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소형라디오 하나가 가져온 변화(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10.20
[마순희의 성공시대] 소형라디오 하나가 가져온 변화(2) 탈북자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에 함께 넣는 휴대용 라디오.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숙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35살 늦깎이 나이에 간호대학에 입학해서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고 했어요. 꼴찌로 입학해서 졸업 땐 상위권의 성적으로 말이죠.

 

마순희: . 맞습니다. 김숙 씨의 경우 북한에서 평범한 주부였기에 한국에 와서 간호학 공부를 무사히 마쳤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업이 잘 되는 편이라서 남한 토박이 중에서도 간호학과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탈북민들, 특히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간호학과는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된 의학용어와 4년간의 전문교육과정, 시험 등 거쳐야 할 어려운 과정들이 많아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숙 씨는 그 과정을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간호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했고 이후 국립춘천정신병원을 거쳐 지금은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살다 보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때로는 넘어지고 주저앉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김숙 씨의 경우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간호학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는 했겠지만 한국 입국 직후 모든 일들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거잖아요?

 

마순희: . 심지어 김숙 씨는 여느 탈북민들처럼 탈북계기나 이유조차 특별한 게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인데요. 그녀의 한국정착 과정을 통해 우리 탈북민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김숙 씨는 평범한 삶을 살던 주부였습니다. 그보다 더 나은 삶,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무역 관련 일을 하던 남편이 중국 출장 길에 사온 소형라디오를 통해 다른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당국에서 라디오를 다 봉인해 둔 라디오로 북한 방송만 들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김숙 씨는 한국 라디오방송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김숙 씨는 바깥 세상에 대해 알게 됐고 북한에서 속박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 했던 불합리한 모든 현상들이 뚜렷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남들보다는 잘 산다고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러 가지 생활, 예를 들어 외국여행은 생각도 못하고 통행증이 없으면 북한 내에서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는데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도 있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너무 경이롭게 느껴졌다는 김숙 씨입니다. 김숙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사람들은 더 밝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꾸고, 그것은 단순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남한 사회를 점점 동경하게 된 김숙 씨는 식구들을 설득했고 탈북 경로를 탐색하면서 3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탈북을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분은 봤지만 준비과정만 3년이라는 분은 처음이에요. 신중하게 생각하고 오랜 시간 탈북을 준비한 만큼 탈북과정이 순탄했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2001년에 탈북해 같은 해에 한국에 입국했으니까요. 무엇보다 김숙 씨는 합리적으로 살아오던 사람이라 남편에게도 탈북을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시댁이 워낙 북한에서 잘 나가는 집안이라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일체 비밀에 부쳤는데요. 다만 두 자녀는 앞날을 생각해서 자신이 데리고 오는 것이 맞다는 판단으로 친정 부모님과 두 자녀, 그리고 오빠네 식구까지 7명의 일행이 함께 했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 탈북을 준비했지만 7명 대식구가 함께 이동을 하는 동안 변수도 많았습니다. 한국행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들에 수없이 노출됐고,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면서 김숙 씨는 집안에 의사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등록금지원으로 가고 싶은 대학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김숙 씨는 망설임 없이 간호대학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공부를 시작한 나이가 만 35 . 두 아이의 엄마였던 김숙 씨가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간호대학에서 정규대학생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에 서른 살이 넘는 신입생도 처음이었고 60년 전통의 간호대학에 탈북민이 입학한 것도 김숙 씨가 처음이었기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젊은 동기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날이 거의 없었고 시험 기간이나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날에는 한 두 시간만 겨우 자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꼴찌로 입학했지만 졸업할 때에는 상위 30-40%사이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김숙 씨는 졸업 후 바로 취업까지 가능했고 부산지역에 있는 일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2001년에 한국에 입국해서 2005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정말 쉴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김숙 씨인데요. 부산에서 강원도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일터를 옮겼다고 했었죠?

 

마순희: . 부산에 있는 일반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2012,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통해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국가공무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5년 동안 일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김숙 씨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립춘천정신병원 간호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느라 짧게는 몇 달을, 길게는 2-3년을 허비하는 탈북민들도 많은데 김숙 씨는 본인이 선택한 간호사 일을 오랫동안 잘 해왔습니다. 김숙 씨는 일을 하다 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고 그때마다 역지사지로 상대방 입장에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도 풀리고 금방 자신의 마음도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좋은 사람들로 기억된다고 하는데요. 부산에서 함께 일했던 수간호사 선생님의 경우 지금은 은퇴한 상태인데도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고 가끔씩 택배로 맛있는 먹거리도 주고받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춘천의 정신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수간호사 선생님은 30년 경력의 공무원이신데 커피도 손수 타 주시며 하나라도 더 배워주시려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는 김숙 씨입니다.

 

김숙 씨가 그분들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잘 해 주어서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들은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도 자신이 더 배울 수 있는 존경할 만한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항상 모든 관계가 원만하고 좋을 수만은 없지만 그럴 때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김숙 씨의 마음가짐이 모든 분들에게 사랑받고 또 존경하는 인간관계가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숙 씨는 56세라는 지금의 나이를 잊을 정도로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중학생, 딸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더군요. 김숙 씨의 남편은 지금도 북한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시댁의 위치와 다른 가족 때문이라는 걸 잘 알기에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데요. 김숙 씨는 앞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정신건강사업에 더 관심을 가지고 통일 준비를 위해 배움을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언제나 현재에 자만할 줄 모르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김숙 씨의 앞날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김인선: 1 1초로 헛되게 쓰지 않을 것 같은 김숙 씨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나는 오늘 하루, 24시간을 얼마나 보람되게 보냈나?’를 생각해 봤는데요. 괜히 부끄러워지네요. 똑같이 주어진 시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일들로 채워 봐야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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