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전기 기술자가 된 한의사(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3.06.01
[마순희의 성공시대] 전기 기술자가 된 한의사(2)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서 작업자가 전선을 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철민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올해 나이 77살이 되셨는데요. 고령의 나이에도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며 모범적인 정착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시잖아요?

 

북한 동의사, 한국에 와서 한의사 되기 어려워

 

마순희: . 그렇습니다. 이철민 씨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서 치료 목적으로 1996년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병세가 쉽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차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수용소 생활을 면할 수 없었고, 그러면 겨우 호전된 건강이 다시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남북한의 실상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아내와 함께 한국행을 결정하고 1999 5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정착을 시작했습니다. 철민 씨는 입국 초기까지만 해도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한의사가 될 생각을 했었는데요. 비교적 쉽게 침을 놓는 자격증은 취득했습니다만 그것으로는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 어려운 한의사 시험을 다시 보기엔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철민 씨는 북한에서 부업으로 했던 전기설비 쪽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기기술자로 바로 취업을 했습니다.

 

김인선: 이철민 씨 생각으로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선택한 직업이겠지만, 사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인 분들이 많아요. 아파트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소 관리직에 계신 분들을 보면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업가부터 교직에 몸담았던 분들, 대기업에 다녔었다는 분들까지 다양하니까요. 그만큼 경쟁률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 철민 씨는 비교적 쉽게 취업을 한 것 같은데요?

 

마순희: , 맞습니다. 처음 광고지를 들고 찾아간 곳에서 취직이 됐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철민 씨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밑바닥으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던 것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다뤘던 전기와 분야가 다르기는 해도 대학을 다녔던 지라 기초적인 지식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데요. 때로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전기설비들이 있어서 관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맞아요. 작업할 때 쓰는 용어도 제각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전기 설비, 공구 이름 하나까지 다른 남과 북

 

마순희: . 맞습니다. 처음 보는 전기 설비들 뿐 아니라 공구 이름들마저 북한과는 전혀 다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철민 씨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하루 근무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참고서적들을 빌려 가지고 집에 돌아왔고, 밤을 패 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삶을 무너뜨릴 정도의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는 이철민 씨의 도전정신이 경쟁사회에서 밀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전문가로 살아남는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인선: 주어진 업무에서 만큼은 완벽한 이철민 씨인데요. 그래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입주민들의 민원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혹시 철민 씨에게도 그런 상황이 있었을까요?

 

마순희: 이철민 씨의 경우에는 아파트 내의 전기설비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개별적으로 주민들과 만날 일은 크게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기설비는 고장이 날 때가 있어도 철민 씨가 막힘 없는 대처를 하다 보니 오히려 언제나 고맙다는 인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철민 씨는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경우 관리사무소장은 물론 직원들 대부분 3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철민 씨는 힘든 상황이 생겨도 꿋꿋이 버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직 노력하는 길 밖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만 잘하면 꾸준히 재계약이 되는 것을 봤기에 회사에서 장기 근속하려면 자신이 그만큼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혹여 북한에서 왔기에 응당 모를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 수 있기에 짬 나는 시간마다 기술 서적도 많이 보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그 결과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에 정통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철민 씨를 그 자리에 있게 한 비결이 됐습니다.

 

김인선: 평소에도 정말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마순희: . 맞습니다. 이철민 씨의 집에 가면 한 쪽 벽면에 책으로 꽉 찬 책꽂이를 볼 수 있는데요. 수많은 전기 관련 기술서적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습니다. 손때 묻고 보풀이 인 기술 서적 하나하나에는 오늘을 향한 철민 씨의 피나는 노력과 끈질긴 탐구의 자취가 깃들어 있어서 정말 더 소중한 보물같이 느껴지더라고요. 또 하나 철민 씨의 집에 가면 유달리 많은 화분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희귀한 남방식물과 탱글탱글하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까지 식물원을 연상시킬 정도랍니다. 방 안이며 베란다, 그리고 창턱에는 화분 일색입니다. 제가 철민 씨네 집에 갔던 날은 유난히 무더운 날이었는데 냉풍기(에어컨)가 가동되고 푸르름을 자랑하는 온갖 화초들 덕분에 더위를 거의 못 느끼겠더라고요. 하얀 물수건으로 난초 잎 하나하나를 닦고 있는 철민 씨의 모습과 손수 만든 과일즙을 쟁반 위에 받쳐 들고 남편에게 권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행복하고 멋져 보일 수 없더군요.

 

자녀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이유

 

김인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연상되는데요. 철민 씨가 급성 간질환으로 급하게 탈북하느라 아이들은 당시 함께 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건가요?

 

마순희: 그렇지 못한 게 이 부부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합니다. 탈북 당시 부부는 치료 목적으로 급하게 중국에 가면서 두 아이를 친척집에 두고 떠났습니다. 한국에 온지 3-4년 정도 될 무렵 부부는 연을 놓아 어렵게 북한에 두고 나왔던 두 자녀를 중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해요. 이제는 두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빗나간 기대였습니다. 10대의 자녀들은 5-6년 전 헤어진 부모에게 냉랭했고, 나라를 배반한 사람들이라며 곁조차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들까지 북한을 떠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두 자녀 앞에 철민 씨 부부는 할 말을 잃었고 자녀들의 한국행을 단념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부부는 거의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을 북한에 보내어 자식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식들이 북한에서도 결혼하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만 헤어진 가족에게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치유될 수 없는 영원한 아픔이고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철민 씨는 북한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두만강을 건넜는데, 그 후로도 30년을 더 살아가고 있다며 덤으로 사는 인생,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바람이라고 합니다. 철민 씨는 지금의 건강과 경제적인 안정 등 모든 것이 아내 덕분이라며 어려움도, 외로움도 많았고 도전도 실패도 많았지만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잃었던 건강을 다시 찾고 덤으로 받은 제2의 인생을 보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이철민 씨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건강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챙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인선: 나이 들수록 할 일이 없어지고 부부 관계는 소원해 진다고 하는데, 이철민 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얘기인 것 같아요. 변함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하고 또 북한에서부터 지금까지 부인과 해로하는 모습이 고령 탈북민의 모범적인 사례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본보기가 아닐까요? 건강하게 백년해로 하시길 바라며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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