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한국정착, 기본에 충실하라(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3.04.27
[마순희의 성공시대] 한국정착, 기본에 충실하라(1) 서울 중구 남북사회통합교육원에서 열린 '코로나와 북ㆍ중 국경 강화에 따른 2022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 세미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취업 관련 자료가 화면에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주부터 남한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부분 학교의 중간고사가 시작됐습니다. 3-4월에 배웠던 내용으로 주요과목 시험을 치르는데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천차만별이에요. 도서관에서 밤을 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잠도 충분히 자고 평소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는데요. 공부하는 방법은 달라도 시험결과가 좋은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 평소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교재를 충실히 살펴본다는 거죠. 누구나 잘 알지만 모두가 실천하지는 못하는데요. 기본에 충실하는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성공적인 삶을 사는 비결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든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네요.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요. 오늘은 기본적인 것에 충실했더니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됐다고 말하는 탈북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98년에 중국으로 갔다가 2010년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 정착해 경기도 수원시에서 행복한 정착을 하고 있는 박경미 씨입니다.

 

김인선: 기본에 충실했다... 얼핏 들으면 대단한 비법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비법이기에 경미 씨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삶이 기본에 충실한 삶일까요? 북한에서도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일까요

 

마순희: , 맞습니다. 경미 씨의 고향은 북한에서는 자동차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덕천입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미 씨는 덕천 자동차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기본에 충실한 노동자였고 사로청원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온 나라가 어려웠던 1998, 경미 씨는 그래도 생활이 괜찮다는 국경 연선에 시집가서 살고 있었던 언니네 집에 동생과 함께 휴가차 놀러가게 되었는데요. 말이 놀러가는 것이었지 사실은 너무나도 어려운 형편이라 언니네 도움을 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허나 막상 국경 연선에 있는 언니네 집에 가 보니 형편이 덕천이나 별반 나은 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도 중국과 인접하고 있어서인지 그나마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덕천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중국 물건도 돈만 있으면 구하기가 쉬웠습니다.

 

처녀들을 유혹하는 브로커를 만나다

 

경미 씨는 중국 물건을 사 가지고 덕천에 가서 팔면 조금씩이라도 이문을 남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위험이 따르는 그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직장에 다니기에 경미 씨가 연선과 덕천을 자주 오갈 수 있는 형편도 안 됐습니다. 여건상 그런 방법으로는 돈을 벌 수 없었기에 경미 씨는 직접 중국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 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미 씨는 언니네 집에서 지내면서 상황이 될 때마다 지내면서 시장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며 중국에 가면 돈도 벌고 고생 끝이라고 유혹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처녀들을 유혹해서 돈을 벌게 해 준다며 중국으로 데려가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경미 씨는 1998 8월 동생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서 소개 받은 남성과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되었고 조금씩 돈을 모아 북한으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탈북여성이 중국에서 가정을 꾸린다 해도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노동력만 착취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경미 씨의 상황은 좀 나았던 걸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다행히도 경미 씨의 남편은 농촌에서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어 온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농촌에서 일년 내내 아무리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가을에 정작 남는 돈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런 상황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농사일에 전념했지만 경미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두 아들이 태어났고 아들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매년 반복되는 농촌의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미 씨는 남편을 설득했고 여동생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경미 씨와 함께 중국에 들어왔던 동생은 이미 한국에 갔기에 한국행을 부탁한 것입니다. 경미 씨 동생은 경미 씨가 한국으로 올 수 있는 방법과 함께 브로커를 알선해 주었고 운 좋게 모든 노정들이 잘 맞아서 경미 씨는 두 아들과 함께 2010 6월에 중국을 떠나 두 달 만인 8월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 선택한 한국행

 

경미 씨와 두 아들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정착을 시작하고 남편은 얼마 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어쩌면 경미 씨는 하늘이 도운거죠. 덕천이라는 내륙지방에서는 언니의 연줄로 국경지대까지 별 의심 없이 오게 됐고 이후에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중국에 간 것은 물론 중국에서도 십여 년을 살면서도 한 번도 북송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한국행도 두 달이라는 빠른 시일에 도착했잖아요. 모든 노정마다 큰 위험이 있었고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한국행을 하면서 위험한 사건들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국 당시 두 아들은 4, 10살이었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마친 후 경기도 수원에서 한국 정착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모든 여정이 수월했기에 이번에도 금방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경미 씨는 결코 조급해 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인선: 하지만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걸 탈북민들이 참 어려워 하잖아요. 경미 씨와 두 아들이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경미 씨의 경우 먼저 한국에 와 있던 동생이 있어서 한국정착에 자신감이 강했을까요?

 

한국정착 처음부터 자신감이 강했던 이유

 

마순희: , 그렇습니다. 경미 씨에게는 한국생활 2년 선배인 동생이 있었습니다. 동생도 회사생활을 하느라 시간 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주말마다 짬을 내서 경미 씨를 찾아왔고 조카들과 함께 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 동생 덕분에 경미 씨는 물론 가족 모두가 심리적으로도 안정됐고 경미 씨는 지역 하나센터와 복지관 등에서 교육도 받고 컴퓨터 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며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2012년 경미 씨는 관내 주민들의 생활향상을 지원하는 복지관의 주선 덕분에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인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꽤 괜찮은 회사라고 합니다

 

사실 그 회사에서는 이미 전에 여러 탈북민들을 채용한 적이 있었는데 매번 얼마 못 가서 일을 그만두었기에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답니다. 금세 그만두는 탈북민들을 만났던 경험 때문에 회사에서는 처음 경미 씨의 취업 제안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복지관의 주선이라 마지못해 경미 씨를 채용한 셈인데 막상 함께 일을 해보니 그동안 만났던 탈북민들과는 달랐고 그의 성실성과 근면한 회사생활 모습을 지켜보면서 경미 씨처럼만 일한다면 다른 탈북민들도 고용할 의사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김인선: 나쁜 인상을 바꾸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해요. 회사 사람들에게 탈북민에 대한 나쁜 인상이 남아있지 않게 하기 위해 경미 씨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되는데요. 경미 씨가 취업한 곳이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했잖아요. 전자부품 대부분이 외래어인데, 외래어로 된 수많은 부품명을 어떻게 익혔을까요? 경미 씨가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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