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제빵기사, 최영애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7-25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사진은 갓 구은 빵을 오븐에서 꺼내는 모습.
사진은 갓 구은 빵을 오븐에서 꺼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제빵기사 최영애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게요. 영애 씨는 빵을 만드는 사람, 제빵기사라고 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최영애 씨는 11년차 제빵기사로 전라남도 전주의 한 빵집 매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애 씨가 빵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친구의 주선 때문이었습니다. 금정에 있는 제과제빵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했는데요. 당시 영애 씨가 다녔던 학원과 뚜레쥬르라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협약을 했던 상태라 뚜레쥬르에 취업을 연결해 주었던 겁니다. 일반적으로 3개월이 지나야 정직원이 되는데 영애 씨는 보름 만에 정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뚜레쥬르는 남한에서 대표적인 제빵제과 회사로 다양한 빵 종류를 생산하고 남한 전역에 천 개가 넘는 매장을 두고 판매하는 업체인데요. 동종 업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빵집입니다. 본사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매장으로 보내긴 하지만 각 매장 별로 제빵기사가 수많은 빵을 구워야 하는데요. 갓 구운 빵을 제공하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빵을 굽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영애 씨는 하루에 300여 개의 빵과 적개는 10개부터 많게는 30여 개의 케이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인선: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에서도 배도 안 고픈데 빵 냄새 맡으면 뭐에 홀린 것처럼 먹고 싶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최영애 씨처럼 매일 빵을 만드는 사람은 어떨까요?

마순희: 빵이 자식 같아서 먹고 싶다기 보다는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영애 씨가 처음 빵을 굽기 시작할 때 선배들이 빵과 대화를 한다고 하더래요.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빵 냄새는 물론 빵이 자식처럼 소중하게 생각된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소중한 자신의 창작품이라 그렇게 대견하고 예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사람만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빵이나 케익도 사가는 사람들과 인연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요. 간혹 아침에 출근했다가 미처 팔리지 않은 빵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예쁜 네가 아직 임자를 못 만났구나, 너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구워졌니, 빵을 만들면서도 구워진 빵을 꺼내면서도 빵과 대화를 하게 되더랍니다.

김인선: 빵 얘기를 많이 하니까 갑자기 빵이 먹고 싶네요. 사실 남한 사람들 중에는 10명 중에 8명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빵을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빵을 즐겨먹는 사람이 많은데요. 탈북민들은 어떤가요?

마순희: 글쎄요.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니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밥은 밥이고 빵은 빵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밥 대신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지만 저는 그것이 잘 안 돼요. 제가 얼마 전에 서유럽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소설책에서나 보았던 스위스의 알프스산맥에서 산악열차도 타 보고 프랑스의 파리 세느강에서 유람선도 타고 에펠탑에도 올라가 보고 소설 ‘베니스의 상인’을 연상하면서 바다 위의 도시인 베니스에도 가 보았답니다.

김인선: 저도 아직 유럽은 못 다녀 왔는데, 좋으셨겠어요.

마순희: 너무 좋았죠. 하지만 단 한 가지 괴로운 것이 있었습니다. 밥을 못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빵이나 우유 같은 거로 끼니를 때우니까요. 9박 11일이니 망정이지 좀 더 기일이 길었으면 영양실조가 올 뻔 했다니까요. 젊은이들은 음식문화에도 빨리 적응이 되어서 아무렇지도 않던데 저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적응이 빨리 안 되나 봐요. 우리 성공시대에서도 제과 제빵기사의 사례는 아마도 처음 소개하는 것 같은데요. 그만큼 이 분야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김인선: 제빵기사의 나이 제한은 없지만 2~30대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영애 씨도 올해 43살이 됐으니까 시작은 30대였네요. 문제는 앞으로인데, 점점 체력적으로 버겁지 않을까요?

마순희: 글쎄요. 제빵기사가 체력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이 견디기가 쉽지 않은 직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힘으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요하는 일이기에 나이 먹어서까지 가능하대요.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면 후배 제빵기사들이 할 수도 있을 테고요. 사실 제빵기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도 아직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40대인 제 딸들도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걸 보면 앞으로 10년, 20년은 거뜬히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애 씨의 경우에도 특별히 운동을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어디가 아프다는 얘기도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일하는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겠죠? 영애 씨는 제빵기사로 일하면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고 임신과 출산과정을 다 겪어 낸,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여성입니다.

김인선: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과정을 겪으면서 육아문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거든요. 영애 씨도 아이문제로 직장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 11년 근속근무가 가능한 비결이 뭘까요?

마순희: 비결이라면 남편의 도움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전주에서 출근하는 첫 날부터 지금까지 새벽 출근을 시켜 주고 있다고 합니다. 저녁 퇴근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영애 씨 혼자 알아서 퇴근하면 되니까요. 임신과 출산 후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적지 않은데 영애 씨는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출근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3개월의 산전산후 휴가, 1년간의 육아휴직의 혜택을 이용했는데요. 이런 좋은 혜택이 있다는 걸 회사 대표도 몰랐었는데 영애 씨가 직접 고용지원센터를 통해서 알아보고 복지혜택을 다 받았다고 합니다. 육아휴직이 끝난 후에는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던 거고요. 한국에는 경단녀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직장여성들이 결혼이나 임신, 출산, 육아활동 등으로 인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됨으로써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애 씨는 육아휴직이 끝난 후에 다시 회사에 복귀되어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 11년차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일하고 있고 이제는 주임으로 하루하루 빵과 함께 즐거운 근무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영애 씨의 사랑하는 딸도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합니다. 빵집에서는 아침 일찍 새로 구운 빵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기에 영애 씨의 출근시간은 늘 새벽 6시, 그래서 남편은 새벽 6시에 영애 씨를 출근시켜주고는 다시 돌아와서 딸의 등교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자영업을 하고있는 남편은 딸의 등교시간 때문에 자신의 일정을 조절할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라며 그 남편이 없었다면 자신의 오늘이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도와가며 예쁘게 살다 보니 2016년엔 내 집 마련에도 성공했다고 해요. 영애 씨는 남편과 어린 딸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 하고,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멋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최영애 씨라면 직접 매장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날 것 같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최영애 씨도 자신만의 빵집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천천히 내실을 쌓고 언젠가 자신만의 빵집을 차리겠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애 씨는 탈북 후배들에게 ‘순간순간을 모면하면서 살려고 하지 말고 노력하라,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려고 최선을 다하라, 기회는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니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김인선: 꿈꾸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은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빵기사 최영애 씨는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 우물을 파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다는 최영애 씨. 제빵으로 한 우물을 파고 있는걸 보면 혼자만의 빵집을 차리고 싶다는 영애 씨의 꿈이 곧 이뤄질 것 같습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