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방향! 음식점사장 허은미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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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 방향! 음식점사장 허은미 씨(2)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거리 일대 식당가 모습.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허은미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은미 씨는 2008, 3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땅을 밟았고 이종사촌언니가 있는 제주도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30대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학업을 선택하는 편인데 은미 씨의 선택은 조금 달랐었죠?

 

마순희: 맞습니다. 보통 30대 나이 정도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대학공부를 선택하는 동료들이 많았지만 은미 씨는 배우는 것은 차차 살아가면서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친오빠의 도움으로 운 좋게 직행으로 한국에 왔고 오빠를 도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입니다. 남한에서 특별한 자격요건 없이 일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식당이었기에 은미 씨는 부업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레자(장판) 장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던 은미 씨는 자신의 명의로 해서 음식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는 망하기 쉽다는 사촌언니의 조언도 있고, 북한에서 한국으로 직행으로 왔기에 은미 씨는 스스로가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미 씨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장기적으로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 식당에서 오래 일하지 않고 음식 종류별로 고깃집부터 칼국수집까지 다양하게 옮겨 다니며 일했고, 하는 일도 음식을 나르며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부터 음식값을 받는 식당의 카운터 보는 일까지 두루두루 경험했습니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면 노임도 올랐겠지만 짧은 근무시간과 근무기간 때문에 몇 년이 지나도록 급여의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은미 씨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자신만의 계획에 맞춰 최선을 다하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매달 받는 노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후 은미 씨는 그토록 바라던 자신의 명의로 된 식당을 차릴 수 있게 됐습니다.

 

김인선: 8년 동안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은미 씨의 최종 음식 선택은 과연 뭘까요?

 

마순희: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익숙한 음식, 바로 북한음식이었습니다. ‘결국 북한음식이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은미 씨는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만큼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식당을 어디에 차릴 것이냐에 대한 결정도 내렸는데요. 은미 씨 입장에선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올케의 권유로 제주도를 떠나 경기도의 한 지역으로 이사를 한 겁니다.

 

김인선: 음식장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맛도 있어야겠지만 서비스업이다 보니까 봉사정신도 필요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야 하는데요. 탈북민들 중에 이런 소통부분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은미 씨의 경우엔 거주지였던 제주도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까지 했으니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을 텐데 말이죠.

 

마순희: 맞습니다. 하지만 은미 씨에게는 은미 씨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내공이라고나 할까요? 직행으로 왔어도 장마당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를 경험했고 그곳에서도 살아남았던 은미 씨였기에 낯선 사람들이 더 많은 지역에 왔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은미 씨가 처음 정착한 제주도가 관광지이다 보니 다양한 고객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하는 동안 은미 씨는 음식 만드는 것뿐 아니라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도 배웠고 한국 사람들도 알아듣기 어렵다는 제주도 사투리를 접하며 동료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웠습니다. 낯선 땅에 정착하면서 반드시 겪게 된다는 언어소통의 어려움이나 일상생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며 은미 씨는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지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입니다.

 

은미 씨는 지금도 제주도 시절을 떠올리면 늘 고맙게 여겨지고 잊을 수 없는 동료 언니가 있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던 언니였는데 일하는 것으로부터 손님 상대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친동생처럼 알려 주었고 힘든 일이라도 생기면 술 한 잔 나누면서 마음속의 아픔을 달래 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은미 씨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분에게 전화연락을 해서 배운다고 하더군요. 지금 은미 씨의 식당에서는 콩고기밥, 두부밥, 농마국수를 주로 판매하고 짝태와 콩고기는 물론이고 농마국수도 얼려서 양념장과 함께 소포로 배달하는 택배서비스까지 하고 있습니다. 남한 전역에서 은미 씨의 음식 맛을 못 본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은 계속해서 은미 씨의 음식을 찾는다고 합니다.

 

김인선: 음식 솜씨도 좋고, 손님을 접대하는 서비스도 좋고, 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즐기기까지 하는 은미 씨네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내 가게를 차리겠다는 생각으로 배우면서 일하다 보면 몸은 힘들 때가 있어도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다는 허은미 씨입니다. 제주도에서 식당일을 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학원에 다니면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답니다. 식당 경험뿐 아니라 이렇게 자격증까지, 여러 가지 준비를 한 다음에 식당을 차리다 보니 은미 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은미 씨에게는 그녀만의 장점이 또 있는데요. 은미 씨가 북한에서 자본이 꽤 있어야 할 수 있는 레자를 판매했다고 했었잖아요? 처음부터 레자를 판매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소소한 쌀장사, 일용품 장사부터 시작해서 돈을 모았고 그 후에 레자장사를 하게 된 거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면서 은미 씨의 장사수완도 그만큼 발전했던 거죠. 한국에 와서도 그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하는데요. 북한음식으로만 꾸준한 매출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은미 씨는 제주생활 8년간 배우고 익힌 음식 솜씨로 한국 음식들까지 종류를 늘려 나갔습니다. 은미 씨네 식당에 가면 북한음식, 남한음식 모두 맛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코로나 시대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장사를 잘 이어 나가는 비결 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인선: 평소 음식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많이 받다 보면, 음식장사를 직접 해볼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탈북민들도 마찬가지고요. 식당을 차려서 성공하고 싶다는 탈북 후배들에게 은미 씨가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서요?

 

마순희: . 은미 씨는 식당 영업이 서비스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혹여 기분 나쁜 일들이 생겨도 참고 영업을 해야 한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손님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탈북민이 손님으로 와서 은근히 경계하기도 하고 경쟁상대로 여기면서 노골적인 표현을 하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더라도 기분 나쁘다고 함께 대응하지 말고 속으로 삭이고 웃음으로 대해주면 후에는 꼭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런 분들도 음식 맛으로 단골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지혜롭게 이겨 나가고 있는 허은미 씨처럼 정착해 나간다면 누구든지 반드시 이 땅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남북한의 음식을 한 자리에서 맛보이며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이루어 나가는 허은미 사장님 항상 파이팅입니다!

 

김인선: 조급하게 생각하고 성급하게 결정을 하다 보면 낭패를 보게 되지만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어떤 결과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패할 확률도 낮아지고요. 은미 씨의 삶을 통해 신중함, 그리고 꾸준함이 살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네요.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잘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사작성: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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