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그녀에게 팬클럽이 생긴 이유 (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4.10.24
[마순희의 성공시대] 그녀에게 팬클럽이 생긴 이유 (1) 사진은 탈북난민인권연합 사무실에서 인권·법률·노무 분야의 상담을 받는 탈북자의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지고 있지만 우리 주변엔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온기가 느껴집니다. 자발적으로 모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단체는 물론이고 선행을 하는 모임들이 참 많은데요. 한국에서는 팬클럽에서도 온정을 베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 방송인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팬클럽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팬클럽이 있는 탈북민들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 사실 팬클럽이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들어보지도 못 했던 용어인데요. 우리 탈북민들 중에도 팬클럽이 있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팬클럽은 탈북민들에게 별세계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단체거든요. 당의 유일사상체계에 어긋나는 그 어떤 사사로운 친분관계로 이루어지는 조직이 있었다가는 그냥 그날로 인생 끝장나는 거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연기자나 운동선수 등 다양한 사람, 다양한 분야에서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고 그 중에 우리 탈북민들을 좋아해주는 팬클럽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감사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상담 일을 하는 분인데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팬클럽까지 만들어진 분이 계신데요. 오늘은 그분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04 1, 48살 때 한국에 입국한 박정순 씨인데요. 현재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는 분이십니다. 워낙 모범적인 분이다 보니 정순 씨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분들이 모여 팬클럽 ‘진사모’를 만들었는데요. ‘진사모’는 진정한 사회복지 모임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진사모라는 팬클럽을 가진 박정순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인선: 남을 돕는 일에 스스로 발 벗고 나서는, 한 마디로 선행에 앞서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고 더 나아가 존경하는 마음도 갖게 만드는데요. 그런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진사모’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정순 씨 곁에 계신 거네요. 박정순 씨가 어떤 분일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마순희: , 박정순 씨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면 탈북민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시행착오들을 해소하고 도와주는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분입니다. 정순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1년 만에 만든 봉사단체인데요. 정착 초반에 같은 탈북민들을 위한 전화상담 봉사를 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김인선: 아무런 대가없이 다른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 봉사인데요. 탈북민들의 경우 ‘봉사’의 의미를 한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고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처음엔 봉사활동의 수혜자였지만 다른 봉사자들의 활동을 보면서 봉사의 참 의미를 알게 되고 자신도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는 게 일반적이고요. 그런데 정순 씨는 정착 초반에 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거죠?

 

마순희: , 맞습니다. 박정순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지내는 동안 처음으로 종교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기독교에 진심으로 공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원을 나와 인천에서 초기정착을 하면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게 됐는데 교회 분들을 통해 ‘한정협’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고 해요. 한정협은 ‘한국기독교 탈북민 정착지원협의회’를 말하는데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과 경제적 지원 등을 하는 곳입니다.

 

관계자분들이 정순 씨가 북한에서 교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탈북민들을 위한 전화상담 봉사활동을 권유했고 정순 씨는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정순 씨는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탈북민들에게 전화 상담만이 아니라 만나서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2005, 정순 씨는 탈북민 정착지원 상담센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 온 지 겨우 1년이 지났는데 그런 걸 만들겠다고 나선 용기도 대단하고 능력도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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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한국정착을 너무 잘하신 것 같은데요?

 

마순희: , 그렇습니다. 정순 씨는 탈북민들 중에 가장 빨리 자신의 길을 찾은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순 씨에게도 방황의 시간이랄까요.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막 나왔을 때만 해도 정순 씨는 북한에서처럼 교사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순 씨의 생각과 달랐고 한국에서는 왜 교사로 근무할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김인선: 일단 한국에선 북한의 사상교육 같은 것도 없고, 교육 체제나 수준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교원 출신의 탈북민들이 북한에서처럼 한국의 교단에 서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다시 배우고 학위를 취득해야 가능한데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순 씨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정순 씨는 교원 외에 다른 일을 해 본 적도 없었고 한국에 마흔 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왔기 때문에 취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 두고 온 자녀가 있어서 브로커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많은 탈북 여성들은 식당 일부터 시작해서 돈을 버는 일을 우선으로 하지만 정순 씨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딸이 먼저 한국에 와 있었으니까요. 정순 씨는 자신의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한국 정부가 원망스러웠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발붙일 곳이 있을까 염려되고 두렵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 억울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복잡한 심경을 덜 수 있는 곳은 교회였고 정순 씨는 신앙생활에 집중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를 지내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나니 문득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방황의 시간을 마쳤습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컴퓨터와 운전면허가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됐고 곧바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는 편이었고 교원 출신답게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탈북민들에게 가르치는 일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알려주면서 상담하는 일로 이어졌고 정순 씨에 대한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지역 사회에 퍼졌습니다.

 

김인선: 그렇게 해서 탈북민 정착지원협의회에서 정순 씨에 대해 알게 된 거였군요.

 

마순희: . 정순 씨는 상담 봉사를 해 달라는 협의회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사명감을 갖고 임했습니다. 전화 상담을 하면서 직접 만나서 상담하지 못 하고 전화로만 하는 상담의 제한성을 실감하며 직접 상담센터를 열게 됐는데요. 2005년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시작한 NK정착지원 상담센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정순 씨는 탈북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상담도 겸했는데요.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탈북민 전문 상담기관은 이곳이 최초였습니다. 정순 씨가 만든 상담센터는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기관이 되어 갔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 제도가 2010년부터 실시됐으니까 당시에는 NK정착지원 상담센터가 유일한 상담 공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기독교 탈북민 정착지원협의회’의 권유로 상담을 시작했고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상담지원센터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순 씨는 지원과 도움의 필요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관련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한국 사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순 씨는 자신의 결심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김인선: 박정순 씨가 선택한 배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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