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이 세무사무소에서 살아남는 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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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강경옥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인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경옥 씨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탈북을 할 수 있었던 것,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것까지 모든 게 인복 덕분이었다고 했는데요. 한국에 와서도 경옥 씨는 사람 복이 있었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강경옥 씨는 자신은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하는데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 복'이라는 게 그냥 거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고 배울 점이 있다면 자신을 낮춰서라도 배움을 선택하고, 또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니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강경옥 씨의 삶이 그랬습니다.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었기에 한 동네에 사는 형부가 전해주는 바깥 세상, 즉 중국 소식을 귀담아 들었고, 중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접한 뒤에 탈북을 했기에 중국에서 숨어 지내는 3년 동안 중국어를 익히며 가짜 신분증도 만들었고요. 덕분에 경옥 씨는 중국인 신분으로 배를 타고 2001년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자신은 탈북민이라고 자진신고 했습니다. 탈북민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정착 지원이 가능한 만큼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탈북민으로 한국 정착을 시작한 경옥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 학원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립적으로 살아가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컴퓨터가 기본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옥 씨는 무작정 동네에서 가까운 컴퓨터 학원에 찾아가 ‘저는 북한에서 온 탈북민인데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말했고 학원 원장님과 상담 후 그날부터 바로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받은 후에도 연습실에 남아 학원 직원들이 퇴근할 시간까지 컴퓨터를 익혔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직원들은 물론 학원장의 눈에도 들게 되면서 뭘 해도 되겠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학원장은 경옥 씨를 더 눈 여겨 봤고, 나중에는 경옥 씨의 양어머니까지 되어 주셨다고 합니다. 다양한 컴퓨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고 수시로 끼니도 챙겨주면서 경옥 씨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것입니다. 경옥 씨는 컴퓨터 관련해서 5개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양어머니이자 원장님이 추천을 해 준 덕분에 서울에 있는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도 했습니다.

김인선: 컴퓨터학원 원장님은 경옥 씨가 한국에서 만난 귀인인데요. 그분이 믿고 지원해준 만큼 직장생활을 더 열심히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무사 사무소가 굉장히 복잡한 세금 업무 전문가를 돕는 곳이라 일이 쉽지 않거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당시 경옥 씨는 학원을 졸업하고 당당하게 세무사 사무소에 취직을 했기에 당장 성공을 눈앞에 둔 것처럼 가슴이 벅차고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앞으로 겪게 될 일은 상상도 못했던 거죠. 경옥 씨는 취직해서 1년을 매일같이 때려치운다며 울며 지냈다고 표현합니다. 원장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회사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면서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세무와 관련된 전문용어는 더더욱 알아듣기 어려웠고, 세무사를 돕는 보조 업무라 서류 정리부터 사무실 안의 온갖 잔심부름까지 신입사원인 그가 해야 할 일들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옥 씨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버텼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경험도 없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심히 배우고 경험하고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옥 씨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업무만 줄 뿐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방법은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일단 경옥 씨는 학원에서 공부한 대로 맡겨진 자료를 만들어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서류는 한 번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 하고 사무장의 손에서 바닥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서류를 훑어 본 사무장은 다시 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경옥 씨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되는지 그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심사숙고하여 다시 서류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네 번 수정하고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류가 반복적으로 다섯 차례 정도 올라가면 그 때쯤에야 귀찮다는 듯이 대충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니 그 고충이 오죽했을까요.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세무사 사무소 분야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경옥 씨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굳은 사람들 역시 경옥 씨처럼 무시를 겪으면서 일을 배웠고 그렇게 배운 지식과 경험이기에 아무에게도 쉽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김인선: 만약에 저였다면,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게 고민됐을 것 같아요. 괜히 주눅들고 '알아서 그만두라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데 경옥 씨는 그 시간을 잘 견뎌 내셨네요.

마순희: 네. 경옥 씨는 그렇게 1년을 견디어 냈습니다. 하지만 경옥 씨도 첫 1년 동안 매일 저녁 퇴근할 때마다 내일은 정말로 출근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마다 경옥 씨에게 조언을 줬던 사람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만난 같은 탈북민 남편이었습니다. 일단 시작했으면 관두더라도 1년은 해 보고 관두라고,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그만두는 것인지는 알고 그만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옥 씨는 '지금 그 일을 그만두면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들다, 1년만 참고 일해 보라'는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어렵지만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리라, 살아도 이 길에서 살고 죽어도 이 길에서 죽으리라고 결심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는 경옥 씨입니다.

경옥 씨가 포기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기까지 또 한 사람의 조력자가 있는데요. 30년을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문 보조 일을 했다는 분이었습니다. 변호사나 세무사 모두 워낙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분야인데, 보조 역할도 그에 못지 않게 전문적인 업무가 많거든요. 그분은 노련한 사람을 뜻하는 베테랑으로, 텃세가 만만치 않았지만 경옥 씨 역시 절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기에 언니라고 부르며 무조건 그 분의 말을 따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분은 경옥 씨 같은 악바리는 처음 보았다며 그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경옥 씨는 간식 보따리와 책 보따리를 싸들고 다니며 세무 지식과 업무 능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런 그녀의 노력과 그녀를 지지하고 도와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경옥 씨는 세무회계 사무소에서 전문가로 성장했고, 지금은 세무사 사무소 근무 20년이 넘는 베테랑이 됐습니다.

김인선: 좌절의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죠.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땐 상대방이 건네는 진심을 알아채지 못 하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섭섭하고 서운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강경옥 씨는 주변 분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요. 그게 인복이 많은 비결이었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자신이 잘 되라고 해 주는 충고도 오히려 자신을 몰라준다며 서운하게 받아들이기 쉬운데 경옥 씨는 주변사람들의 진심을 받아들인 겁니다. 경옥 씨의 끝없는 성실성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처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고 또 도움의 손길이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경옥 씨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방인으로부터 전문직 베테랑 일꾼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동안의 성장은 인복만이 아닌 오직 그의 성실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업무에 정통하고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재로서 값 높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강경옥 씨의 보다 행복한 내일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