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군인정신으로 남한 정착에 성공하다(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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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의 성공시대] 군인정신으로 남한 정착에 성공하다(2) 사진은 경기도 안산시 다문화마을특구 내 외국인주민센터 모습.(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영호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영호 씨는 70대 노모를 모시고 2007년에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입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했었잖아요?

 

마순희: . 맞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탈북과정에서 몸과 마음까지 지칠 대로 지쳤던 영호 씨의 어머니는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기본적으로 몸 상태 전반을 검사하는 건강검진을 해주고 필요에 따라 치료를 해주는데요. 영호 씨의 어머니 경우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국립의료원에서 심장 시술을 받았는데요. 제가 당시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했었기에 영호 씨와 어머님을 만났었습니다. 어머님이 입원치료를 받던 한 달 동안 영호 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찾는 모습에 대단한 효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영호 씨의 어머님이 빠르게 회복하고 한 달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이 납니다.

 

김인선: 고령의 어르신들의 경우 회복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보다 치료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는데요. 영호 씨의 효심 덕분인지 영호 씨의 어머님은 비교적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신 것 같아요. 어머님의 건강이 금세 좋아진 것처럼 영호 씨의 한국생활도 빠르게 안정됐으면 좋겠네요.

 

탈북민에 대한 차별

군인정신으로 극복

 

마순희: 기자님의 바람처럼 빠르게 정착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제대 전부터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지 걱정했었던 영호 씨였잖아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나라를 거치며 어렵게 한국에 왔고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와서 한 편으로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거주지를 배정받고 한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 선배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하나같이 취직과 정착이 어려웠었다는 말을 영호 씨에게 해줬습니다.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님까지 모시고 살아야 하는 영호 씨에게 취업은 필수였지만 취업이 잘 안 됐기 때문입니다. 자격도 경력도 없고 또 당시까지만 해도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안 좋던 때라 영호 씨를 쉽게 받아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호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명령과 지시에 무조건 따르고 실천하는 군인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굳이 나서서 밝히지 않았습니다. 말투를 보고 중국 조선족이냐고 물었다는데 아니라고 답하지 않고 영호 씨는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부품공단에서 육체적 노동을 하는 일이었는데 출, 퇴근하는 데만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영호 씨가 선택한 첫 거주지가 안산시인데 처음 취업한 공단은 인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시간이 단축됐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출퇴근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새벽7시에 출근을 시작하면 밤 8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몸이 고됐지만 영호 씨는 북한에 있을 때에는 100리 길도 짐을 지고 다녔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밥을 짓고 저녁을 차려드려야 하는 생활이었지만 영호 씨는 그 생활을 4년 정도 이어갔습니다.

 

김인선: 집에서 가까운 일자리를 찾거나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방법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먼 거리 출퇴근을 하는 분들도 많긴 하죠. 하지만 영호 씨의 경우 탈북민 특별전형이라든가 여러 가지 제도적인 지원으로 출퇴근이 좀 더 용이한 곳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보가 없었을까요?

 

탈북여성보다 취업이 어려운 탈북남성

 

마순희: 지금은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고 또 각 지역의 하나센터와 취업상담사들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알선해 주고 동행면접도 함께 하면서 도움을 주는데요. 영호 씨가 처음 취업을 했던 2007년에는 취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탈북 여성들에 비해 탈북 남성들은 취업하기가 더 힘들었거든요. 당시엔 먼저 정착한 탈북민의 소개나 한국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남한 분들의 추천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자격증이 있거나 학력이 있어야 취업이 용이했습니다. 학원에 다니거나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는 거죠.

 

마침 이 시기에 영호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함께 수료했던 지인들에게 한 교육기관을 소개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자유시민대학인데요. 탈북민들이 알아야 할 정착의 기본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곳입니다. 탈북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물론 여러 가지 활동까지 있어서 탈북민들 사이의 유대관계도 돈독하게 하고 정착 경험도 공유하는 유익한 배움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호 씨는 이곳에서 정착에 실패한 탈북민 사례들도 많이 접했기에 자신은 그 길을 피할 수 있었고 북한과 다른 한국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그만큼 영호 씨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겠는데요?

 

남한정착 잘 하려면 먼저 다가가야

 

마순희: 맞습니다. 처음 공단에 취업했을 때만 해도 영호 씨는 10년 이상의 군인생활로 습관적인 경직된 얼굴과 딱딱한 북한식 말투, 그리고 현장에서 나타나는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영호 씨가 성실성과 책임성이 높다 보니 모든 일을 책임적으로 성실히 했고 그런 그의 일상을 회사 사장님이 높이 평가해 주었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영호 씨는 1년이 지난 후 정직원이 됐습니다. 사장님에게 인정을 받게 된 영호 씨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됐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고 회사생활을 잘 하려면 자신을 낮추고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일 밖에 모르고 말수 적고 농담도 않던 영호 씨는 점차 활기찬 목소리로 익살맞은 농담도 건네고 동료들이 힘들어 할 때면 자신의 일처럼 두 팔 걷고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입사 초기에 비해 눈에 띄게 밝아진 영호 씨를 모두가 좋아했고 2년차가 되면서부터는 회사 내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해 주는 멘토 역할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영호 씨는 처음 입사한 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데요.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 순찰관으로 입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4년간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이어가던 어느 날, 탈북민 특별전형의 채용 공지가 있다는 걸 알고 신청서를 냈는데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서 정식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는 통지를 해 왔던 것입니다. 회사 동료들과 직원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 하면서도 영호 씨가 공무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착한 효자에, 근면성실한 직장인이죠. 회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성품 좋고 성격까지 좋으니 영호 씨를 잘 아는 분들이 탐냈을 것 같아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기회

 

마순희: 맞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일자리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면서 봉사활동까지 시작했습니다. 같은 고향의 친구가 일하는 장애인 재활원에 갔던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북한에서 장애인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데 한국에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친자식처럼 돌봐주고 직장인들과 학생들도 와서 같이 밥도 먹고 놀아주는 모습에 정말 이 사회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호 씨는 그때부터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품까지 좋은 영호 씨를 보고 주변에서는 중매를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영호 씨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됐습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도 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영호 씨는 어느덧 한국에 정착한지 15년차가 됐습니다. 그 사이 함께 탈북했던 노모는 돌아가셨지만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가 곁에 있고 지금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 순찰관으로 근무하기에 지금이 가장 보람차고 행복하다고 영호 씨는 말합니다. 통일 후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하루하루 보람차게 보내야 한다는 영호 씨의 더 멋지고 행복한 내일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자신을 되돌아보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 영호 씨의 성공적인 정착 비결이었네요. 앞만 보고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영호 씨처럼 살아온 모습을 잠시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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