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공시대 주인공, 그 후 이야기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12.26
jungdongjin-620.jpg 20일 오전 해돋이 명소인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변을 찾은 행락객들이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이제 정말 2019년이 며칠 안 남았어요. 오늘 성공시대 방송이 2019년에 전하는 마지막이니까요. 물론 다음 주, 성공시대는 계속되지만 오늘 기점으로 해가 바뀌는 거니까 이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꾸며볼까 하는데요. 그동안 소개했던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해 보겠습니다.

마순희: 좋죠~ 성공시대로 처음 인사드린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네요. 2018년, 미용전문가 박진선 씨를 시작으로 지난 주 소개했던 평범한 식당종업원 김영희 씨까지 총 61명을 소개해 드렸더군요. 지금도 각자 저마다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기에 전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은데요. 시간관계상 몇몇 분들 얘기만 나눠볼게요. 올 1월에 제일 처음 소개한 사례자인데요. 명절이나 주말에 차가 많아 더 바쁜 곳이죠. 고속도로 통행요금을 받는 요금소 직원 한수정 씨 이야기였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고 9년차로 고참 선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하네요. 현재 수정 씨가 근무 중인 요금소에는 총 18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중 5명이 탈북민이거든요. 무엇보다도 수정 씨 사례에서 기억이 남는 건 중국에서 함께 살던 남편과 아들을 데려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절로 노력했던 점이었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수정 씨는 조선족 남편과 중국말이 더 편한 아들을 위해 한글자모표와 구구표를 벽에 붙여놓고 함께 공부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잖아요. 무엇보다 아들을 탈북자녀들이 많은 대안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라 일반학교에 진학시켜서 한국정착을 시켰다는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런데 수정 씨에겐 요금소 직원 외에 다른 수식어가 있었죠?

마순희: 맞습니다. 회사원 한수정 외에 시인 한수정으로도 불리지요. ‘달빛에 그린 고향’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정식 시인이니까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시에 담았는데요. 지금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시집 출간 이후 ‘참여문학’이라는 잡지에 몇 편의 시가 실리기도 했지만 정식 시집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김인선: 한 편의 책으로 완성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죠. 게다가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직장생활도 해야 하니까요.

마순희: 그렇죠. 그나마 다른 직장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글을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고속도로 요금소의 경우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입니다. 요금소에서 일하는 탈북여성들 중에는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대학진학 등 공부를 더 해서 좀 더 전문적인 일을 찾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한국정착 후 뭘 하며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직업 중의 하나랍니다. 탈북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요양보호사인데요. 실제로 성공시대 주인공 중에도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김인선: 맞아요. 해마다 빠짐없이 소개됐을 정도였으니까요. 2019년에만 보더라도 김선희 씨와 김희경 씨 이렇게 두 분을 소개했었는데요. 두 분 다 재가요양보호사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노인복지시설 같은 특정 시설에서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보살핌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의 집으로 방문해서 보살핌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희 씨와 희경 씨 모두 대상자의 집으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중 선희 씨와 최근에 통화를 했는데요. 올해로 11년차 요양보호사로 3명의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60살이 되셨는데 이 일처럼 자신에게 적합하고 좋은 일은 없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겠다고 하네요.

김인선: 김선희 씨 사례에서 기억에 남는 건, 중풍을 앓는 같은 탈북 어르신을 돌봤는데... 이분이 성질이 괴팍했다는 거예요. 여러 요양보호사들이 며칠 못 가 그만뒀는데 선희 씨는 오랫동안 함께 한다고 했죠?

마순희: 네. 선희 씨가 현재 돌보는 3명의 어르신 중에 한 분이 바로 그분이랍니다. 어르신의 심통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때론 따끔한 충고를 하는 선희 씨였는데요. 고향 반찬을 해 드리기도 하며 살뜰히 챙겼더니 선희 씨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다고 합니다. 자식들도 못하는 효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희 씨 덕분에 어르신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희 씨에게도 요양보호사 외에 손풍금 연주가라는 수식어가 있는데요. 틈나는 대로 노인복지관 등을 찾아가서 손풍금 공연을 하니까요. 김선희 씨는 직업적으로만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봉사로도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일만 꾸준히 하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분들도 참 많은데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는 강영진 씨도 있습니다. 2018년 11월에 소개했던 강영진 씨는 올해 76살이 되셨는데 지금도 수원지역 복지관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0여 개의 도시락 배달과 250여 명의 어르신들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봉사활동까지 하기에 여전히 쉴 틈이 없다는 거죠. 이런 강영진 씨를 보고 탈북민들의 홍반장이라고 소개를 했었는데, 영진 씨는 지금도 ‘홍반장’으로 수원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김인선: ‘홍반장’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어디에서든 또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도와주는 사람을 ‘홍반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76살의 나이에도 강영진 씨는 변함없이 탈북민들의 홍반장이시네요. 지금도 건강하게 홍반장으로 활약하고 계시다니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마순희: 네, 맞습니다. 강영진 씨만큼이나 저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준 분이 있습니다. 올해 4월에 소개했던 춘천의 건강상담사 김영순 씨인데요. 2009년에 한국에 입국한 후 5개월 만에 탈북민 초기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의 추천으로 춘천보건소에 취직을 했습니다. 준비도 안 된 사람이 좋은 곳에 취직을 했다고 뒷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영순 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냈고 지금까지 춘천지역 탈북민들의 건강지킴이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기억나요. 먼저 나온 탈북 선배들 중에 북한에서 대학을 나온 분도 있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도 많았는데 아무 조건을 갖추지 못한 영순 씨가 취업을 가장 먼저, 그것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공공기관에 취업을 해서 영순 씨에 대해서 샘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하지만 영순 씨는 지역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상담도 하고, 몸으로 부딪치며 주어진 일에 성과를 냈잖아요. 제가 영순 씨의 사례를 듣고 능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표현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마순희: 네. 춘천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자들의 이야기에 김영순 상담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한국 정착 5개월 만에 보건소에 취업을 하게 된 영순 씨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운을 만든 것은 김영순 씨 본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반적으로 탈북민들의 경우 여러 교육을 받은 뒤에야 일자리를 알선 받게 되거나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개는 친분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평소 성품과 성실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거잖아요? 특히나 김영순 씨를 추천한 사람은 같은 탈북민이 아니라 탈북민 초기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 직원 분의 추천이었다는 점에서 잠깐 스치는 인연인 것 같아도 관계를 소중히 맺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영순 씨는 탈북민들의 정착과 사회통합을 위한 봉사활동, 그리고 상담업무를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김인선: 네. 영순 씨 뿐 아니라 지금까지 소개했던 61명의 성공시대 주인공들, 그리고 성공시대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수많은 탈북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한 삶이라고 전하고 싶은데요. 내년에도 그분들의 이야기, 소중히 담아 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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