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 상담은 탈북민에게 맡기세요 (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4.05.02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 상담은 탈북민에게 맡기세요 (2) NKDB(북한인권정보센터)가 비보호 탈북자와 간담회를 갖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미숙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미숙 씨는 두 딸까지 일가족 모두가 탈북해서 한국 정착을 시작했다고 했죠

 

마순희: . 고미숙 씨는 2007년에 거의 직행과 마찬가지로 두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중국에서 3개월 정도 숨어 지낸 것이 다였습니다. 한국엔 먼저 정착한 친오빠와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후 미숙 씨는 오빠와 남동생이 정착을 시작한 경상남도 마산 지역에 거주지를 배정받았습니다. 19, 16살된 두 딸은 공부를 시작했고, 미숙 씨는 부업으로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몇 개월간 식당에 다니다가 미숙 씨는 고속도로 요금소에 취직을 했는데요. 오가는 차량의 통행 요금을 받는 일을 하는 단순 노동이었습니다. 통행 거리와 자동차 종류에 따라 통행 요금이 달라지는데 자동차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서 미숙 씨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요. 자동차가 요금소에 진입하면 자동으로 정산기기에 금액이 뜨기 때문에 보이는 숫자대로 요금을 받기만 하면 되기에 큰 무리없이 적응해 나갔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엔 업무에 능통한 우수사원으로 선발도 됐습니다. 하지만 요금소에서 근무한 지 3년이 지나자 해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탈북민을 고용하는 회사에는 정부의 지원금이 주어지는데 근로자 1명당 최대 3년까지였던 것입니다. 또 다른 탈북민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미숙 씨는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재취업을 지원해주는 실업급여 제도가 있어서 미숙 씨는 당장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숙 씨는 탈북 여성들이 선호하는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하고 자격증도 취득했는데요. 그런 미숙 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김인선: 새로운 기회라면 요양보호사 말고 다른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는 의미일까요?

 

마순희: . 맞습니다. 마산 가정상담센터에서 탈북민을 위한 상담사를 구하고 있으니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마산 상담센터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지역 사회에서 성실한 직장생활을 해 온 미숙 씨를 추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숙 씨는 상담사 자격증도 없고 상담 공부는 물론 상담이라는 단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숙 씨는 면접을 봤고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말했습니다. 상담센터 소장님은 자기들도 탈북민 상담은 처음이라며 모르는 것은 지금부터 배우면 된다고 미숙 씨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고미숙 씨는 그날부터 사무실에 비치된 컴퓨터 앞에서 타자 치기를 배우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웠습니다. 모든 업무가 컴퓨터로 진행되기에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미숙 씨는 두 번, 세 번 반복하고 열 번을 물어가며 컴퓨터를 배웠고, 상담에 쓰이는 용어도 배웠습니다. 사회복지와 상담의 필요성 등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직접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수강하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고 상담에 필요한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었습니다. 상담센터나 지역사회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가해서 지식을 쌓았고, 업무와 연관된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형성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김인선: 취업이나 교육, 제도적인 부분에 대한 상담은 정보 안내만 잘 해드려도 충분한데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처음엔 낯설어서 받기 싫어하는 게 심리 상담이죠. 하지만 탈북 자체가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고, 그 과정 속에서 말로 하기 힘든 아픔을 그냥 두면 나중에 신체증상으로 악화되는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심리 상담을 해주려면 의학적인 공부도 필요하고, 자격증도 취득해야 하는데요. 그만큼 미숙 씨가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숙 씨가 상담가가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상담사라고 해도 다 전문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안내자 역할 비슷한 일을 하게 되거든요. 무엇보다 탈북민들에게는 낯선 한국 사람보다는 말이 통하고 서로가 이해를 더 많이 하는 탈북민 상담사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상담 기관들에서는 아직 전문적으로 준비가 되지 못 했다 하더라도 인성이 바르고 성실한 탈북민 출신 상담사를 양성하고 또 채용해서 함께 일해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숙 씨가 처음에 자신은 상담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그런 업무를 맡아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해도 상담센터 소장님이 모르는 것은 배우면서 해 나가면 된다고 함께 손잡고 잘 해 보자고 격려해 주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일상적인 상담을 하다가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여겨지면 전문 상담사에게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준비가 덜 돼 있어도 상담사로 근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대학 공부도 성실히 임하면서 미숙 씨는 전문지식을 열심히 배웠고 대학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렇게 미숙 씨는 가정상담센터에서 한국에 처음 정착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상담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미숙 씨가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까지 두 딸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는데요. 엇나가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며 지내 준 딸들 덕분에 일도, 대학 공부도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착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미숙 씨 옆에는 믿음직한 남자친구가 있었다는데요. 인연은 병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정착 초반, 아는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서 미숙 씨가 자주 병문안도 가고 돌봐 주었는데, 그런 미숙 씨를 눈 여겨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이셨는데요. 미숙 씨의 착하고 성실한 모습과 두 딸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본 그분이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남자친구는 미숙 씨의 초기 정착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7년 정도를 사귀었는데요. 경상도 남자치고는 드물게 온화하고 착한 성품이 마음에 들어서 2015년에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까지 꾸리게 됐다고 합니다

 

김인선: 7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으니 정말 신중하게 가정을 꾸리신 거네요. 남편이 미숙 씨의 두 딸과도 잘 지낼 것 같은데요. 한국에 입국했을 당시 10대였던 미숙 씨의 딸들이 이제는 30대가 됐잖아요. 두 딸의 근황은 어떤가요?

 

마순희: .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작은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면서 창업을 꿈꾸고 있답니다. 그동안 미숙 씨에게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상담센터를 그만 두고 다시 회사에 나가고 있습니다. 가정상담센터도 그렇고 여러 기관들에서 일하다 보면 사업이 종료되거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회사를 나가야 되거든요. 고미숙 씨도 여성가족부 사업이 끝나면서 상담센터를 나오게 됐고 다시 취직을 했는데요. 한국도로공사의 요금소 근무였습니다. 연장 계약도 가능해지면서 요금소에서 근무한 지 벌써 6년차가 됐다는데요. 아쉽게도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이미 퇴직한 상태라 내년에 미숙 씨까지 퇴직을 하게 되면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할 거라는 멋진 포부도 내비쳤습니다. 오늘도 충분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만 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해질 고미숙 님의 보다 멋진 내일의 꿈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인선: 멀미 때문에 버스도 못 타고 무서워서 가스 불도 제대로 못 켰던 미숙 씨였는데, 겁을 이겨냈어요. 뭐든 부딪치고 해내는 미숙 씨였기에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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