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성공시대를 빛낸 주인공 (2)

0:00 / 0:00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2020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소개했던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지난주에는 성공시대에서 처음 소개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계셨잖아요?

마순희: 네. 부동산전문가와 액세서리 만드는 일을 하는 분까지, 성공시대에서 처음 소개하는 직업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최대 화두인 ‘코로나비루스’와 연관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소환해볼까 합니다. 묵묵히 진료현장에서 감염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의료진인데요. 의사나 간호사 뿐 아니라 요양보호사도 있습니다. 탈북민 중에도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요. 4월에 소개했던 박영희 씨와 8월에 소개했던 신영화 씨가 있습니다. 먼저 영화 씨는 올해 58살로 제주도에 정착한지 13년 됐는데요. 요양보호사 일을 한 지는 10년이 됐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탈북민들이 대부분 60대 후반인데 신영화 씨는 이제 50대 후반이네요. 40대에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는 건 비교적 빠른 편이잖아요?

마순희: 네. 젊은 탈북민들 대부분은 대학을 가든가 정규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취업준비를 하는데 신영화 씨는 드물게 요양보호사를 선택했습니다. 남한에 오면 초기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다양한 직업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영화 씨가 교육받는 기간에 노인들을 돌보는 실버케어센터에 가서 실습을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꼭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들을 정성껏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진로로 선택하게 된 겁니다. 다른 교육을 받아도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교육도 받고 국가시험을 거쳐 자격증 취득까지 해야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10년 전에는 국가시험을 치르지 않고 교육시간만 이수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영화 씨는 비교적 쉽게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공공의료원인 제주의료원에서 말이죠. 하지만 일하는 것까지 쉽게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제주도 방언이 심해서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으니까요.

김인선: 남한 사람들이 북한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주도 사투리는 북한말보다 더 못 알아듣겠다고 하거든요.

마순희: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쉽지 않았지만 못 알아듣는 제주도 방언은 동료들의 입을 통해 이해했고 경험이 쌓이면서 행동으로 먼저 해결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말로 표현하기 전에 영화 씨가 먼저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게 된 거죠. 실무경험도 풍부하고 성실하고 능력까지 있어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요양보호사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최근엔 코로나비루스로 영화 씨의 역할이 더 커졌습니다. 제주의료원의 경우엔 경증환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확진자가 나오는 경우 전담의료기관으로 옮겨야 하는데요. 요양보호사들이 돌보는 환자의 경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아서 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 대응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달 들어 제주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해 의료진들이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는데요. 신영화 씨도 마찬가집니다. 코로나비루스 감염확산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요양보호사로 최선을 다하는 영화 씨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김인선: 네. 신영화 씨를 비롯해 남한 전역에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올해 4월에 소개했던 박영희 요양보호사도 비슷한 상황일 텐데요. 어떤가요?

마순희: 맞습니다. 자신의 건강보다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또 한 사람! 박영희 씨인데요. 서울 금천구에서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지 11년 됐는데요. 그동안 식당일부터 재봉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요양보호사 경력은 이제 4년차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요양보호사를 접했던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어느 날 영희 씨는 몸이 안 좋아서 탈북민들이 병원 이용 시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립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정도가 심해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 달 넘게 병원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요양보호사를 보며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영희 씨는 관련 공부를 하고 시험을 거쳐 자격증 취득을 한 뒤 요양병원에 취직했고 전문 지식을 갖춘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4년째 치료와 보호, 돌봄을 하고 있습니다. 박영희 씨 역시 코로나비루스 여파를 받고 있는데요. 정부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계속되는 요양병원 등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해당 종사자들에게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있어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 피로를 푼다고 했는데 마음대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고 하네요.

김인선: 예전에 박영희 씨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마주하고 싸우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요. 어쩌면 영희 씨는 지금, 또 다른 고난과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영희 씨가 삶 속에서 마주한 싸움들에서 매번 승리를 했으니까 이번에도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비루스를 극복하기 위해 참 많은 분들이 애쓰고 있는데요. 국립의료원과 보건복지부에서는 중환자 급증에 대비해 전담 간호인력 확보에 나서 388명의 인원을 보충했다고 해요.

마순희: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교대자가 많아야 하니까요. 탈북민 중에도 간호사가 있는데요. 많지는 않습니다. 간호사가 되려면 4년이라는 과정을 이수해야 시험을 치를 수 있고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도 쉽지 않기 때문에 간호학을 지원하는 탈북민이 많은 것에 비해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5월에 소개했던 김명희 씨는 대학공부보다 더 힘들다는 취업의 문까지 통과한 거죠. 올해로 15년차 간호사로 책임간호사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입원실에서 근무 중인 명희 씨는 일선 간호사 관리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총괄해야 하는데요. 간호사 업무보다 보호자와 환자의 민원에 대한 일들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민원업무가 많이 줄었다고 해요. 의료시설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로 보호자들의 출입도 최대한 자제시키고 있으니까요.

충남 천안의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35살 정희선 씨는 9년차 간호사입니다. 초반엔 위급한 환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응급실에 있었기 때문에 늘 바쁘고 정신 없었다고 하는데요.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가 진료를 받고 완치돼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 간호사라는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입원실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는데요. 저와 만난 날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날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요즘은 방역까지 신경 쓰면서 긴장 속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는데요.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 때도 많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년퇴직 할 때까지 간호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엔 변함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간호사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긍심을 느끼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희선 씨기에 언젠가는 원하는 꿈을 꼭 이룰 거예요. 지난주에 이어 오늘까지 성공시대 주인공들을 소환해 보면서 다시금 실감해요. 우리 탈북민들이 참 열심히들 살았고 지금도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2021년에도 이분들만큼 멋진 삶을 살아가는 성공시대 주인공들 만날 수 있겠죠?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