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엄마 염소엄마, 풍암오리목장 김민정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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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용산리의 한 오리농장.
사진은 용산리의 한 오리농장.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소개해드린 풍암오리목장 김민정 씨에 대한 이야기 이어가 볼게요. 탈북 전, 김민정 씨는 도시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중국 쪽 장사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사는 탈북민과 북한의 가족 소식을 전하는 중간 역할도 하게 됐는데,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보위부에 체포되기 전 민정 씨는 가족부터 탈북시켰는데요. 2003년 큰 딸을 먼저 한국에 보내고 뒤이어 남편과 작은 딸까지 보낸 뒤 민정 씨는 가장 마지막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2005년도에 말이죠.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먼저 도착해 있었던 김민정 씨는 한국으로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도 있고 초기 정착 탈북민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 수급비도 받을 수 있어서 한국생활 시작이 아주 힘든 것은 아니었고요. 하지만 여느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민정 씨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루 벌어 지내는 일용직이었지만 열심히 일하며 살림에 보태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 당시 가전제품을 하나, 둘 사 모을 때 정말 재미있고 행복했었다고 민정 씨는 회상했는데요. 좀 더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고향 지인이 농장을 같이 하자고 동업 제안을 했고 주저 없이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랍니다.

김인선: 어느 정도의 자금을 대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조건이 비슷해야 동업자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지분을 받을 수 있거든요. 투자금액을 댈 정도면 꽤 많은 돈을 모았나 보네요.

마순희: 네.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일용직으로 번 돈을 몽땅 투자했기에 동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정 씨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이익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더 심해졌습니다. 단순히 고향 지인이 아니라 남동생의 친구였기에 동업을 하자는 말에 구체적인 계약서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일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된 것입니다. 지인과 자신은 동업자가 아니라 고용주와 노동자 관계였다는 걸 알게 됐고요. 농장의 파산으로 몇 년간의 법정 소송까지 이어지면서 민정 씨는 남한 사회와 법에 대해, 한 마디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힘들게만 여겨졌던 그 모든 일이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흐름을 배우고 법정소송을 진행한 것이 경험이 되어 2011년 경매로 나온 오리농장을 인수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김인선: 가축을 기르는 축산사업은 예상치 못한 질병 문제도 있고 위험부담이 많아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민정 씨의 배포가 굉장한 것 같습니다.

마순희: 네. 오히려 민정 씨는 오리농장이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농장을 먼저 인수하고 나서 오리 숫자를 줄이고 염소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법을 택했다고 하는데요. 비교적 전염병의 위험이 적고 면역성이 강한 염소를 농장의 주업으로 바꾸는 일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던 것이 적중했던 것 같습니다.

김인선: 일반적으로 염소 한 마리가 한 번에 두 마리씩 1년에 두 번 출산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한 마리가 한 해에 보통 네 마리 정도를 낳는 셈이니 별 탈이 없다면 염소 마릿수가 금세 늘어났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민정 씨는 초반에 10여 마리의 염소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계산한다면 1년에 40여 마리가 되는 셈이죠. 염소를 기르면서 폐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꾸준히 사들여서 2017년에는 160여 마리로 늘어났다고 했는데요. 며칠 전에 전화해 보았더니 지금은 300여 마리로 늘어 났다고 합니다. 오리 사육은 주기가 40일이어서 비교적 회전이 빠른 반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서 몇 번의 실패를 이겨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만 마리 정도의 오리를 키우고 있답니다. 염소도 300여 마리로 늘었으니 김민정 씨의 하루는 늘 바쁠 것 같습니다.

김인선: 오리야 동업을 하면서 길러봤지만 염소는 처음 기르는 건데 10마리에서 300마리로! 성과가 아주 좋아요. 비법이라도 있나요?

마순희: 네. 염소가 우리에서만 자라면 활동하는 범위가 좁아서 건강할 수 없답니다. 사실 넓은 풀밭에 방목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민정 씨는 뛰어놀 수 있는 놀이장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고요. 또 흔히 판매되는 사료가 있기는 하지만 민정 씨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료를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금년에도 5000평 정도의 농지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가 알이 다 들었을 때, 아직 줄기가 새파랗게 살아 있을 때 가을해서 옥수수와 대, 이파리 등을 전부 잘게 분쇄한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닐 용기에 담아 밀봉해서 유산균을 배양시킨 후 염소 사료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민정 씨가 그렇게 만든 사료는 염소들이 잘 먹는다고 하는데요. 직접 만든 사료를 먹인 후부터 염소들이 병에도 잘 걸리지 않아서 300마리까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김인선: 염소를 건강하게 잘 길렀으면, 이제 판로 문제를 고민해야 할 텐데요.

마순희: 저 역시 그 문제가 가장 궁금했거든요. 물어보니 다 자란 오리는 매번 계약된 업체에서 다 가져가고 염소는 영양식품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장에 염소즙을 생산하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주문 받으면 그때 그때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하고요. 식용으로 요구할 때에는 전문업체에 가서 잡아서 고기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하루 정도 미리 주문 받아서 말이죠. 7~8년을 운영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서 판매 같은 것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최북단 철원군에서 귀농의 꿈을 꽃피워가고 있는 김민정 씨의 풍암 오리농장은 귀농을 희망하는 많은 탈북민들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그들에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농촌에 잘 적응하도록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김민정 대표를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우리 누이라고 부르면서 따르고 있습니다. 김민정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의 농장이 오늘처럼 잘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탈북민들의 정착을 위해 진심으로 도와 주신 철원 군청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김인선: 철원 군청이요?

마순희: 네. 농장 앞까지 도로를 내야 할 때에도 탈북민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걸 하겠냐고 하면서 군청에서 농장에서 해야 할 공사까지 다 맡아서 해준 덕분에 농장 사업을 더 확장하고 잘 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농장을 꾸려나간다는 김민정 씨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김인선: 최근 접한 뉴스 기사가 있는데요. 유엔은 대북 제재 조치의 예외로 프랑스 비정부기구에서 염소 사육에 필요한 물품들을 북한에 보내는 걸 허락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염소 사육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겠는데요. 민정 씨처럼 사료, 그러니까 염소들 먹이에 좀 더 신경을 써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마순희: 사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집에서 염소를 키워 보았는데요. 그땐 염소를 풀밭에 매 놓았다가 저녁이면 고삐를 풀어서 집에 데려오면 끝이었거든요. 염소를 풀밭에 방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염소엄마, 김민정 씨가 말했으니까 청취자 여러분들도 힘내서 잘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염소 젖은 좋은 영양식이었기에 매일 갓 짠 염소 젖을 보글보글 끓여 주시던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네요

김인선: 언제 들어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따뜻한 것 같아요. 오리엄마, 염소엄마 김민정 씨의 이야기가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데요. 북쪽에 계신 수많은 염소 엄마들!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민정 씨가 기르는 염소가 철원을 넘어 북쪽 땅으로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며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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