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자유로운 세상에서 키우고 싶어요(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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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의 성공시대] 자유로운 세상에서 키우고 싶어요(2)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에서 열린 2019 탈북청소년 진로진학 박람회를 찾은 탈북 청소년들이 대학 입시정보와 학과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최한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한별 씨는 자녀들이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북한을 떠날 생각을 했습니다. 최종 결정을 미루는 사이 20대에 들어선 큰 딸이 몰래 탈북을 했고 뒤이어 부인과 둘째 딸, 장모님까지 모두 탈북을 하고 한별 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죠?

 

마순희: . 한별 씨가 당원돌격대를 이끌고 이동작업을 나갔던 사이에 가족들이 떠났고 몇 달 후에 가족 모두가 무사히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혼자 남은 한별 씨는 상시적인 감시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았고 1년쯤 지나서는 한별 씨의 한국행을 위해 가족들이 브로커 알선과 비용 등 모든 준비를 해 놨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고민 끝에 한별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고 북한 최대의 명절로 손꼽히는 태양절에 탈북을 결행했습니다. 한별 씨는 무사히 중국으로 들어가 가족들이 주선한 브로커와 만났습니다. 일주일가량 중국에 머물던 한별 씨는 바로 태국으로 갔고 태국 감옥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한국에 바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한별 씨는 4 15일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떠난 지 두 달도 안 되어 6 4일 대한민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가족 몰래 탈북한 딸 뒤따라

온 가족 탈북, 한국 정착

 

한별 씨는 한국에 도착한 후 1년 가까이 헤어져 살았던 가족을 만났고 두 딸은 한국에서 자신들이 꿈꾸어 왔던,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배우면서 희망에 넘쳐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웠던 점은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한 것뿐이었습니다. 딸의 갑작스러운 탈북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쳤었는데 그 후유증이 한국에 와서도 좀처럼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모님이랑 가까이에 살았기에 아내의 일상생활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한별 씨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처음 정착하면서 한별 씨가 시작한 일은 일거리가 있을 때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기술이 없다 보니 안정된 일자리가 못 되었습니다. 사정에 따라 그냥 그만하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별 씨는 안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중장비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김인선: 어떤 분야에서든 능통하게 일할 수 있다는 증명서인 자격증이 있어야 취업이 유리하죠. 실력이 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 안에서 또 사람을 뽑아야 해서 취업이 쉬운 건 아니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한별 씨도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학원을 졸업한 후 관련분야에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알고 지내던 지인이 한별 씨에게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 채용을 하는데 북한이탈주민 특별채용이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었습니다. 자격요건 등을 살펴봤을 때 한별 씨에게 아주 유리했습니다. 서류전형 등을 거쳐 최종 관문만이 남았는데 한별 씨는 취업을 포기했습니다. 당시에 탈북민 사회에서는 한국보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해준다는 소문과 함께 해외 망명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는데 한별 씨의 두 딸도 현지에서 영어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캐나다로 가자고 아빠에게 간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별 씨는 당시 거주하던 구청에서 공무원 채용을 권고 받았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캐나다로 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자녀들 유학 위해 공무원 최종합격 포기한 아빠

 

김인선: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탈북민 중에는 같은 민족이지만 생각과 많이 다른 남한 사람과 남한 사회에 적응을 못 하고 차라리 더 낯선 곳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북한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피할 수 있으니까요.

 

마순희: . 당시에 저의 주변에서도 적지 않은 탈북민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갔었는데요. 한국 정착의 어려움과 함께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 중에는 외국에서 잘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몇 년 안 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기는 하죠. 비행기를 타고 자유롭게 외국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한별 씨는 딸들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을 할 때에도 오직 딸들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배우며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같은 이유로 한국을 떠나게 된 거죠. 한별 씨는 그저 건강이 안 좋은 아내가 못 주는 엄마의 사랑까지 합쳐서 딸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채용의 기회를 잡는 대신 딸들을 위해 캐나다로 떠났던 것입니다.

 

김인선: 사실 한국의 많은 부모들도 자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해외 유학을 보내는데요. 주로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해외에서 생활하고 아빠들의 경우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교육비를 보내주는 편이에요. 타국에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한별 씨는 이번에도 아주 큰 결심을 한 거 같네요.

 

마순희: 한국에서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한별 씨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아픈 아내를 외국으로 함께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딸들만 보낼 수는 더더구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장모님에게 부탁하고 오직 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캐나다로 본인이 갔었던 것입니다. 최한별 씨는 캐나다의 한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딸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했고 1년 정도 지나서 딸들이 어느 정도 영어를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캐나다로 떠날 때 한국 정부로부터 받았던 집을 반납한 상태라 당장 집부터 구해야 했습니다. 한별 씨는 한국과 캐나다에서 일하며 모았던 돈과 은행 대출로 받은 돈을 합쳐 32, 그러니까 105제곱미터 되는 빌라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두 딸 뒷바라지 마치고  

한국에서 다시 시작된 타지 생활

 

한별 씨는 의료기기를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에 취업도 했습니다. 공구들 이름도 낯설고 한참 나이 어린 직원들이 먼저 들어온 고참이라고 은근히 주는 압박도 견디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을 데가 없어서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곤 했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한별 씨는 직장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눈썰미로 어깨너머 기술도 점차 습득했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갔습니다. 회사의 사장은 누가 보건 말건 성실하게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해 나가는 한별 씨의 모습에 감동했고 순차적으로 급여를 인상해 주었습니다. 직장생활 4년차일 때는 생산팀장으로 근무했었는데 10년 차인 지금은 한별 씨가 대표책임자로 선임되었다고 합니다. 사장 다음으로 두번째 서열인 거죠. 매일 남들보다 한두 시간은 먼저 출근해서 청소도 하고 작업준비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작은 불편도 들어주고 도와주는 역할까지, 따뜻하면서도 성실한 성품은 입사초기부터 대표책임자가 된 지금까지 여전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두 딸들은 지금은 명망 높은 대학의 의학과와 경제학과에서 각각 자신의 희망을 꽃피우며 배움에 열중하고 있고 부모님에게 손 한 번 내밀지 않는 경제관념까지 확실한 똑순이들이라고 한별 씨는 자랑합니다. 아내는 지금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것만도 고맙다는 한별 씨입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탈북 후배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인터뷰에 응했다는 한별 씨는 해 놓은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며 오늘도 성실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습니다. 회사의 믿음직한 대표책임자, 그리고 한 가정의 기둥이며 가장인 자상한 아빠, 최한별 씨의 성공적인 정착을 진심으로 소리높이 자랑합니다.

 

김인선: 한별 씨의 성공적인 정착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 아닐까요. 한별 씨의 꾸준한 행보를 응원합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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