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서툴러도 성실히! 나만의 정착방법 (1)
2024.06.20
** NEW with SOONHEE MA / INSUN KIM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음식은 치유의 힘도 있고요. 강렬한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또 비언어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도 하죠. 서툰 솜씨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연인의 도시락, 다툼이 있었어도 소박하게 차려낸 배우자의 밥상, 얼굴은 모르지만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봉사자들의 반찬은 상대방의 진심어린 마음까지 느껴지게 하니까요.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 주변엔 음식으로 감동을 주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탈북민들 중에도 이런 분들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음식이 강력한 치유의 힘도 있고 추억이 되기도 한다는 말에 저도 많이 공감을 하게 되는데요. 옛날부터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치유가 안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도 몸이 안 좋을 때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씻은 듯 나아지는 경험을 한 적도 있고 또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도 하더라고요. 우리 탈북민들 중에는 추억의 북한 음식으로 혹은 한국에 와서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차린 분들도 많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 봉사하는 봉사자들도 많고 학교나 지역의 복지시설에서 음식으로 봉사하시는 분들도 참 많은데요. 오늘의 주인공도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셨던 분입니다. 지금은 공무직으로 환경미화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한때는 지역의 아동센터 식당에서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2009년 한국에 입국하여 전라남도의 한 도시에서 정착을 시작한 이나영 씨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인선: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으려고 애쓰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되는데요. 나영 씨는 급식종사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계시네요. 직종을 바꾸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요. 나영 씨가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어떤 경험들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려주시죠.
마순희: 네. 이나영 씨는 2009년 한국에 입국한 후 식당 일부터 시작했는데요. 무리한 탓이었는지 허리가 많이 안 좋아져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나영 씨는 1년 정도 근무했던 식당을 그만 두고 수술을 했는데요. 수술은 잘 됐지만 다시 식당 일을 하면 허리에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지인의 소개로 결혼정보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육체적으로는 식당 일보다 나을지 몰라도 결혼정보회사의 일이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서로가 좋은 상대방을 찾다 보니 성사되기가 쉽지 않았고 2년 여 동안 결혼정보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나영 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영 씨에게는 사회활동에서 겪는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요. 중국에서 생활하던 아들이 한국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 하면서 가정 내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아들 문제로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영 씨는 탈북청소년과 탈북 2세 자녀들의 교육과 적응을 돕는 지역아동센터를 찾았습니다. 많은 조언과 격려의 말로 도움을 주는 지역아동센터는 나영 씨가 언제나 어려울 때마다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학교 공부가 끝나고 부모들이 퇴근하기 전까지 지역의 아동센터에서 애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저녁까지 함께 먹으며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되니 퇴근이 늦어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인선: 한국에는 맞벌이 부부가 안심하고 아이를 부탁할 수 있는 아동지역센터가 지역마다 있는데요. 18살 미만의 아동,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학교가 끝난 후부터 부모님 귀가 시간까지 돌봐주고 있습니다. 센터에 따라 기숙생활이 가능한 곳도 있고요. 센터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기 위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봉사활동을 나오기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어서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죠.
마순희: 맞습니다. 간식은 물론 저녁밥까지 제공해 주기도 해서 혼자 사는 탈북엄마들도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나영 씨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만들어서 센터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좋은 나영 씨의 정성어린 음식들은 매 번 아이들의 대환영을 받았고 센터에서도 고마워했다고 하는데요. 나영 씨는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공부와 학교생활까지 관심 가져주고 친구들과도 함께 잘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아동센터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결혼정보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에도 나영 씨는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서 센터에 보냈는데요. 당분간 집에서 쉬고 있다는 나영 씨의 소식을 듣고 센터에서 마침 센터 식당에서 근무할 직원을 구하려던 참이었다면서 함께 일하자고 먼저 찾아 주었습니다.
김인선: 급식 종사자의 경우 요리 관련 자격증 소지자나 타 기관 경력자를 더 우대하긴 하지만 식당 일처럼 큰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근무가 가능하긴 하죠. 센터에서 나영 씨에게 먼저 일하자 제안한 건 조건보다 나영 씨의 음식 솜씨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센터에서 나영 씨의 음식 솜씨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함께 일하자고 먼저 권했던 것입니다. 나영 씨도 우선 자격증은 따로 없었지만 중국에 살 때 식당에서 일을 해 보았고 한국에 와서도 처음 1년은 식당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센터를 이용하는 30여 명 아이들의 급식을 맡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나영 씨였지만 센터의 제안이 누구에게나 차례지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영 씨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 그리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배우고 성실한 마음으로 해 나간다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각오로 아동지원센터의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김인선: 나영 씨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네요. 이제까지는 내 아이 먹이는 마음으로 정성껏 간식을 준비했다면 이제부턴 수십 명의 아이들 먹거리를 본격적으로 챙기는 만큼 긴장도 더 될 것 같아요. 가끔 급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기도 해서 음식 준비에 훨씬 더 신경이 쓰일 것 같거든요.
마순희: 네. 그래서 나영 씨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위생을 위해 조리 기기들은 사용 후 곧바로 세척과 소독을 했고 조리 공간과 식재료 보관의 청결에도 신경 썼습니다. 센터에서 그동안 아이들에게 맞는 식단을 짜서 운영하고 있었기에 나영 씨는 거기에 맞추어서 음식을 만들기만 하면 됐는데요. 식자재구입과 조리 뿐 아니라 식당과 조리실 청소, 관리에 이르기까지 타고난 깐진 일솜씨로 알뜰히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영 씨의 이런 업무 방식이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는 입장에서 잘 해 나가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완벽주의 같은 성격이라 때로는 상대방을 불편하게도 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센터 직원분과 마찰이라도 생긴 건가요?
마순희: 센터 직원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깔끔한 성격의 나영 씨의 눈에는 아이들의 행동이 간혹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있었다는데요. 밥을 먹으면서 장난을 치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등 한 번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나영 씨는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것이 부모로서, 또 센터 종사자의 도리라는 생각을 했기에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 잡고야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애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피하기 시작했고 나영 씨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가끔 만들어 주던 음식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나영 씨였는데, 매일 매일을 함께 하면서 일부 아이들과 멀어지게 됐으니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나영 씨는 아이들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