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제2의 정주영을 꿈꾸는 프로 농사꾼 (2)
2024.07.11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유옥이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옥이 씨는 충청도에서 마늘 농사를 꽤 크게 하고 있다고 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유옥이 씨는 2004년에 한국에 입국해서 혼자 지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10년에 충청도로 내려가 귀농생활을 시작한 분인데요. 마늘 농사를 성공적으로 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남편의 성실함 하나만 보고 충청도로 내려왔는데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였고 남편이 한다는 사업은 주변 주민들이 싫어하는 개 사육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실망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지만 남편 하나만 보고 선택한 충청도 행이었기에 유옥이 씨는 금방 일상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옥이 씨는 남편이 하던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개를 키워 판매하는 일은 냄새도 나고 시끄러워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남편과의 논의 끝에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 사람은 새로운 길을 모색했는데요. 농사와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서 유기질 비료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전문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실패를 거듭했는데요. 3년 만에 유기질 비료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농사를 하면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잖아요?
마순희: 네. 처음 옥이 씨는 비어 있는 드넓은 농경지를 보고 북한에서처럼 콩 농사, 옥수수 농사 등 뭐든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농경지를 임대하여 파종하고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주기만 하면 농사 일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겁 없이 농사 일에 뛰어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농사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비가 너무 오지 않아도 속을 태워야 했고 수확을 앞둔 시기에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져 한 해 농사를 망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옥이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농사와 관련된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농업과 관련된 교육은 어디든지 찾아가서 받았고, 찾아가는 농업기술 서비스 등 지역의 다양한 제도도 놓치지 않고 신청해서 활용했습니다.
2015년에는 탈북민들의 한국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남북하나재단 지원 정책의 수혜를 받았습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서 농자재 구입과 생산시설 구축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던 유옥이 씨 부부는 충청남도 금산에 위치한 한국 벤처농업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농업대학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 스스로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개개인의 창의력과 경쟁력을 키워주는 실용 교육을 하는데, 옥이 씨 부부에게는 그 교육들이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 습득은 물론 인맥도 쌓을 수 있었다며 옥이 씨는 농업대학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4월 유옥이 씨는 한국 벤처농업대학을 제1기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남한 전역의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는데요. 옥이 씨는 그 제도도 잘 활용한 것 같아요. 좋은 제도가 있어도 몰라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아무래도 외부 사람들과 교류를 안 하는 사람들이 좋은 정보를 놓치기 쉽죠.
마순희: 맞습니다. 제1기로 교육을 마친 유옥이 씨는 이 좋은 교육을 나 혼자만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과 이 좋은 배움의 기회를 많은 탈북민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이 씨의 경우에는 한 학기에 860달러(120만원)의 학비를 내면서 공부했는데요. 이미 영농사업을 몇 년 전부터 해 왔기 때문에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농촌에 정착하기 어려운 탈북민들에게는 학비가 부담이 될 수 있었기에 옥이 씨는 지원금으로 배움의 기회가 생기기를 바랬습니다. 유옥이 씨의 의견을 받은 대학에서는 탈북민의 경우 대학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받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옥이 씨의 제안으로 다음 해에 농업대학에서 세 명의 탈북민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는데요. 후배들은 유옥이 씨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게 되었고 영농을 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습득하면서 옥이 씨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호박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고 거래처가 없어서 잘 키운 농작물을 폐기처분 하는 상황도 경험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선택한 작물이 마늘이었고, 좋은 마늘을 재배하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 유기질 비료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유옥이 씨는 충청도에서 손꼽히는 영농법인 대표가 되었고 그녀의 농원은 하나원 교육생들의 필수 참관 코스가 되었습니다. 제 2의 정주영을 꿈꾼다는 옥이 씨는 2021년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 영농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1,400달러(200만원)의 기부금을 탈북민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돕는 남북하나재단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유옥이 씨는 먼저 정착한 탈북민 선배로서 그 기부금이 남한사회 정착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애쓰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영농인을 육성하고 지원하는데 긴요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했는데요. 2015년 자신이 영농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때 남북하나재단의 영농정착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도움을 받았던 그때의 고마움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한 분야에서 10년 연속 일을 하면 전문가 혹은 고수라는 평을 받게 되는데요. 오래 일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무조건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끊임없는 노력, 연구, 적극적인 자세를 기반으로 한 직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이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유옥이 씨가 농사 일을 시작한지는 더 오래 됐겠지만 2015년에 재단 영농정착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로 10년을 꽉 채우게 된 셈인데요. 이제는 영농사업가 중에서도 진정한 고수로 자리매김 하신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유옥이 씨는 영농법인 ‘청정농원’의 대표로 충청도에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거든요. 작년 11월 '2023 통일 리-스타트업'이라는 행사가 이화여자대학교 내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우리 탈북민 창업가들의 제품들을 선보이고 생생한 창업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여기에서 최우수상을 청정농원의 유옥이 대표가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자랑스러운 우리 유옥이 대표는 행복한 농사꾼만이 아니라 사회활동에서도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한반도 통일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유옥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들이 사회적인 수혜자가 아닌 생산적 기여자로, 따뜻한 이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좋은 선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2의 정주영을 꿈꾸며 오늘도 행복한 농사꾼으로, 봉사와 기부를 통해서 받아 안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유옥이 대표님의 더 행복한 내일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젊은 농사꾼보다 더 열심히, 더 현명하게 농사 짓고 있는 유옥이 대표! 오늘도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계실 텐데요. 그런 모습들이 있기에 탈북 영농인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