서 6년을 보내게 됐고 2004년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정착과 동시에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지만 영희 씨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네 차례의 북송과 그 과정에서 고문으로 허리를 다쳤었는데 조금만 무리해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건강때문에 정상적인 회사 생활은 꿈도 못 꾸었지만 딸을 데려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식당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글타글 브로커 비용을 마련했지만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을만한 브로커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조급한 마음에 함부로 거래하다가 돈을 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한 길에 조카를 보낼 수 없다는 형제들의 반대도 영희 씨를 힘들게 했습니다. 영희 씨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자기 잘못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자책을 했습니다.

 

김인선: 엄마가 딸과 같이 사는 게 당연한 거긴 하지만, 본인이 겪은 험난한 과정을 딸이 겪게 될 까봐 그것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죠. 과연 무엇이 최선인가 영희 씨의 고민이 깊었겠어요.

 

마순희: 그렇죠. 그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딸과 영희 씨의 삶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영희 씨는 그렇게 마음이 가장 괴로울 때 남북하나재단의 종합상담콜센터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영희 씨의 전화를 받게 된 상담사가 바로 저였고요. 제가 현실적인 도움은 줄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이 영희 씨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이 땅에 든든히 정착하여 잘 살아야 딸을 데려오더라도 딸 앞에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줬습니다. 제 말이 힘이 됐는지 그 후 영희 씨는 딸을 빨리 데려오겠다는 마음을 잠시 접고 자신만의 삶이 아닌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의 삶에도 관심을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는데요. 지금은 지역주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영희 씨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우리 탈북민 여성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아픔이고 마음속 깊이 치유되지 않는 상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이 땅에서 잘 정착해서 헤어진 가족들을 데려오기도 하지만 영희 씨처럼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데려 못 올 때에는 북한에 돈이라도 보내주어 가족들을 돕기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뒤돌아보며 울지 말고 앞을 보며 웃으며 살자’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데요. 저도 형제들을 한국에 데려오지는 못 했지만 제 능력껏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으로 저의 사랑과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면 살수록 가족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답니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영희 씨와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누구에게나 어딘가 아픈 곳이 있죠. 남모르는 통증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니까요. 아무래도 영희 씨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다 겪어봤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를 잘 어루만져 주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영희 씨는 피붙이 하나 없는 한국에서 홀로 정착했기에 탈북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살다 보니 우리 탈북민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탈북민들의 이런 심정을 잘 알고 지역의 민간단체들과 경찰서 등에서 탈북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행사도 하고 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조직해 주는데요. 서영희 씨도 직접 참여해보면서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고 지역의 어르신들과 복지기관들을 찾아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동참하게 됐습니다. 음식솜씨가 좋은 영희 씨는 자신이 직접 맛난 반찬들을 만들어서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 드리기도 한답니다. 북한음식은 기본이고 중국과 한국에서 식당일을 한 경험도 있어서 음식솜씨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영희 씨입니다. 자신 있는 음식솜씨로 봉사하는데 이런 걸 재능기부라고 하잖아요? 서영희 씨는 자신의 능력껏 봉사하면서 몸과 마음까지 건강해졌는데요. 영희 씨의 모습은 방황하던 다른 탈북여성들에게도 큰 위안이 되면서 함께 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서영희 씨는 정착 조언 대신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다른 탈북민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거죠.

 

김인선: 마음의 상처는 기억으로도 남아있죠. 기억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파편이고 흔적일 뿐인데 언제든 다시 살아나서 사람을 흔들어 놓곤 하더라고요. 기억에 따라 다르겠지만 멀쩡하던 사람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경우도 있어요. 이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지워버리는 것'과 '뜻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데 서영희 씨는 봉사로 뜻을 찾은 것 같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서영희 씨는 봉사로 아픈 추억을 하나하나 지우며 새로운 활동으로 치유해 나갔습니다. 영희 씨가 지금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8살 때 두고 왔던 딸의 모습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그것 뿐이니까요. 가끔이지만 딸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멍하니 북쪽 하늘만 쳐다보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영희 씨는 더 분발해서 일을 찾았고 시간을 쪼개가며 일했습니다. 작년에 영희 씨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어려운 수술을 받았는데도 몸을 추스르자마자 다시 예전에 다니던 반찬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하면서도 봉사활동은 빼먹지 않는다는데요. 지역의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하면서 서영희 씨는 사회통합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사랑하는 딸을 만나게 됐을 때 열심히 살아온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에 영희 씨는 자신의 일을 착실하게 해 나가면서도 어려운 이웃들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봉사활동에도 더 성심을 다 하는 것입니다.

 

김인선: 언젠가 영희 씨의 딸도 엄마를 만나면 아마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눈을 뜨고도 못 보는 것이 있고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이 있는데요. 서영희 씨의 경우엔 딸의 얼굴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정말 공감되는 말씀인데요. 저도 눈을 뜨면 현실이지만 눈을 감으면 고향 산천이며 그리운 얼굴들이 눈앞에 삼삼하거든요. 서영희 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서른 살이 다 된 딸이지만 영희 씨의 눈엔 영원히 엄마 손에 매달리던 여덟 살짜리인 겁니다. 언젠가 서영희 씨가 사랑하는 딸을 만나 서로의 지나간 시간들을 되새겨 보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을 날이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다른 탈북민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서영희 씨를 늘 응원합니다.

 

김인선: 서영희 씨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옆, 가장 가까운 곳에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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